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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이드_8

ㅋㅁㄴ(118.32) 2015.02.05 02:59:47
조회 1008 추천 12 댓글 8

폭탄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고백인 만큼, 블렌드가 받은 충격도 상당했다.
생각해 보라.
비록 자신을 살해하려던 의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자에게 결코 해선 안 될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블렌드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해버렸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쪽방을 나섰다.
뒤를 돌아본다거나 드루이드에게 사과를 건네는 행동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또 앞으로, 기계처럼 걸을 뿐이었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에, 드루이드는 초연히 두 눈을 감았다.
눈이라도 감지 않으면 원망 섞인 사랑을 참아낼 수가 없어서였다.
저벅이며 멀어지는 발소리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랑의 승낙도, 거절도 받지 못한 드루이드는 고즈넉한 쪽방에 혼자 남겨졌다

 

그래. 그는 떠났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당황스러운 표정만을 남기고, 그는 영영 떠나버렸다.

 

이 생각은 단지 추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가 정말로 떠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서, 코가 먹먹해서, 눈물이 샘솟아서, 차마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드루이드는 흙벽에 몸을 기댔다. 유린당한 몸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으나, 그마저도 버티지 못했다.


자기 자신의 몸뚱이도 간수하지 못하는 그에게, 떠나간 이를 붙잡을 만한 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잘못으로 돌리며, 드루이드는 울었다.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래 울었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손등을 악물고, 흐드득 흐드득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드루이드는 자신의 방을 나섰다.
우울하게 가라앉은 얼굴에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항상 단정하게 입고 다니던 신관복도 여기저기 구겨진 상태였다.
촉촉하게 젖어든 눈가를 연신 비비는 것이, 아직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굳이 의식을 치르려 하는 이유는 잠시라도 고통을 잊고 싶기 위해서인지도 몰랐다.

 

 

성소는 언덕에 있었다.
달빛이 온전히 내려앉는 그곳으로, 드루이드는 그곳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매서웠던 날씨가 옷 두 겹으로 견딜 수 있을 만큼 누그러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등에 맨 가방 때문인가, 뭔가...’ 드루이드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쓸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잊자. 어차피 더 이상 만날 일도 없을 수인이었으니, 그냥 잊어버리자.
마음을 다잡으며 발을 내디딘 그 순간이었다.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목소리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이봐.”

 

드루이드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놀란 기색을 온전히 얼굴에 내비치면서도, 조금 위축된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보고 싶은 나머지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닐까?
괜히 돌아보았다가 상처만 입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은 상대방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눈 녹듯 사그라졌다.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날카로운 눈매, 지울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 가슴팍에 길게 그어진 상흔... 틀림없이 그다. 그가 돌아왔다. 영영 떠난 줄만 알았던 그 수인이, 다시 돌아왔다.
 
“... 길을 잃은 거야?”

 

드루이드는 꿈꾸듯 몽롱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열 발자국 정도 떨어져 서 있던 사냥꾼은 조용히 대답했다.

 

“신경 쓰여서.”

 

드루이드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웃으며 왼손을 등 뒤에 가져다 댔다.
고사리 같이 여린 그의 손에 은빛 촛대가 들려 있는 것을, 블렌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 본 척, 그는 고개를 모로 꺾는 배려를 보였다.

 

“밖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의식을 마무리 지어야 해서....”

 

“그런가.”

 

여전히 목석같은 태도였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의식이라는 걸 보고 싶군.”

 

“... 이쪽으로.”

 

드루이드는 팔을 들어 언덕가를 가리켰다.
달빛 품은 은방울 꽃 무리가 흐드러지게 펼쳐져, 어둠이 유일하게 내려앉지 못한 곳.
사방이 밝기만 한 낮은 언덕이었다.

 

---------------------------------

 

달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던 은방울 꽃 무리는 그들의 발을 피해 제각기 고개를 돌렸다.
꽃망울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청명한 종소리를 웅웅 머금었다.
저 멀리 뻗은 언덕에까지 펼쳐진 은방울 꽃밭은 온 몸에 얼음 가루를 두르기라도 한 듯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아아, 하늘에 거대한 야간 등이라도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 드루이드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빛이 이렇게 밝을 수가 없다.
짙은 푸른색을 띤 채 무한히 펼쳐진 저 하늘이 청량하게 두 용인의 정신을 감싸 안았다.
성소의 위치도 모르면서 선두를 고집하던 블렌드는 이따금 고개를 돌려 일상적인 질문을 해 오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쉼 없이 쏟아지던 질문도 우물의 물이 마르듯 점차 줄어만 갔다.
언덕에 다 오를 때 즈음 와선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를 반복하여, 그들은 언덕 꼭대기까지 쉬이 올랐다.
성소에 도착하자, 드루이드는 가방에 담겨있던 곰 가죽과 제사 도구, 각종 과일들을 꺼내 성소에 올려놓은 뒤, 고요히 기도문을 읊었다.
의식이라 해 봐야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드루이드는 이러한 의식을 통해 가죽에 담겨 있는 곰의 영혼을 명계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껏 비아냥거리고 말았을 블렌드마저 아무런 말없이 그 모습을 관망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기도문을 끝맺은 뒤, 드루이드는 고개를 돌려 블렌드를 바라보았다.

 

“... 의식은 끝났어. 이제 가죽을 가져가도 좋아.”

 

“그래, 그 다음엔?”

 

“가죽... 가져간 다음엔...”

 

“...”

 

성소에 불편한 침묵이 맴돌았다.
드루이드는 홍조를 띤 채 두 손을 매만질 뿐,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사냥꾼의 건장한 몸이 드루이드의 어깨를 밀어붙인다.


무어라 저항할 새도 없이, 두 용인의 몸은 그대로 풀숲에 가라앉았다.  


방석처럼 촘촘히 자란 잔디가 용수철 튕겨 나오듯 몽실- 부푼다.


그 바람에 흔들린 은방울꽃이 짤그랑 소리를 내며 법석을 피운다.


드루이드를 덮친 용인의 입이 무어라 움직였지만, 방울꽃 소리에 묻혀 드루이드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이다.”

 

“뭐, 뭐라고?”

 

“이게, 내가 하는 고백이라 했다.”

 

드루이드의 고개가 일순 뒤쪽으로 고개가 꺾이고, 블렌드의 뜨거운 입술이 드루이드의 입술을 덮었다.
거친 숨결과 함께 블렌드의 혀가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드루이드는 곁에 자란 잔디를 힘껏 움켜쥐었다.

 

“아, 읍!”

 

진한 타액이 뒤섞이며 두 혀가 뱀처럼 미끄러진다.
블렌드는 성급히 손을 뻗어 드루이드의 뒷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한층 더 깊숙이 입을 포갰다.  
드루이드는 허리에서, 어깨로, 끝내는 머리로 뻗어오는 아찔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처음 키스하는 상대에겐 가혹하리만큼 격정적인 키스였다.
한번 상대의 혀를 붙잡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블렌드는 자꾸만 뒤로 물러나려는 드루이드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매끄러운 혀와 거친 혀. 반대되는 두 성질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레 엉켰다.
가슴이 철렁- 하는 것만 같아, 드루이드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읍...으웁...”

 

자신의 혀가 상대에게 감겨들고, 그의 타액이 목을 타고 넘어올 때마다 드루이드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전 처음 겪어본 키스인지라, 온몸을 폭풍처럼 휘어 감는 이 느낌을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드루이드는 바들거리는 손을 뻗어 블렌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블렌드는 있는 힘껏 드루이드를 끌어안았다.
자칫하면 품에 안긴 이를 으스러뜨릴 만큼 강렬한 포옹이었다.
포옹을 마친 뒤, 그는 혀를 뽑아 드루이드의 입가를 핥았다.
새빨갛게 빛나는 혀가 윗 입가, 아랫 입가, 마지막엔 다시금 상대의 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몸을 포갠 두 용인은 서로의 혀가 얽힐 때마다 얕게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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