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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흙수저점갤러소설...........3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8.12 05:30:18
조회 403 추천 18 댓글 6

이어서는 불편한 식사 시간이었다. 제자리에 다소곳이 앉은 나는 최대한 멀쩡한 척 밥을 퍼먹었다. 흰쌀밥을 한 숟갈 떠 입에 집어넣고, 젓가락을 꼬물꼬물 놀려 나물을 한 입 먹고.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말을 거는 최호범의 아버지에게 간간이 대답하고.


아무리 먹어도 고봉밥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불편하지 않은 척하기, 더해 어른이 건네는 물음에 예의 바르게 대답하기 정도.


최호범의 아버지는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았고, 대다수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연장자가 으레 건네곤 하는 안부 내지는 신변잡기,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가령 학교생활은 어떤지,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아, 연우. 공부 잘한다며?”


이번엔 이런 화제가 나왔다.


“네?”

“중간고사 전교 4등이라고 했나? 맞죠, 여보?”

“아뇨, 아뇨.”


세상 뜬금없는 오해였다. 헛기침을 내뱉은 내가 재빨리 정정했다.


“아니에요. 공부 별로 못해요. 그, 4등은. 전교가 아니라. 반에서 한 거고…….”

“반에서 4등이면 잘하는 거 아닌가?”


최호범의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보며 되물었다. 싱긋 웃은 아주머니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하는 거지. 연우야.”

“그…….”

“그게 못하는 거면, 인마. 우리 아들내미는 뭐가 되냐. 저놈 저거 성적표 본 적 있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평소 수업 태도 등으로 대충이나마 유추할 순 있었다.


“애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니까. 응? 과외 붙여줘도 듣지도 않고. 학원은 갈 시간 없다 하고.”

“그……. 호범이는, 음. 야구부잖아요. 야구 선수 한다고……. 들었는데.”

“허이고. 그래. 꿈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


여기까지 말한 최호범의 아버지가, 별안간 제 아들을 홱 째려보았다.


“얌마. 최호범.”

“아, 왜. 진짜.”

“저 봐라. 저 봐.”


쯧쯧, 혀를 차곤 말을 이었다.


“너 메이저리거 할 거라면서.”

“그런데.”

“너 인마, 그거 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해, 인마. 미국 가서 종일 통역 데리고 다닐 거냐? 영어로 대화도 할 줄 알아야지. 엉?”

“……나중 가면 다 알아서 해. 아빠가 뭘 알아.”

“어이구~ 말이나 못 하면.”


최호범의 아버지가 제 이마를 탁 짚었다. 세상 막연한 낙관론에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연우는 꿈이 뭐냐?”


그러곤 다시 내게로 화제를 옮겼다.


“네?”

“장래 희망 같은 거 없나? 학기 초에 설문조사도 했다며.”


장래 희망이라.


나와는 그다지 연이 없는 주제였다. 막연한 미래보단 빠듯한 현재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두루뭉술하기만 한 앞날을 상상할 시간에, 차라리 다음 주에 발주할 물품이나 수익 정산 따위에 신경을 쏟는 것이 훨씬 영양가가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가끔 비슷한 상상을 해 보긴 했다. 훗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말이다. 대학교는 꿈조차 못 꿀 형편이니, 그렇다면 아마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지 않을까. 반찬가게가 흥한다면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는 선택지도 생길 테고.


“아직은요…….”


둘 중 무엇이든 상대가 바라는 대답은 아닐 터였다. 모호하게 대답한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직업이 없어도, 공부는 항상 열심히 하렴. 알겠지? 훗날에 네가 택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주니까.”

“네.”

“그래. 쟤 좀 봐라. 할 줄 아는 게 운동밖에 없으니까 선택 풀이 좁잖아. 풀이.”


얌전히 갈비나 뜯던 최호범이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아, 왜 자꾸 뭐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땡땡이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지, 인마. 영어 공부도 좀 하고!”

“아들, 엄마 호강시켜 줄 거지?”

“누구 아들인데. 당연히 호강시켜 줘야지.”

“뭐라는 거야, 진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기나 할 따름이었다. 한낮처럼 밝은 조명, 호방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아들의 꿈이 무엇이든 허황하다 치부하지 않는 태도. 싸움 하나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온전한 가족.


이번엔 어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지금쯤이면 컴컴한 가게에서 찬밥과 김치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을 것이다. 검고 푸석한 머릿결, 창백한 낯빛. 오랜 주방일로 인해 손가락 마디마다 더덕더덕 붙은 굳은살, 조금씩 굽기 시작하는 등허리.


그것은 마치 한밤의 달과도 같았다.


불현듯 떠올린 생각이었다. 저들이 한낮의 태양이라면 어머니는 한밤의 달과도 같았다. 노동으로 굽은 등에서, 파리한 미소에서, 홀로 외로이 가게를 정리하는 뒷모습에서.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희미한 초승달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눈에 밟혀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었다.


별안간 가슴이 답답했다. 스스로가 마치 초대받지 말아야 할 곳에 온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지금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질투인지 체념인지, 측은함인지 죄책감인지.


얼굴에 열기가 스멀스멀 몰렸다. 이러한 상황이 싫었고, 이딴 감정을 느끼는 자신도 싫었다. 가슴을 마구 쥐어뜯고픈 충동이 홱 밀려오기도 했다. 이 추한 감정을 전부 떼어내 내팽개치고, 또 짓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통쾌할까.


다르구나.


다들 나처럼 사는 게 아니구나.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내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닐 텐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다 먹었어?”


속으로 읊조리던 내가 움찔했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른들은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최호범의 아버지,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 아주머니. 부엌 너머 거실로부터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TV 소리. 언제 다 먹었는지 텅 빈 밥그릇.


나를 바라보는 최호범.


“나가자.”


그런 녀석은, 내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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