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침착하고 상황대처를 잘 해야만 했다.
내 뒤에 있는 것이 그 누구던간에, 내 정체만 모르게 하면 될 것 아닌가.

[0.000km]

반올림을 고려한다면 지금 나와의 거리가 50cm보다는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한 가지 사실은,
내 뒤에 있는 누군가는 현재 어플에 접속하지 않았다는 표시가 되어 있는 것!
따라서 그가 내 정체를 눈치챘을 확률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재빨리 어플을 종료시키고, 난 침을 꼴깍 삼키면서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상태로 180도를 채울 때까지 나는 조금씩 조금씩 몸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나갔다.

"김재윤 맞지?"

나보다 더 굵은 목소리가 그 주인의 모습보다도 더 빨리 내 뇌를 파고들었다.
원래는 빛이 소리보다 빠르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더 기묘한 일이 있다면, 그건 내가 그와 만났다는 일 자체가 아닐까 싶다.

"어, 응..."

쭈뼛거리며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하며 내심 신기했지만,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룸메이트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통보 받은적이 있다.
나와 같은 1학년에 동갑, 그리고 내 기억대로라면 이 녀석은...

"황현민이라고 했었지?"

그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온 몸을 덮는 잿빛 털에는 윤기가 흐르는게 관리는 잘 하는 모양이었다. 옷에도 딱히 털이 흩날리지는 않았고.
개 수인인지 늑대 수인인지 처음엔 헷갈렸지만, 역시 이 룸메이트는 늑대 쪽이 맞는것 같다.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응."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했다. 현민이의 손에 달려있는 젤리가 참 말랑말랑한게 촉감이 좋았다.
평소 때였다면 또 만져보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서 내 머리는 그런 상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 녀석이 게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게이라는걸 또 들킨다면?

일단 나는 어플에 등록을 할 때 사진을 올려 놓지 않았다. 단지 프사로 손만 찍어서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게이라는 것을 들킬 이유는 딱히 없는 것이다.

어플에 그놈의 위치정보제공 시스템만 없었다면...

저녀석이 어플을 키는 순간 제일 가까이 있는 날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만 해도 몸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같은 게이라지만 남에게 내가 게이라는 것은 들키기 싫으니까.
특히, 한 학기동안 같이 지내게 될 룸메이트라면 말이다.




등장인물 이름 짓느라 시간 다 날림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