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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_21

스타폭스(118.32) 2015.04.26 03:47:25
조회 876 추천 14 댓글 2

아스토는 눈치를 보며 세스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밥을 얻어먹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세스는 귀찮은 표정으로 아스토의 손을 쳐내더니 의자를 끌어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준비해줘. 레비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말할 것도 없지.”

 

“네.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목걸이...”

 

“얘가 줬어. 친구의 증표래.”

 

“... 그렇습니까?”

 

레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스토를 돌아보았다.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아있던 아스토는 불안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그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보다 못한 세스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뭐해?”

 

“... 아무것도 아닙니다.”

 

레비는 여전히 애매한 태도로 두 아이를 돌아보다가, 이내 방을 나섰다.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기죽어있던 아스토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포크를 집어 들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돌아온 만큼 언제나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며 즐겁게 떠들어야 했건만, 그의 상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축 처져 있었다.
울적하게 가라앉은 어린 눈매와 입 꼬리가 뭇 수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우울한 얼굴은 타인에게 한 없이 둔감한 세스의 눈에까지 고스란히 들어왔다.
괜히 안절부절 못하던 세스는 괜히 언성을 높이며 아스토의 어깨를 툭 밀쳤다.

 

“또 왜 그러는데?”

 

“... 세스. 그 목걸이 말인데... 저 사람 앞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레비 앞에서는 숨기고 다른 때는 하고 다니라고?”

 

“다른 때 하고 다니라고는 안 했어... 그냥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돼.”

 

“무슨 우정의 증표라며. 그런 건 계속...”

 

세스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사소한 다툼이 괜히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므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속으로 앙 문 채 담담히 아스토의 말을 따르는 척 했다.

 

“알았어. 그 사람한테 안 보여주면 되잖아. 근데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어... 그건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서...”

 

“... 알았어.”

 

어린 세스의 눈에도 뻔히 드러나는 거짓말이었다.
대체 아스토가 무슨 의도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세스도 알 길이 없었으나, 사정이 있는 듯하니 일단 눈감아주기로 마음먹었다.

 

---------------------------------

 

검은 전염병이 물러난 지 한 달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숲 남쪽에 피어나는 노란 홍화꽃들이 겨우 고개를 들었고, 길 건너의 나무들이 빗물로 양껏 몸을 축여 속살을 단단하게 굳혔다.
할미꽃과 제비꽃이 서로 경쟁하듯 봉오리를 틔워내려 할 무렵, 벌새들이 날아와 먼저 핀 꽃의 꿀을 얌체처럼 빨아먹었다.

펜리르 가족의 일상은 추위로부터 시작되어 더위로 접어들고, 다시 차갑게 식었다.


봄의 기운이 온 숲에서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산짐승들의 씨알이 굵어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레펠로는 창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기름진 밭에서는 화수분처럼 곡식들이 솟아나고 있었고, 그들의 식탁은 항상 풍성했다.
단지 고기가 없다는 것만 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레펠로는 태생부터 사냥꾼이었다.
기름진 고기로 위장을 채우지 않으면 아무래도 식사를 한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발톱에 피를 묻히지 않고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다.
사냥감의 동맥을 이빨로 끊고 발톱으로 가죽을 꿰뚫는 그 느낌이 아직도 본능적인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 날 아침, 하릴없이 뭉툭해진 발톱을 갈아대던 레펠로는 아들을 데리고 모처럼 사냥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아내에게 다가가 통보하듯 한 마디 했다.

 

“오늘 사냥을 갈 거다. 잘 하면 사슴 한 마리 잡아올지도 모르지. 아스토도 데려갈 테니까 준비좀 해줘.”

 

“다녀오세요. 마지막 고기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스프랑 빵이라도 양껏 먹고 가요. 기운이 나야 사냥도 하지.”

 

루멘은 사냥 이야기만 나오면 먹을 게 풍성해진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번지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릇에 음식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음식 냄새를 맡은 것인지, 편히 자고있던 아스토가 방 밖으로 졸린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흐릿한 눈을 연신 비벼대며 꿈 꾸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 아빠 사냥 가요?”

 

“그래.”

 

“저 안 가면 안 돼요?”

 

“활이랑 화살 챙겨 와라. 오늘은 한 두 마리는 잡아야 하겠어.”

 

“... 왜 두 마리나 잡아요?”

 

“고기도 먹고 신전 사람들한테 빚진 것도 갚을 겸 두 마리는 잡아야지.”

 

영 내키지 않아하던 아스토는 신전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재빨리 활과 화살을 챙겼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었으니, 뭘 줘서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생각은 옛날부터 해온지 오래였다.
아스토는 작은 가죽 배낭에 나이프, 약초, 물통을 챙겨 넣고 손때 묻은 무기들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춰보는 무장이었다.

레펠로 역시 자신의 가방을 정리하다가, 멍하니 서있는 아내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당신도 갈 거요?”

 

“말도 마요. 손톱 무뎌진 지가 언젠데. 사내들끼리 갔다 와요.”

 

루멘은 말을 하면서도 발톱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비록 전성기에 비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발톱 역시 웬만한 산짐승 한 마리 정도는 일격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레펠로 부자는 새벽 이슬이 내려앉을 무렵에 집을 나섰다.
5월의 새벽은 여전히 으슬으슬하니 차가웠다.
아스토는 어깨에 걸친 숄을 여미며 걱정스러운 듯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아빠 안 추워요?”

 

“아니. 피가 끓어서 더울 지경이다. 이게 얼마 만에 나가는 사냥인지 모르겠구만.”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한 2km 정도 걸었을 무렵, 레펠로는 몸을 굽히고 날카로운 눈매로 주위를 살폈다.
그는 길가에 난 꺾인 가지와 풀줄기들을 특히 유심히 살폈다.


잠시 뒤, 그는 방향을 바꾸어 걷기 시작했다.
그가 나아간 길가에는 아스토가 익숙히 보아왔던 넓은 평지가 있었다.
그들은 한 달 하고도 반 만에 사슴 발자국이란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수사슴 한 마리가 다녀간 것 같다. 아마 새벽에 지나갔겠지.”

 

“... 그래요?”

 

아스토는 발자국만 보고도 사슴의 행적을 파악하는 아버지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풋내기 사냥꾼에 불과한 아스토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슴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레펠로는 달랐다.
그는 두 손을 땅에 박아 넣고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거친 길가를 향해 섬광처럼 튕겨나갔다.
멍하니 서 있던 아스토는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사냥감을 놓칠까봐 차마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뒤늦게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스토는 반쯤 긁혀 있는 소나무 군락을 지나, 종려나무 군락을 지났다. 서쪽에서 불어온 산들바람이 그의 부스스한 털과 수풀을 흔들어댔다.

 


숲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산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움직이는 짐승도 없었고 먹이를 먹는 짐승도 없었다.
고요한 숲에는 오로지 레펠로 부자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키잉거리는 애처로운 신음과 무언가 바둥대는 소리가 수풀 너머에 생생했다.

 

“잡았어요!? 잡았죠!?”

 

아스토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레펠로가 사슴 한 마리를 덮친 채 격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탄탄하게 드러난 근육 역시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야성적으로 숨쉬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입 안으로 몰려오는 사슴피를 핥았다.
비릿하면서도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는 맛이었다.
새하얀 송곳니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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