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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 syndrome - 11

케모너(118.32) 2014.02.13 23:16:34
조회 82 추천 0 댓글 2


 
스피커에서 어느덧 점심 준비를 알리는 예고령이 흘러나왔다.


"그럼, 수고해."


"잠깐만."


블랜드가 오른쪽으로 향하던 다니엘을 멈춰세웠다.
다니엘은 피곤하다는듯 얼굴을 찌푸렸다.


"또 왜?"


"이번에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뭘?"


"음식 만드는거."


다니엘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요리사는 너 아니었어? 난 요리할줄 모른다고."


"그냥 와보면 알아."


블랜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바삐 주방으로 떠났다.
다니엘은 항상 하는 헛소리겠거니 싶어서 제 갈길을 가려다가, 역시 마음에 걸리는지 블랜드의 뒤를 쫓았다.

 

 


이제 식당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난 식당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항상 죄인처럼 서있던 다니엘도 없고, 블랜드도 보이지 않았다.
메이슨이 혼자서 숟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길래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너 말고 다른애들은 어딨어?"


"나도 몰라."


"니가 아는게 뭐가 있겠냐."


메이슨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너 뭐야? 갑자기 왜그래?"


"이게 말끝마다 반말은. 무슨 귀한집 도련님이라도 되는것도 아니고 왜이렇게 까불어?"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음식들이 들어왔다.
블랜드는 평소처럼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다니엘이었다.
그는 아무 무늬없는 분홍 에이프런을 앞에 두르고 있었다.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짓고있긴 했지만 민망함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는지, 한손으로 끊임없이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메이슨은 얼빠진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너 이게 뭐야?"


"일손이 모자라다고 해서 내가 직접 도왔어."


다니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따끈따끈한 피자를 통채로 내 앞에 내려놓았다.

페페로니 소시지로 어설프게 배열한 글씨는 가까스로 문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s..o..rr...y?"


블랜드는 스파클링을 들고 걸어오더니, 들릴락말락하게 귀에 속삭였다.


"다니엘이 직접 만든거에요. 이 피자만큼은 자기가 직접 만들게 해달라고 해서."


다른 피자와는 다르게, 치즈가 움푹 패인 곳도 있고, 케찹이 지나치게 뿌려진 곳도 있었다.
다니엘은 초조한 표정으로 메이슨의 피자를 자르고 있었다.

 


"야 이게 뭐하는짓이야!"


"어...?"


메이슨의 피자는 너덜너덜하게 난도되어있었다.


"바꿔줘!"


"내걸로 바꿔줄게."


다니엘은 자기몫으로 보이는 피자접시를 내려놓았다.
메이슨은 자르지도 않고 주욱 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각자 음식을 받았는데도, 메이슨 말고는 아무도 음식을 손대지 않았다.
난 일행들이 그저 포크를 끼적거리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들어봐."


기다렸다는듯 다니엘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 오면 안됄 무슨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내 말 맞지?"


다니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지금의 부담스러운 상황은 그것때문인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사과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이 불편한 관계는 계속 될것이다.
난 식기들을 전부 내려놓고 다니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군청색 눈동자가 기대에 반짝거렸다.


"내가 이곳에 오지 못하더라도 수인들과 이렇게 식사하는 추억은 지구에서 나만 가질수 있는 특권일거야.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지내야 할지는 모르지만, 될 수 있는한 너희들과 즐겁게 보내고싶어. "


어물거리며 말했지만, 대충 의미는 전달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험한꼴을 당한건 나지만, 다니엘을 억지로 몰아붙인것도 따지고보면 내 잘못이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억지로 들춰내게 강요한 꼴이니까.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해. 원래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어. 너희들 하나하나 병에 걸려서 아픈적이 있었을거야. 난 그런줄 몰랐어."


"괜찮습니다."


다니엘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블랜드는 대강 사태가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게걸스럽게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나도 피자 한쪽을 떼서 입에 넣었다.
썩 맛있지는 않지만, 다니엘이 직접 만들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맛있어. 잘만들었네."


"...감사합니다."


"옷도 엄청 귀여워."


"..."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 연심을 품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난 언젠가 떠나야 하고, 어설픈 사랑은 후회만 남길 것이 분명했다.
석연찮은 햇빛이 식당을 비췄다.
구름 몇점이 끼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썩 나쁜 날씨는 아니다.
돌아가야 할 날은 어떤 날씨로 변해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난 남은 피자조각을 기계처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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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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