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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저쩌구청룡수인검거어쩌구셰퍼드소설-36앱에서 작성

OoOo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1 14: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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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감상은아카나포스타입에서.


(36)



"..."



파랑은 서랍에서 꺼낸 권총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폈다.

오발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용 보관함에다 권총 홀스터까지 꽁꽁 싸매놓은 작은 휴대용 권총이다.

언젠가 선물 받은 이후로 보관만 해뒀었는데,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하는 거던가."



파랑은 탄창을 분리해 안에 들어있는 탄약의 개수를 셌다. 무심하게 방아쇠를 당기면, 큰 소리와 함께 표적을 향해 날아갈 9mm 탄약이 12발. 첫 칸은 안전을 위해서 공실로 비워두고 싶었지만, 반자동 권총이기에 그런 건 의미가 없다며 마구 웃으며 조언하던 조직 카운셀러 청룡 레오드가 생각난다. 발상이 재밌다면서.



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코 끝에서 화약 냄새가 얼큰한 것 같았다. 파랑은 다시 권총에 탄창을 집어넣었다.

손에 꼭 맞는 그립감. 그렇지만 홀스터에서 뽑아 든 권총의 스테인리스 프레임이 차갑다.



"그래, 내가 무슨 총이냐... 연습장에서 한번 쏴본 게 끝인데."



파랑은 총을 다시 서랍에 살포시 넣었다.



레오드가 총을 선물하며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법한 그런 말이지만 레오드가 해준 몇 안 되는 소중한 조언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천방지축이던 친구가 언제 그렇게 어른스러워져서는.



비록 불쾌한 사건에 얽히긴 했지만 덕분에 간만에 레오드를 찾아갈 일이 생겼다.

오랜 친구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총은 안정된 사회 안에선 분명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파랑은 서랍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총은 그런 안정된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가 있는 물건이었기에.



"음, 혹시..."



다시 권총을 서랍에서 꺼내면서,

파랑은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거니까."



동시에 레오드가 총을 쥐여주며 마지막으로 해준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 말도 했었지.



[그렇지만 말이야. 파랑.]



[누가 널 죽이려하거든. 그땐 가차없이 쏴버려.]

[그새끼 얼굴에 한 여섯발정도. 되도록 신원 확인이 오래 걸리게.]

[그래야 안전하거든.]



파랑은 덤덤하게 홀스터와 함께 권총을 허리춤 앞에 챙겼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셔츠를 내리니 겉으로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았다.



_



"음흠~"



파랑은 밖을 나서기 전에, 간단하게 콘크림 수프를 끓여 점심을 먹었다.

보통은 아침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오전에 내린 비는 금세 그쳐 맑은 햇살이 집안까지 따뜻하게 드리웠다.

파랑은 창문을 열어 후끈한 집안의 공기를 환기했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조금은 쌀쌀하게 집안을 돌아다녔다. 금방 닫아야지.

비가 내린 직후라 밖에서는 빗물 섞인 향긋한 흙냄새가 났다. 파랑이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는 냄새였다.

오랜만에 맞는 괜찮은 날이었다.



다음으로는 데스크탑을 켜고, 딥웹 사이트 Jupiter에 접속해 수익금을 정산했다. 셰퍼드를 만나기 전에 2024년 1월 1일을 기념해서 벌인 '작은 취미', 푸른 티켓 사업의 수익금이었다. 그 금액은 자그마치 2억 남짓. 하루 일한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금액이었다.

셰퍼드에게 타박받았던 것처럼 괜히 무리하긴 했다만. 자기가 뭐라고 날 타박한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슬릿이 아찔하긴 했다. 아무튼.



"이걸로 레오드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그러면서 요즘 뒷세계 조직 동향에 관해서 물어보면 되겠지. 발이 넓으니까 어스에 관해서도 알 테고.

파랑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문을 닫고, 롱패딩을 단단하게 껴입은 차림으로 핫팩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추운 건 싫다. 1월의 공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가기 전에 연락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언제든 와도 된다고 레오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말은 해줘야겠지.

문자를 보낼까. 전화를 걸까.



지금 시간대라면 레오드도 일어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레오드는 저녁에 출근하니까.

파랑은 레오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받지 않는다.

여자친구랑 데이트 중인 걸지도 몰랐다.



그럼 그냥 가야지 뭐.

파랑은 레오드에게 곧 보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목적지로 출발했다.



_



레오드의 집은 허름한 면이 있었다.

인천의 시끄러운 번화가를 지나치면 나오는 구축 아파트.

일반적인 아파트라기에는 작고, 그렇다고 커다란 빌라라고 부르기에는 세대수가 많은 구축 아파트의 옥탑에 레오드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파랑이 Mars를 세우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레오드에게 같이 사는 건 어떠냐 제안했을 때도 레오드는 굳이 이 구축 아파트의 옥탑을 고집하며 극구 거절했다. 자기한테는 이 자리가 딱 맞다 그랬나.



엘레베이터가 옥상까지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기에 파랑은 꼭대기 층에서 내려서 옥탑으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래봤자 여덟칸이 안됐지만.



문을 열면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옥상이 나온다. 겨울이라 파릇한 풀들은 없었음에도 꾸며놓은 화단이 눈에 띈다. 봄이 되면 새싹들이 고개를 들고 꽃을 피우겠지. 그때가 오면 한 번 더 구경하러 와보고 싶을 만큼 정성들여 가꾸어진 화단이었다. 겨울임에도 그랬다.



1501호라고 쓰여진 문 앞.

파랑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오랜만에 보는 거지만 반겨주겠지. 그래봤자 2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간간히 연락은 했다. 음. 생각해보면 사실 꽤 자주 하는 편이었다.

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들었고, 막 두드리려는 순간.



안쪽에서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이런 소리.



"흐으 하아... 으응... 하아..."



문 안쪽에서 질퍽한 소리와 함께 거친 수컷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굵직한게 레오드의 목소리인 듯하다.



"아..."



우리 친구... 번식 행동 중이었구나...

파랑은 이마를 탁 짚고 화단 옆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버렸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_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

친구가 섹스하는데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미친 친구가 어디 있어.

그렇지만 우린 청룡이었다. 누군가와 정을 나누는 건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기다리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다음에 와야 하나..."



그렇게 파랑이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을 때,

별안간 레오드의 집 안에서 무언가 우당탕 넘어지고, 다른 남자가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새끼! 개새끼, 괜히 튕기고 있어... 니 오늘 그냥 죽는다고 생각해라."

"응그으읏... 으"



뭐지. 격하네. 레오드가 저런 플레이를 좋아했던가.

아닌데. 폭력적인걸 좋아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하면 싫어했지. 누군가를 집에 막 들이고 플레이를 즐기는 스타일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동시에 무언가에 입이 막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굵은 신음도.



"읍... 음응..."

"닥쳐!"



짝.



"음! 음읏...! 읏..."

"..."

"푸하앗!"

"허억... 허억..."

"흐으... 새끼... 깨물지 마라..."

"음으읏... 그으읏... 흐윽..."

"아오 씨발!"



짝.



자꾸 뭐가 맞는 소리가 들렸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정황상 섹스 중인 건 맞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면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질척한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질 때마다 머리엔 피가 돌고, 등에는 소름이 쫙 돋는다.

레오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파랑은 잠시 고민하다 1501호 앞에 섰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권총을 꺼낼까 생각했지만, 한국에서는 이걸 소지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법이다. 이건 최후의, 최후까지 가서야 쓸만한 수단이기도 하고.



파랑은 주변을 둘러보다 화단 옆에 놓인 휘두르기 좋은 길이의 삽을 집었다.

안에서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슬슬 힘들지? 좀 참아. 곧 끝내줄 테니까."

"크윽, 켁, 켁..."



레오드의 숨이 넘어가기 거의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문을 부숴야 하나.

삽으로 내리치면 도어락이 부서질까?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일단.

레오드를 지켜야겠다.



파랑은 무거운 삽을 들어 올렸다. 그립감과 무게감이 괜찮다.



삽 끝에 원심력을 싣고,

하나,

둘.



"으랴아아앗!!!"



힘찬 기합과 함께 파랑이 삽으로 1501호의 도어락을 내리쳤다.



파삭!



아파트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도어락은 터무니없이 쉽게 부서졌다.

안쪽의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파랑은 급하게 문을 열어재꼈다.



"레오드! 무슨 일...!"



안에 있던 두 수컷과 눈이 마주쳤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마구잡이로 뒤엉겨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수컷 늑대.

청룡 레오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늑대들은 방금까지 서로를 사랑스럽게 핥으며 웃고 있었는데, 파랑이 집에 난입하자마자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이 바뀌었다. 되려 파랑이 당황스러워 할 만큼.



"레오드... 집... 어... 레오드..."



파랑은 자신이 연 현관문에 쓰여있는 세대번호를 다시 정확히 읽고 다시 그들을 보았다. 1501호, 레오드 집. 여기 맞는데. 그런데 무슨 수컷 늑대 둘이 레오드 집에서 교미를... 그것도 SM 플레이를...

고장난 로봇처럼 파랑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들도 아무 말도 못하고.

1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차갑고 어색한 날이었다.



띠리리리ㅡ



파랑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레오드의 전화였다.

파랑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들은 친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달했고, 반가움이 가득했다.



"파랑! 야, 오랜만이다. 이제 봐서 미안해. 어제 일이 늦게 끝나서 좀 피곤했었어. 근데 지금 오려고? 나야 좋긴 한데, 나 이제 거기 안 살아. 아는 동생들 신혼집 차리라고 줘버리고 근처 딴 곳으로 이사했거든. 여기가 어디냐면... 여보세요? 파랑? 듣고 있어?"



파랑은 레오드의 전화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SM플레이를 즐기고 있던 레오드의 아는 동생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철커덩.



파랑만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손에 쥐고 있던 삽을 떨어뜨렸을 뿐이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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