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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_7

스타폭스(118.32) 2015.03.02 00:06:39
조회 1130 추천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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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이 아직 입어보란 말을 꺼내지도 않았건만, 아스토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한 표정으로 로브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맘에 드니?”

 

“...예뻐요. 정말.”

 

“한번 입어봐라.”

 

신관의 권유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스토는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로브를 뒤집어썼다.

그 감촉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가벼운 전율이 온몸에 전해져 올 정도였다.

신관이 골라준 로브가 아스토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훌륭한 옷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린 아스토는 불안한 표정으로 신관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그걸로 하겠니?”

 

“네. 아주 맘에 들어요.”

 

“맘에 든다니 다행이다. 일단 식사부터 하지 않겠니? 나도 아침부터 세스님 찾아다닌다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네.”

 

아스토는 수줍게 웃으며 신관의 뒤를 따랐다.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오던 아버지가 신관들만큼은 믿어도 된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관들은 지금껏 아스토가 보아왔던 수인들 중 가장 친절했고, 또 이성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스토를 식당에 데려간 신관은 적당히 핏물이 흐르는 스테이크 한 장과 꿀맛 같은 치즈 감자구이, 옥수수 샐러드를 얹은 빵 덩어리와 치즈 한 덩이를 통째로 넣은 크림 스프를 대접하며 후하게 인심을 썼다.

이런 훌륭한 식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아스토는 이것이 정말 자신이 먹어도 되는 음식인가 싶어 연신 큰 눈을 끔벅거렸다.

 

“왜 그러니? 음식이 마음에 안 드니?”

 

보잘 것 없는 빵 덩어리 위에 치즈 한 조각을 얹어 먹던 신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이거... 정말 제가 먹어도 돼요?”

 

“물론이지. 넌 그 정도 음식을 대접받을 자격이 있단다. 눈치 보지 말고 즐기렴.”

 

“가, 감사합니다.”

 

아스토는 눈앞에 놓인 음식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제대로 손질되지 않은 고깃덩어리를 대강 불에 그슬린 다음 큼직하게 썰어 식탁에 올려놓곤 했지만, 신관이 대접한 스테이크에는 고급스러운 석쇠무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스테이크는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적당히 익어있었고, 과즙이라도 넣은 것인지 고소한 감칠맛 뒤에 산뜻한 라즈베리 향기가 감돌았다.

스테이크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지만, 감자 역시 일품이었다.

브로콜리 가루를 살짝 흩뿌린 치즈는 감자 조각을 떼어낼 때마다 진득한 벌꿀처럼 길게 늘어지곤 했다.

옥수수 샐러드를 얹은 빵 덩어리가 그나마 평범했다.

그러나 걸쭉한 스프에 찍어 먹으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적당히 간이 된 스프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크림 맛이 깊숙이 배어있었고, 거친 빵을 부드럽게 적셔주었다.

 

 

여리고 착한 수인이라 해도 야수의 본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스토는 처음엔 어설프게나마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음식을 찍어먹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포크마저 내려놓고 두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신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방자한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스토는 옥수수 샐러드에서 떨어져 나온 야채마저 깨끗이 먹어치운 뒤, 두 눈을 감고 행복한 한숨을 내쉬었다.

 

“... 며칠 굶었니? 이걸 다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무 맛있어서요. 이렇게 맛있는 건 먹어보지 못했거든요.”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식당 문이 열렸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신관이 활짝 열린 문 사이에 서 있었다.

 

“그래, 애한테 뭘 좀 먹였나?”

 

“자네도 이 애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어야 하는 건데.”

 

아스토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실 달아올라 봤자 검은 털 때문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그는 가끔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완전히 잊어버리곤 했다.

 

 

신관들은 낄낄거리며 자기네들끼리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문득 궁금해진 아스토는 두 귀를 쫑긋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려 했다.

그러나 막상 집중해서 들어보니 딱히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장 난 수레를 오늘 내로 고쳐야겠다는 이야기, 쟁여놓은 꿀로 과자를 만들자는 이야기, 이런 내용의 잡담은 아스토의 집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맞은편에 앉아있던 신관들은 돌연 태도를 바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스토를 바라보았다.

입을 뻐끔거리며 시선을 모로 내리는 것이,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는 것 같았다.

 

“밥 먹자마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좀 미안하긴 한데, 뭣 좀 물어봐도 되겠니?”

 

“뭘 물어보고 싶으신데요?”

 

“세스님을 끌고 가려 했다는 요정이야기 말이다.”

 

“나이아스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나이아스. 대체 그놈들 정체가 뭔지 자세히 얘기해주겠니?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흘려들었다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구나.”

 

“어... 어떻게 대답해드려야 할지...”

 

막상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하니 입이 턱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아스토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스럽게도 신관은 어린 아이에게 잘못을 돌릴 정도로 약아빠진 수인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던진 질문이 너무 애매모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어째서 그 요정들이 세스님을 데려가려 했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아, 그건... 요정들이 보기에 잘생긴 용인이나 어인이 있으면 물속으로 끌고 가는 거래요.”

 

“자, 잘생겼으면 끌고 간다고?”

 

“네. 엄마가 그랬어요.”

 

“... 그렇다면... 이건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군.”

 

아스토에게 말을 걸어오던 신관은 멋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신관이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럼 앞으로도 세스님이 바라시는 대로 숲을 산책시켜드려도 되겠...”

 

“그럴 순 없어.”

 

“에?”

 

“유괴범이 아니었다고 해도, 세스님이 위협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

 

“게다가 우리는 그 ‘나이아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 숲은 여전히 위험한 곳이야.”

 

“... 그래, 유사드 자네 말이 맞네. 숲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위협이 많을 테지. 하지만 어쩌나, 세스님이 그렇게 고대하던 시간이 이 산책 시간이었는데...”

 

“산책 한 번 안 한다고 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네.”

 

“내 말은, 그 분에게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는 뜻이야. 생에 보람을 불어넣는 일이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활력을 주는 일은 쉬이 찾을 수 없어.”

 

자신의 곁에 서 있던 용인을 ‘유사드’라 칭한 신관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차갑게 식은 창틀을 움켜쥔 채 꼼짝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날을 되짚어 보듯, 애틋하게 물든 눈동자에서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풍겼다.

 

“... 그분의 자유와 청춘, 활력마저 빼앗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야.”

 

“...”

 

이번만큼은 유사드 신관도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안타까운 표정을 얼굴에 머금은 채 손톱을 세워 애꿎은 식탁을 긁어댈 뿐이었다.

감히 말을 꺼낼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스토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두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단지 숲에 위협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세스가 숲에 드나드는 것을 막으려면 모양이었다.

 

 

사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숲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의 위험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전부 예방할 수 있어서였다.

그런 것도 모르고 숲 전체를 위험한 곳이라 매도하는 것은 아스토가 사랑하는 숲을 모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던 아스토는 조금 부루퉁한 목소리로 불쑥 말을 꺼냈다. 

 

“저어... 숲은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에요.”

 

“응?”

 

“그래도 못 믿으시겠다면 제가 그 애랑 같이 다닐 수 있어요.”

 

“...”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던 신관의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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