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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상어 범고래 소설 1

문학충po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5.31 19:34:33
조회 491 추천 22 댓글 15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비스듬히 창가를 타고 흘러내려 자꾸만 내 시야를 방해했다.


그날은 유독 더운 날이었다.


복도 창가 쪽에서 비치는 밝은 빛과는 대조되는 풍경의 불 꺼진 교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6월 25일 오후 5시 48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교실이 비어있을 시간, 교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불 꺼진 교실 안, 흰색 커튼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주황빛의 색채, 

그것이 비추고 있는 것은 교실의 가장자리 책상에 엎드려 누워있는 범고래.


"진짜 기다리고 있었네."


작게 실소를 터뜨린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야 나 왔어. 일어나."


넓은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얕게 숨소리만 내뱉을 뿐 미동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조금 더 자게 둘까...'


나는 책상에 엎드려 고개만 옆으로 돌려 범고래를 쳐다보았다.


교복 셔츠를 뚫고 나올 것 같은 근육들

몸을 감싼 검은색 바탕에 하얀 무늬들

커다란 덩치에 맞는 두꺼운 꼬리까지

영락없는 바다의 포식자 범고래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애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지금 와서는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마 첫 만남부터 호감이 생겼던 것 같다.

첫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쯤 내가 이 학교에 전학 왔을 때였다.

이미 다들 자신만의 친분 있는 그룹이 형성된 시기. 

그곳에서 외부인인 나는 낄 자리가 없어 보였다.


애초에 말을 잘 거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다른 애들이랑 친해지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였다.

전학 올 때부터 이럴것이라고 생각했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엎드리려고 했을 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범고래의 시선을 눈치챘다.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체격에 약간 겁을 먹고 있을 때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넌 무슨 운동 하다 왔어?"


보통 첫 만남 때는 이름을 물어보지 않던가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질문.

그 질문에 상어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헬스랑 이것저것."


"오 그래? 다른 운동할 줄 알았는데."


"너는 무슨 운동하는데?"


"나? 나는 수영선수 준비 중이야 이미지랑 잘 맞지?"


그렇게 말하곤 범고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뒤로도 이름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게임이 있는지 등을 물으며 

범고래는 상어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알고 지낸 지 벌써 2년째네...'

처음 가지고 있던 호감은 2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연심으로 변화했다.

팔 속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상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없는 새끼..."

나지막히 내뱉어 보는 원망의 말.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할까, 옆자리의 그는 태평하게 잠만 자고 있을 뿐이었다.


2년. 호감이 사랑으로 변화하기 충분한 시간. 

그 2년의 시간 동안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곤히 잠들어 있는 너를 바라보고 있으니,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적어도 여름방학 전에는...'

그저 친한 학교 친구로만 남고 싶지 않았던 내가

범고래와 얼굴을 맞대며 기약 없는 다짐을 굳히고 있을 그때


"뭘 그렇게 쳐다보냐 부끄럽게."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냐?"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잠에서 깬 그는 상어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나를 쳐다보며 실없는 농담을 떨어대는 범고래.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해하던 나는 이내 이성의 끈을 잡았다.


"뭐래 헛소리하지 말고 잠 다 잤으면 집 가게 일어나"


나는 그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리곤 일어나 빠르게 가방을 챙겼다.


"야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니냐... 아오"


범고래의 말이 사실이다. 조금 전 일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낀 나는 힘 조절할 새도 없이 그의 등짝을 날렸다.


"엄살 부리지 마. 덩치도 산만 한 게 그거 가지곤 안 아프잖아."


"아무튼 엄청 푹 잤네"

그렇게 말한 그는 기지개를 켜곤 천천히 짐을 챙겨 일어났다.


"그래 내가 왔을 때도 자고 있더라"


얼굴의 열기를 식힌 후 나는 다시 그를 마주했다.

교실 창문 커튼을 뚫고 비치는 따스한 빛이 범고래를 감싸고 있어서 그런가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 좋은 꿈이라도 꿨어?"


"그래 보여?"


상어가 한 질문에 답 대신 질문을 던진 그는 상어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도통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이런 엉뚱한 매력이 범고래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더 늦어지기 전에 가자." 


범고래는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응답했다


"그래."


창가 쪽에서 비친 빛이 빈 교실에 떠다니는 먼지에 산란하여 불 꺼진 교실을 환하게 비춘다.

우리는 교실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교무실에 열쇠를 가져다 놓고 학교를 나섰다.


범고래와 함께 걸으며 상어는 생각한다.


여름방학까지 앞으로 한 달. 짧지만 긴 그 시간 속 어딘가.

'내가 너에게 마음을 전달한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

겪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지만 다가오는 그날은, 너를 향한 이 마음은 확실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딘가 마음이 후련해진 상어는 범고래를 보며 웃었다.



==================================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점차 저물어 가고 

하늘이 붉은빛으로 점차 변해갈 때쯤.


상어와 함께 걷던 범고래는 생각했다.




'고백은 언제쯤 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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