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들어줘. 그러겠다고 나와 약속해."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의 입에 붙여놓았던 청테이프를 뜯는다. 가능한 아프지 않게끔. 지익-  그의 주황빛 털과 흰 수염이 천천히 드러났다. 그의 표정은 어쩔 수 없이 아픔을 느끼는 듯 일그러졌다.
"이게.. 대체 무슨..?"
테이프를 반 쯤 뜯어  말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니깐. 그의 목소리에는 영문 모를 당혹감, 어떤 놀라움과, 마치 전류처럼 강하게 전해져오는 분노가 있었다.
나는 그의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검지 손가락만 세워서. 쉿. 말 없이 들어주겠다고 약속해줘. 응? 그러자 그는 아파보일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강하게 몸부림쳤다. 침대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격하게. 침대가 끔찍한 쩌걱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비오는 날의 습기에 약해진 것은 아닐까, 무너지면 어쩌지. 잠시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온 몸에 매어놓은 밧줄은, 끄떡도 없이 그의 몸을 묶어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확인한다. 밧줄이 끊어진다고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임을 그도 알아챈다.
"그래? 할 말이 있다면 해봐. 내가 왜 여기에 묶여 있는지. 아니, 애초에 여긴 어딘지부터. 전부 다."
나머지 청테이프들을 뜯어낸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렬했었던 몸부림을, 이제 완전히 멈추었다. 이제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다. 그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고, 나도 그에게 시선을 맞추어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좀 길어. 지겨울 수도 있어. 하지만 참고 들어줘.
이거, 내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