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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백석 -2

케모너(118.32) 2014.02.25 00:36:12
조회 478 추천 0 댓글 5

터미널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옆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거북이마냥 가방을 메고 걸어다니고 있다.
당일 번개 할때마다 들르는 곳이지만, 이번엔 여행을 위해 들러서 그런지 감회가 색달랐다.


"옆자리에 수인 있나요?"


"예? 저도 잘..."


"그럼 개인석으로 주세요."


"죄송하지만 개인석은 자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음 차편 없어요?"


아직까지도 인간과 수인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딱히 법적으로 수인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인간들 본성에 잠들어있는 혐오감정까지 법으로 찍어누를순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9시 30분에 출발인데 15분을 남겨둔 지금 시점에서도 백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5분이 지나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락은 받지도 않고, 설마 바람맞은건가?
난 급하게 핸드폰을 켜고 카카오톡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메시지 옆에는 아직도 (1)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확인도 안했다면 계속 기다리다가 돈을 날릴순 없는 노릇이다.

난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서 배차장으로 향했다.
성질이 나서 티켓을 찢어버릴까 싶었는데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주머니 속에 찔러넣었다.


"나왔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이렇게 늦었어! 3분밖에 안남았는데!"


"버스 안에서 자서 그래."


백석은 담담하게 변명하곤 배차장으로 걸어갔다.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뻔뻔하다고 해야할지, 자기가 잘못한걸 모르는건지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다.
뭐, 그런 점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32번 차장이지?"


"어. "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음료수를 가방에 밀어넣는데,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 32번인건 어떻게 알았어?"


"니가 카톡에 올린 티켓에 3이 있길래."


"32번인걸 어떻게 정확히 알았냐고."


"니가 32번 승차장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잖아. 여차하면 혼자 뛰어가려고 그랬겠지."


그는 한심한 눈길로 날 내려다보았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틀린 추론이 아니라서 딱히 반박할수도 없었다.


"2분밖에 안남았어. 빨리 가지."


"..."

 

그는 앞서서 버스에 올라탔다.
나도 버스에 타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딱히 수인 지정석이 있는것도 아닌데 수인과 인간이 정확하게 양분되어 있었다.
백석이 거리낌없이 인간 앞에 앉자, 뒤의 인간은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금 기가 죽어서 벌서는 아이마냥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하게 앉았다.
관리인이 티켓을 끊으며 인원 수를 확인하고 나서야 버스는 느리게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이제부터 뭘 할까 싶어서 옆을 쳐다봤더니 백석은 핸드폰을 켜들고 나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무리 번개로 만난 사이지만 이렇게 무심해도 되는건가? 따지고보면 몇십만원짜리 여행을 공짜로 시켜주는건데 말야.
턱을 괴고 차가운 창에 얼굴을 댔다.
히터를 너무 세게 틀고있어서 따뜻하긴 커녕 답답하기만 했다.
그나마 차가운 창문이 털을 뚫고 올라오는 열기를 잠재웠다.
난 볼에 서서히 올라오는 기분좋은 냉기를 느끼며 시나브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다왔어."


"어..그래..."


난 창문에서 머리를 떼고 늘어지게 하품했다.
동서울에서 인천항까지 가는 차편이라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은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빗을 꺼내들고 창문에 짓이겨진 머리칼을 다듬었다.


"...야... 그렇게 대놓고 빗질을 하면..."


"넌 털이 짧으니까 그렇지."


난 강하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엉킨 털을 작은 봉투에 담았다.
이렇게 청결하게 관리를 해도 수인을 싫어하는 인간들은 무조건 싫어하게 되어 있다.
난 벗어두었던 가디건을 낑낑거리며 입은 뒤,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나가서 택시라도 잡아탈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렸더니, 의외의 인물이 우릴 반겼다.


"이희랑 기자님 맞으시죠?"


"네? "


난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백석이 손가락질한 곳을 바라보았더니, 사진으로만 봤던 서영석,이지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곳에서 뵙네요. 반갑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고마움의 감정이 있었기에 나도모르게 허리까지 굽혔다.


"아... 그렇게 부담스럽게 인사하시면..."


여성은 무안하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전체적으로 귀염성있게 생긴 얼굴이고 키도 작았다.
그런 반면, 남편이 될 수인은 마초남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옆에 계신분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백석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사기 잘쳤다고 소문이 날까?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조수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아, 이분은 제 조수라고 보시면 되요. 수습기자 아시죠?"


"아아... 수습기자시구나."


"이래보여도 시력은 디지털 카메라에 청력은 녹음기 수준이랍니다."


"...네에..."


여성은 머뭇거리며 애꿏은 머리카락을 쓸어댔다.
막상 이렇게 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니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희랑씨는 털이 되게 깔끔하시네요."


"네? 털이요?"


"이분은 보시다시피 씻는걸 싫어하거든요. 꼭 강아지처럼."


하기사, 그녀 옆에 서있는 수인은 제대로 씻고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아보였다.
그래도 수인 자체는 괜찮은 인상이라고 봐줄 수 있었다.


"아무튼, 여기서 만났으니 저희랑 함께가요. 그게 훨씬 편하실테니까요."


"그래주신다면야 택시비 굳고 좋죠."


나는 캐리어를 들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아까부터 말이 없길래 옆을 쳐다보니, 백석은 신기한듯 어린애마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번 여행 말인데요."


잘 걷고있던 여자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수인협회 대변인이랑 인간 협회 대변인분도 오신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분들이 왜?"


그녀가 말한 협회들은 극수인파, 극인간파에 속한 급진 단체들이었다.
공존보다는 격리, 배척을 슬로건으로 삼은 만큼 인간 차별주의자나 수인 차별주의자도 많았다.


"게다가 각자 기자들을 데려온게, 좀 많이 불편해요. 희랑씨는 제대로 된 기사를 써주실수 있죠? "


"물론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인간의 편도, 수인의 편도 들지 마시고 중도적인 관점으로 써주시길."


아까부터 아무말 없던 수인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처음 입을 열었다.
저주를 하면 했지, 결코 축복을 내리진 않을 단체들이 모였다는게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행복하게 웃어야 할 예비 신랑신부들은 어딘가 상처입은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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