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를 끌고 7층에서 내렸다.
내가 가야할 곳은 707호인데, 7이 두 개나 있으니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게 된다.
이런 기대와 약간의 걱정과 부담 등이 담겨서 잔뜩 무거워진 짐을 카트로 끌면서 내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앞으로 한 학기 동안 내가 신세지게 될 방으로 말이다.



"누나,"
"응?"

누나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무식한 도전이라... 프로그램 이름을 보고서야 나는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입학 전까지의 휴식 시간(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위한?)은 체감상 너무 길었는지,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동안 내 뇌는 날짜에 대한 관념을 싹 잊어버린듯 싶었다.
하지만 곧 다시 떠올리게 될 테니 별 걱정은 없었다.

"나 기숙사 통과했어."
"잘됐네. 내 책들 니 방에 놓고 다녀도 되지?"

나는 올해 누나가 다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집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있는 학교로,
나름 명문 대학이라 그런지 기숙사에 지낼 학생을 뽑을 때 거리와 성적을 같이 보는 것 같았다.
이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한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라 우리 남매의 운명은 성적에 달렸는데,
난 통과되었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나는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작년까진 누나도 기숙사에서 지냈었지만, 2학기 성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뭐, 알았어. 대신 기숙사 생활 잘하는 노하우좀 알려줘."

누나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만 했다.

"노하우는 무슨 노하우야. 적당히 살면 되는거지."
"아니, 뭐 그래도... 걱정되잖아..."
"너 게이인거 들킬까봐?"
"아 쫌!"

몰래 BL 동인지 보다가 누나한테 걸리지만 않았어도 저런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다.
난 그저 동인지 본건 인정하는데, 일반 동인지인줄 알고 잘못 받은거라고 황급히 둘러댔지만
누나는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래부터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도 한몫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 사실은 누나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
의리는 있는건지 용케 부모님 귀에 집어넣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좋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토요일에 룸메이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거였는데...
괜히 누나가 딴 얘길 꺼내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냥 적당히 하는 수 밖에.

이윽고 707호에 들어서니, 내가 앞으로 살아갈 공간이 보인다. 우리집보다 깨끗하다.
이층 침대 하나와 책상 둘. 옆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는데, 안에는 샤워 부스와 욕조까지 있다.
이건 거의 호텔급 아닌가. 완전히 땡 잡은 기분이다.

한쪽 책상 위에 커다란 상자가 둘이나 있다.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룸메이트가 벌써 왔었나 보다.
룸메이트는 어떻게 생겼을까? 당연히 남자일테고...
잘생겼으면 좋겠다. 내 이상형이면 더욱 좋을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해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 이상형이 룸메이트로 와 봤자 사귀지도 못하는걸...

... 그래도 기숙사 쓰는 학생 중 게이가 있지 않을까?
커져가는 호기심 속에서 난 핸드폰을 꺼내서 어플을 켰다.
게이들 전용 채팅 어플인데, 유저들간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기숙사생 중에서 게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유저를 보았다.
나와의 거리가 0.01km... 십 미터이다.

\'... 어라...?!?\'

순간 그와의 거리를 알려주는 수치가 바뀌었다. 더 줄어든 것이다!

[0.009km]

이건 말

[0.008km]

도 안 돼! 나

[0.007km]

랑 얼마

[0.006km]

되지도 않는 거

[0.005km]

리에 게이가 있다니!
오 미터? 설마 지

[0.004km]

금 복도에 있는건가?

[0.003km]

잠시 변동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내 등 뒤에서 삐삐삐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에 들어올 만한 사람은 룸메이트밖에 없는데 말이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0.002km]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0.00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