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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이드_2

ㅋㅁㄴ(118.32) 2015.01.29 02:00:01
조회 1093 추천 9 댓글 5

작은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껄끄러운 잡초 냄새와 해토머리의 흙냄새가 묘하게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마치 내 집에 돌아온 것만 같았고, 당장에라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비록 잡초에 불과한 풀이긴 하지만, 새파란 빛을 머금은 풀들이 바람을 맞은 것 마냥 한들거리고 있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봄이라면 몰라도, 한겨울에 저런 풀이 나 있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혹시 얼어 죽어가면서 환상을 보는 것일까?

나는 다급히 왼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댔다.
손을 오므릴 때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한 열기가 새어나오는 것이, 환상이라 보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나는 낯선 방 한 가운데 누워 있는 듯 했다.
방 안에는 생기 넘치는 나무와 풀이 한가득 자라나 있었는데, 종달새 몇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은 채 골똘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멍청히 서 있던 새들이 뜬금없이 푸드덕거리며 주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찌악거리는 비명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가슴께까지 덮여있던 담요를 내던지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새들이 뭔가를 알리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덜컥

 

덩굴줄기에 가려져 존재조차 깨닫지 못했던 문이 열렸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밝은 빛의 로브가 엿보였다.
샛노란 원단과 주황색 실로 격조 있게 짜여진 로브는 창가에서 흐르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눈을 살풋 찌푸린 채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썼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은 듯, 그는 자신의 로브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구태여 재촉하지 않고 그가 자발적으로 모습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끼이익

 

문이 완전히 열렸다.
로브에 가려져 있던 그의 정체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흰색과 회색이 적당히 섞인 매끄러운 피부, 보기 좋을 정도로 뻗은 입가, 온화한 성격을 드러내듯 아래로 굽은 뿔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가 용인이라는 것을 깨닫자, 억지로 힘을 주었던 오금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단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느 신전의 복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신분만큼은 확실해 보였기에 긴장을 완전히 푼 것이었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용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새들이 소란스러워서 왔더니, 벌써 깨어 있을 줄은.”

 

“...”

 

“몸은 좀 나아졌는지.”

 

무시할 수 없는 권위가 흐르는 태도였다.

존대와 하대를 넘나들며, 그는 애매한 말투로 물어오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지우지 못하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나아지긴 했다.”

 

“... 숲의 가호가 있었군.”

 

아무래도 나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은 것인지 그 역시 냉담한 표정으로 응수해왔다.
명백히 경멸이 실린 눈초리를 확인한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가 나를 구해준 것이 확실한 마당에 무례한 말투를 꺼낸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잠시 기다리도록. 뭔가 먹을 것을 내올 테니.”

 

“... 그러지.”

 

그는 대답 없이 문가를 나섰다.
쾅 하고 거칠게 문을 닫는 소리가 가슴을 뒤흔들었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라, 나는 손에 들려있던 담요를 거칠게 내팽개치며 화풀이를 했다.
부모님은 항상 본능에 따라 행동하라 했고, 그것이 사냥에서는 썩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그런 충고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단지 첫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생명의 은인을(확실하진 않지만) 막 대하고 만 것이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푹신한 솜털로 채워진 투박한 베개들이 그 좁은 자리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나는 눈에 띄는 베개 하나를 집어든 채, 울적한 표정으로 작은 방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끝없이 높은 천장에 떠 있는 노란 구체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작은 짐승들은 나무 주위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작은 방은 궁색했고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었으나, 무척 황홀한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다시금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바람과 함께 불어온 밋밋한 죽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방을 나선 뒤 로브를 정갈하게 다듬었는지, 그의 옷자락에 살짝 엿보이던 구김살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배가 고플 것 같아 가져왔는데, 먹을 수 있겠지?”

 

“...”

 

“...먹기 싫은가?”

 

“아니, 고맙게 먹겠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쟁반에 담긴 음식은 그리 호화롭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후끈한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흰 쌀죽부터 싹싹 비웠다.
주린 배는 음식 맛을 보자 더욱 들이라 들이라 했고, 나는 죽 그릇 옆에 놓인 빵마저 모조리 먹어치웠다.
나무둥치에 앉아 멀거니 나를 바라보던 용인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내게 물어왔다.

 

“이 겨울에 어딜 가려 한 거지?”

 

“마을에.”

 

“숲에서 사나?”

 

“그래.”

 

“... 그렇다면 역시 사냥꾼인가?”

 

묘하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나는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유심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
섣불리 사냥꾼이라고 대답했다간 왠지 미움을 살 것만 같았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용히 물었다.

 

“먼저 질문했는데 미안하지만, 그쪽은 직업이 어떻게 되지?”

 

“... 나에 대해 들어본 적 없나?”

 

“신관인가? 아테르 신전은 족히 하루는 꼬박 걸어야 도착할 텐데, 여기가 아테르 신전인가?”

 

“드루이드.”

 

“드루... 뭐?”

 

“드루이드, 들어본 적 없나?”

 

“... 아아, 생각 났다.”

 

드루이드, 그래. 드루이드라. 부모님께 들어본 적은 있다. 조모에게서도, 조부에게서도, 드루이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드루이드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내린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답답할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족속이라 평가했었고, 어머니는 절대 엮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드루이드. 숲의 현자. 그러나 사냥꾼들은 그들을 결코 현자라 부르지 않는다.
끔찍할 정도로 살생을 싫어하는 족속들이 그들이니까.
우리 가문은 몇 대째 드루이드와 엮인 적이 없건만, 내가 불행의 시초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역시 본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유 모를 거부감은 필시 그의 신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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