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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_35

스타폭스(118.32) 2015.07.12 19: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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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와 아스토는 오랫동안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바심이 났다. 서로 손을 잡기라도 하면 고개를 푹 숙여야 할 정도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휘력이 뛰어난 세스도 그 때의 기분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배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까지 치고 올라와 기분 좋게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뙤약볕이 힘을 잃고 서늘한 노을빛으로 변했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이 낙엽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스토와 세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름밤의 숲은 낮과는 정 반대였다. 비밀과 마법스러운 무언가, 요정들의 속삭임이 흘러 넘쳤다. 남색 하늘이 품은 아름다움은 낮의 숲과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그러니 두 아이들은 밤이 되기 전에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은 갈림길에서 멈춰 섰다. 왼쪽 길의 끝에는 아스토의 집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신전이 있었다. 아스토는 세스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뜨끈한 바람이 몇 차례 불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이제 가야 하지?”

 

“당연히 가야지.”

 

“내일 신전으로 갈게.”

 

“그러던지.”

 

세스가 아스토의 손을 놓았다. 그러더니 아무런 인사도 없이 갈림길을 나섰다. 아스토는 갈림길에 선 채 세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늑인의 눈가에 조금 실망스러운 기색이 비쳤다. 인기척을 느낀 세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스토는 그제야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세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반쯤 들어 올려 아스토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세스는 신전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갈 때까지 매튜나 유사드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커다란 문을 밀어 빗장을 걸고, 세스는 문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로브 자락 속에서 송곳니 목걸이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매끈한 손을 뻗어 하얀 송곳니를 한 차례 쓰다듬었다. 뾰족한 끝 부분을 살짝 눌러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노을빛에 비추어보기도 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가에 천진한 웃음이 번졌다.

 

“세스님? 계십니까?”

 

매튜의 목소리였다. 세스는 깜짝 놀라 목걸이를 로브 속으로 숨겼다. 그리고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렸다.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매튜가 맞은편에 서 있었다. 처음에 세스는 이런 저런 불평을 쏟아내려고 했다. 업무 태만, 보좌 미흡 등, 꾸짖을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세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매튜의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고, 그걸 들어줘야만 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었어?”

 

“수색대 사람들마저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군요. 그, 알고 계시지요? 마을 아이 다섯이 사라졌다는 그 사건 말입니다.”

 

“알아.”

 

“수색대원까지 실종됐다니까 마을 사람들 반응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숲에 살인마가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유사드가 진정시키려 하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군요.”

 

“그런 일이 있었어?”

 

“급하게 마을로 내려가느라 부득이하게 자리를 좀 비우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는지요?”

 

“어. 따로 음식 만들 필요는 없고, 유사드 좀 챙겨줘. 요즘 많이 힘들어보여서.”

 

“네.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거 말고는 딱히 별 소식 없는 거지?”

 

“네.”

 

“오늘은 좀 쉬고 싶어. 도서관에서 너무 집중을 한 것 같아.”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럴 때 제가 도움이 좀 되어드려야 하는데,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매튜는 깍듯한 인사를 남긴 채 떠났다. 마냥 즐겁던 세스의 얼굴에도 어두운 빛이 서렸다.

 

--------------------

 

그날 밤, 레펠로 집안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았다. 밤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레펠로가 집으로 들어와 루멘과 아스토를 불렀다.

 

“비가 올 거야.”

 

“그래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불길해. 심한 폭풍이 올 것 같다.”

 

“내일부터요?”

 

“아마도.”

 

아스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바람 공기에서 비릿한 비 냄새가 훅 끼쳐오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늘만 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레펠로의 말이 들어맞아 폭풍이 몰아친다면, 레펠로 부부는 아스토가 바깥으로 나가게 두지 않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레펠로의 예상은 반쯤 들어맞았다. 다음 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하루 종일 울렸다. 레펠로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루멘은 모아 놓은 음식으로 군침 도는 간식을 만들었고, 레펠로는 아스토가 쓸 만한 화살을 깎으며 날카로운 화살촉으로 간식을 찍어 먹었다. 여유롭지 않은 것은 아스토밖에 없었다.

 

‘세스에게 가야 하는데, 약속을 했는데...’

 

아스토는 잠시 외출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려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아스토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레펠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폭풍은 아니지만, 이렇게 장대비가 내리면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버려. 이런 날 나가는 건 병신 짓이지. 일이라든지, 사냥이라든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서 원.”

 

“잠깐 쉰다고 생각해요.”

 

루멘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스토는 더욱 인상을 구긴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 날은 해가 묘하게 졌다. 노을이 노을빛이 아니었고, 나뭇잎처럼 초록색이었다. 해가 지고 난 다음에도 하늘은 남색으로 물들지 않았고, 바스러진 숯처럼 회색이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레펠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런.”

 

밤이 어두워지자, 레펠로가 예상하던 폭풍우가 왔다. 나무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이 덜덜거리며 떨렸고, 대문이 쿵쿵거리며 떨렸다. 아스토는 송곳니 목걸이를 꼭 쥔 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세스가 화가 많이 났을지, 이런 날씨를 참작해서 이해를 해주고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그러나 아스토는 여전히 신전으로 갈 수가 없었다. 레펠로가 아스토를 단단히 붙잡은 채 ‘태풍의 핵’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레펠로는 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태풍이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쪽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핏빛이었다. 레펠로는 하루 종일 집의 창문과 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제대로 자라지 않은 텃밭 채소들도 모조리 뜯어왔고, 루멘을 불러 경고했다.

 

“농사 흉내를 내긴 했지만, 이번 농작물은 기대하지 마. 거둘 게 없을 거야.”

 

“알았어요.”

 

루멘은 놀랄만치 담담했다.

 

 

 

저녁이 되자, 천지를 반으로 쪼개는 듯한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아스토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루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굉음이었다. 북동쪽에서 불어온 어마어마한 태풍은 루멘이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수많은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뒤틀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집안을 제외한 모든 곳에 있었다. 계곡에도, 밭에도, 숲이라면 모든 곳에 바람이 있었다. 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찍같이 내리는 빗방울이 지붕을 후려치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집안은 아늑했지만, 아스토는 무서웠다. 세스는 튼튼한 신전에 머물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아스토의 집은 그렇지 못했다. 아스토는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

 

“왜?”

 

“여기는 안전한 것 맞죠?”

 

“아마.”

 

“아마요?”

 

“아니, 안전해.”

 

레펠로가 서둘러 덧붙였다.

 

 

비가 내리는 내내 식탁은 풍성했다. 루멘은 요리 말고는 종일 할 일이 없었다. 조금 겁에 질리긴 했지만 아스토는 이것 저것 많이 집어 먹었다. 식탁에는 사슴 고기와 토끼 고기, 너구리 고기도 있었다. 아스토는 배가 부를 만큼 음식을 먹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식탁에서 레펠로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가 방문 틈새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그야말로 천지개벽이야. 지금 바깥은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알던 숲과는 많이 달라져있을 거야.”

 

“나무도 꺾여 있을 거고, 땅도 파여 있을 거고, 아무튼 뭐 그렇겠죠.”

 

“뱀들이 씨가 말랐겠어. 물뱀 말고는 말야.”

 

“흙이 다 떠내려갔겠죠. 요 주변 땅이 그렇게 단단한 것도 아닌데.”

 

“아마.”

 

아스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땅을 덮었던 흙이 떠내려갈 것이라 했다.

 

그것을 듣자마자 번개처럼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계곡 뒤쪽 동굴에서 발견했던 시체, 그 시체를 깊이 묻었던가? 아니, 그렇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깊이 묻지는 않았다.

 

아스토는 방금 먹은 음식을 모조리 토할 것만 같았다. 시뻘건 흙 사이로 썩어 들어가는 시체가 떠다니는 환상이 머릿속에서 선연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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