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삼천원입니다."


알바생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태헌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당장 이 재료들을 가지고 어떻게 초콜릿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발렌타인 데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더러운 상술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초콜릿을 받을만한 애인도 없어서였다.


"저기요, 만 삼천원이에요."


"아, 네."


태헌은 황급히 지갑을 꺼내들었다.
만 삼천원을 단칼에 뽑아낼 형편이 안됄텐데도, 책갈피에 고이고이 접어뒀던 만원까지 써야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짝사랑하는 남자가 생긴것이다.


"거스름돈 이천원입니다."


소중하게 마련한 재료들이다.
싸구려도 아니고 전문 재료들만 구입했다.
이정도라면 성의를 표시하기엔 딱인 셈이다.


까톡


"왔다!"


주머니에서 학수고대하던 진동이 느껴졌다.
태헌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고 메시지를 살폈다.


\'너네 누나가 초콜릿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코우야는 집에 올 의사가 있어보였다.
친한친구라고 하더라도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주는건 무리.
이렇게라도 핑계를 대야 선물을 쉽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태헌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들어보고 싶었다.
집앞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게 다 뭐야?"


태헌은 문을 나서는 누나와 마주쳤다.
차마 당당하게 보여줄수는 없어서, 슬그머니 봉지를 뒤로 감추었다.


"오징어랑 뭐..."


"너 또 술사온거야?"


"어... 응. 술이야."


누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태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런 시선 받는건 익숙하지만, 오늘따라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나 나갔다온다. 엄마랑 아빠도 영화보러간데."


"알아."


누나는 더이상 아무말 않고 집을 나섰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다.
이제 초콜릿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태헌은 냄비에 물을 담고 가스를 켜고,
그 옆을 서성거렸다.
부글부글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끓는 물 속으로 초콜릿 봉투를 집어넣었다.
너무 뜨거워서인지 초콜릿들은 금새 녹아내렸다.


"이제 이걸 주기만 하면 되는거지?"


태헌은 멍한 표정으로 상상에 잠겼다.
워낙 단것을 좋아하는 아이니, 손이랑 혀까지 동원해서 싹싹 핥아먹을 것이 분명했다.
얼굴 여기저기에 초콜릿을 묻히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치익


끓는 물이 흘러넘쳤다.
그 안에 들어있던 초콜릿도 녹은 봉투 사이로 흘러내렸다.


"어? 이게, 왜이래?"


황급히 불을 끄고 젓가락으로 봉투를 건졌지만, 내용물은 이미 흘러나온지 오래였다.
결코 보기 좋지는 않은 액체들이 가스레인지를 흥건하게 적셨다.


"이게 전부인데..."


지금 나가서 다시 사올 시간이 있을까?
그것보다, 남은 돈은 이천원뿐이다.
어쩔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태헌의 눈에, 먹다남은 초콜릿 덩어리가 들어왔다.
차마 저건 쓰고싶지 않은데...
눈을 딱 감고 초콜릿을 손에 들었다.
조금 먼지까지 묻은 표면에는 이빨자국까지 선명히 나있었다.
평소같으면 쿨하게 넘길 일인데, 자꾸 서러움이 밀려왔다.


"괜찮겠지. 뭐. 녹이면 다 똑같잖아."


비닐봉지에 초콜릿을 넣고, 다시 끓인 물 속에 넣었다.
이번에는 어느정도 녹자마자 재빨리 봉지를 꺼냈다.
다행히 아까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황급히 봉지를 옮기고, 가위로 끝을 살짝 잘라냈다.
네번정도 초콜릿을 짜냈더니 봉지는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 태헌이 스토리에 감정 이입을 못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