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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1

케모너(1.232) 2014.03.17 15:40:29
조회 476 추천 0 댓글 2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오늘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통이 모든것을 바꿔버렸다.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4구역에서 근무하던 그가 감염되었다고 무미건조하게 전해왔다.

그 남자는 격리 구역에서 죽은듯이 잠만 자고있다고, 주변 인물들도 감염여부는 모르지만 전부 격리시켰다는 끔찍한 내용도 서슴없이 말해주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배에 가져다 댔다. 목소리가 떨려나올것 같았지만 아무 내색없이 전화를 끊었다.

엉망진창인 집안을 뒤져서 그나마 멀쩡한 옷가지를 꺼내입고 오발탄마냥 갈데없이 주변을 배회하는 노란 택시 하나를 잡아탔다.

 

"어디요?"

 

 

"4구역 격리실이요."

 

 

기사는 백미러 너머로 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헝클어진 머리, 변변찮은 옷가지를 보고 단박에 뭔가 깨달은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혀를 차더니 이곳저곳 급조한 티가 나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 차를 몰았다.

어떻게든 불룩 솟은 배를 감추려고 했지만 억지로 숨기기엔 생명의 부피가 너무나도 컸다.

부질없이 숨기는 짓은 그만두고 애써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격리구역은 해마다 점점 넓어져서, 이젠 우리가 스스로 고립된 꼴이나 다름 없었다.

저마다 명품 백을 어깨에 걸치고 꼿꼿이 걸어다니던 여자들은 수척한 표정으로 장바구니를 메고 다녔고, 개중에는 미망인도 여럿 있었다.

법의 울타리 안에서 근근히 살아가는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좁디좁은 시가지를 지나서 택시는 점점 외진 구석땅으로 들어갔다.

흰 페인트가 벗겨져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는 건물은, 하얀 돔에 겹겹이 씌워져 있었다.

세상에, 아우슈비츠라고 해도 믿겠네

격리구역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보고 싶지도 않은 그런 끔찍한 곳이다.

그런데, 난 지금 이곳으로 걸어들어가야한다.

몇번째 돔에 그가 격리되어있을지 모른다.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파고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벨을 눌렀다.

 

 

"누구시죠?"

 

"아까 전화받았던 사람인데요, 이형석씨..."

 

"들어오세요."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언제 깔아놓았는지도 모르는 돌 타일을 밟고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가니, 신경질적인 표정의 여공무원이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한테는 아무 관심없이 한참동안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형석씨 어디있어요?"

 

"격리해놨어요."

 

"어디로 가면 되요?"

 

여자가 눈만 치켜올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여자가 그걸 왜 묻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수상쩍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애써 당당한 표정으로 꿋꿋이 서있었다.

 

 

"들어가면 감염되요. 면회는 불가능해요."

 

"감염되도 상관 없어요."

 

 

여자는 마치 여러번 해온것처럼 서랍을 열고 종이 몇장을 꺼냈다.

프린트로 찍어낸 동의서가 마치 준비라도 해놓은것처럼 수십장씩 서랍에 들어있는걸 봤다.

 

 

"여기에 싸인하고 지문 찍어요. 면회하고 같이 격리시설로 이동되는거 아시죠."

 

"알아요."

 

"당신 임신했어요?"

 

여자는 검지로 내 배를 똑똑히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코트를 여미며 딱딱하게 대답했다.

 

"안했어요."

 

"임신했으면 아기가 전부 바이러스를 품게되요."

 

"아니라니까요!"

 

"그럼 여기 싸인하세요."

 

 

여자가 내민 동의서는 지극히 단순했다.

구석에 개미 글씨마냥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라고 적힌 글귀를 발견했다.

단순한 싸인 한번으로 인간의 생명을 포기할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지장을 찍고 나자 여자가 뒤에 달린 왜소한 문을 열어주었다.

 

 

"면회하고 옷 갈아입고 여기서 기다려요. 수송차 올때까지."

 

"그래요."

 

 

문 안에 발을 디디자마자 거칠게 문이 닫혔다.

회색으로 범벅이 된 벽들은 격리실이라기보단 감옥같았다.

긴 복도 너머로 작은 문 하나가 더 보였다.

옆을 돌아보니 그 남자랑 관련있던 사람들이 체념한 표정으로 좁은 방에 앉아있었다.

나를 보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방은 108실까지 있는데, 109실에 그가 머물고있다고 했다.

난 옷을 갈아입지 않고 곧바로 복도 끝의 문을 열어제꼈다.

 

 

 

 

 

그는 철골 위에 시트 몇개 달랑 깔아놓은 딱딱한 철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이미 잠에서 깬듯, 또렷한 눈동자로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내가 헛기침을 한번 하자 비로소 그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았다.

회색 벽이랑 똑같은 색깔의 털이 온몸에 나있는 것이,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그렁그렁하게 커졌지만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도로 고개를 돌리고 약간 벌어진 입을 꾹 닫았다.

 

 

"먹고싶은거 없어?"

 

 

"..."

 

 

"필요한거는 없고?"

 

 

"..."

 

 

"뭐 사다줘?"

 

 

"..."

 

 

남자는 아무말이 없다.

나도 딱히 할말이 없어서 그저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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