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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셔틀의 보디가드 - 1장 Twisted모바일에서 작성

어넝(1.242) 2014.02.08 02:27:27
조회 1047 추천 2 댓글 0

쉬는시간.
말 그대로 학생들과 교사들이 수업 중간중간에 쉬어가는 시간이다.
보통 학생들이라면 일부 교사들의 열정적인 수업으로 과열된 머리를 식혀가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이때, 지수는 머리는 커녕 오히려 몸까지 혹사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복도에서는 뛰지 않는 것이 교칙이었지만, 그런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더운 여름날이라 조금만 뛰어도 금세 땀범벅이 되어버리는 날씨에 지수는 혀를 내밀어 헥헥거리며 달렸다. 이럴땐 정말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지만 손에 든 차가운 딸기우유를 마셔버릴수는 없었다. 우유팩 겉면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이 제법 시원해 보였지만, 반드시 교실에 가져가야 했던지라 지수는 우유를 놓치지 않게 꽉 붙잡으며 속도를 높였다.
땀이 질척하게 배어있는 그의 손에서 우유와 빵이 미끌거리며 빠져나가려는 동안, 온 몸의 털도 땀으로 서서히 젖어갔다. 거기에 뛰기까지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심장과 허파는 차라리 그냥 터져버리고 말지 부풀었다 줄었다만 반복해가며 고통을 주었고, 관절에 녹이라도 슬었는지 다리는 어째 금방이라도 삐걱대는 소리를 낼 것 같았다. 흔들거리는것조차 뛰는데 방해될까봐 달팽이집처럼 돌돌 만 꼬리는 경련이 날 것만 같았다.
온 몸을 쿡쿡 찔러대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까 생각하며 지수는 계속 달렸다. 하필 그의 교실이 학교 매점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교실이었기 때문에, 그의 질주는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지수네 반 교실이 보였다. 2학년 2반 교실 창가쪽 맨 뒷자리에 빵과 우유를 갖다놓으면 이 일은 끝이기에, 지수는 이를 악물고 더욱 뛰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고통에서 해방될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 사실 그 뒤에도 고통은 멈추지 않을거라는걸 뻔히 알먄서도.

"시발 병신새끼. 시발 존나 쳐늦었잖아 시발놈아!"
창가쪽 맨 뒤자리의 주인이 지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면, 무슨 친위대마냥 주변에 있던 놈들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그러면 지수는 자동적으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미, 미안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바닥이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잘못했으면 지수의 안경이 튕겨져나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뻔했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지수가 안경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 동안 누군가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기 마련이었다. 지수는 그래도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거란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여, 여기..."
교칙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샛노란 머리카락과 정신나간 헤어스타일로 표현해낸 태지는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인간이었다. 그 양옆으로 뚱뚱한놈 하나와 홀쭉한놈 하나가 옆에 서 있었는데, 이들은 태지와 가장 친한 애들이었으며, 또한 태지만큼 지수를 잘 괴롭히는 녀석들이기도 했다.
"야, 야, 누가 딸기우유를 사오랬냐? 딸기우유 색깔 벌레로 내는거 모르냐? 존나 벌레 쳐먹으라고?"
이번엔 홀쭉이가 먼저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지수는 미안하다고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분명히 피자빵으로 사오랬을텐데 병신같이 단팥빵을 사와? 내가 단팥 존나 싫어하는거 모르냐?"
사실 거짓말이다. 분명 지수는 단팥빵을 사오라고 명령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온것 뿐이었지만,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반항한다고 더 맞을 뿐이었으니,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는 짓인 것이다.
그나마 몇대 덜 맞긴 했지만, 주먹이 지수의 가슴을 몇번 강타했다. 소리지르면 더 맞는다는 일진의 협박에, 지수는 이를 악물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다시 삼킬 뿐이었다.
뒤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젠 힐끗 볼 필요도 없이 지수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분명 일진 패거리 중 한놈이 지수의 책상 위에다 우유팩을 터뜨리는 소리이다. 필통이고 교과서고 분홍빛으로 흥건하게 물들어갔지만 지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맞는 횟수만 더 늘어났기 때문에, 그저 묵묵하게 샌드백 역할만 해 주는 동안 수업 종이 울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실 맞는 것보다 더 괴로운건 주변의 시선이었다. 패거리는 물론이고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따금씩 비웃는 시선이 느껴졌다. 심지어 다른반에서 구경 온 학생도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기도 했고, 아예 자기와는 다른 세계라는 듯 신경도 안 쓰는 아이도 있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학생도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결국은 그 아이에게조차 지수는 구경거리 신세였던 것이다.
계속되는 고통속에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책상은 여전히 딸기우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닦을 휴지도 없어서 지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칠판에 뭐라고 쓰면서 설명하는 것 따윈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이렇게 꼬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지수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수는 나름 모범적이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평범한 성적에 평범한 체격, 평범한 친구들까지. 더 잘하면 잘했지 평균보다 못하진 않았다. 이런 평범한 생활이 고등학교 가서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지수의 평범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뿐이었다.
일상이 뒤집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의외로 별거 아니었다. 학기초에 쪽지시험을 본 수업이 있었는데, 담당과목 선생님이 결과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라고 한 심부름을 지수가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맨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변태지의 시험지였을 뿐이었고, 지수는 꺼림칙했지만 일진의 자리에 가서 시험지를 주었다.
고민이 있었다면 일진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했다는것 정도로, 이름만 부르면 별로 친하지 않은데 어디서 친한척이냐며 때릴것 같았고, 변태지라고 성까지 불렀다간 그것도 그것대로 맞을것 같았다. 분명 자기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걸 싫어할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그냥 시험지를 주면서 "여기."라고만 말하는것 뿐이었다. 지수는 정말 생각한 그대로만 했다.
"야."
뒤돌아서려는 순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날아온 것이 주먹이었다.
안경이 멀리 날아가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이어졌다. 지가 할줄 아는 욕이 '시발'밖에 없는지, 일진은 연거푸 시발 시발 거렸다. 왜 맞는지도 모른채, 지수는 비명만 지르면 미안하다고만 빌고 빌었다.
자신이 맞은 이유가 "일진한테 말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지수는 이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담임한테 말해봤지만 그 관료주의자가 한 일이라곤 자신과 일진을 조용히 불러놓고 억지 사과와 억지 악수를 시킨것 뿐이었다. 결과는 뻔했지만, 배로 맞았다. 부모님을 걱정시킬순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완전히 비밀이었고, 어쩌다 나온 상처나 멍은 넘어져서 그랬다고 둘러대었다.
맨날 빵사오고 맞고, 방과 후에 끌려가서 맞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어째선지 뼈가 부러지진 않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방과후, 지수의 목엔 목줄이 채워졌다. 학교 뒤로 끌려간 그는 뒤에서 누가 차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미, 미안해..."
담배에 불을 붙이던 일진이 지수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시발, 털 많은 짐승새끼가 시발 사람 말을 하네? 야, 시발아. 너 개잖아? 개면 짖어야지, 멍! 멍!"
그 말에 패거리들이 전부 웃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인 것이, 패거리 중에서도 수인이 몇이나 끼어있었다. 지수는 옆구리를 맞은 충격에 낑낑거릴 뿐이었다.
"어쭈, 안 해?"
다른 놈이 담뱃불을 지수의 팔에다 지졌다. 단백질 타는 냄새를 풍기며 지수의 털이 까맣게 물들어갔다.
"아, 멍, 멍!"
수도꼭지에 물이 새듯이 찔끔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 또다른 녀석들은 지수의 책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전부 흙바닥에 쏟아붙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악마가 깃들어 있었다. 더럽고 무서웠다. 이 괴롭힘은 초기에 비하면 심한 편이었다.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테고.
"야, 야! 이거봐봐!"
지수의 필통을 뒤지던 한놈이 커터칼을 꺼내들었다. 나머지들이 죄다 굉장한걸 봤다는 듯이 "오오~"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개새끼야, 너 찌질하게 손목도 긋니?"
순간적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의 자국으로 지수의 시선이 향했다. 찌질한짓 맞긴 했다. 진짜 죽으려고 독하게 마음먹지도 않은 채 스트레스성으로 순간적으로 그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죽어버릴걸 하며 지수는 늘 하던 것처럼 후회를 하였다.
"아니면 시발, 나 찔러버리게? 시발아? 와, 이 시발놈 안되겠네? 버릇좀 고쳐주자, 시발."
이러면서 일진이 잡아당긴 것은 지수의 꼬리였다. 그러면서 꼬리를 잘라버리겠다는 소리를 하는 통에 지수는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또 다시 옆구리에 아픔이 전해졌다.
"머, 멍!"
동시에 목줄이 지수의 목을 잡아당겼다. 목이 조여드는것만 같아 지수의 숨은 거칠어졌다.
"엎드려 뻗쳐!"
지수는 자동으로 구부린 다리를 일으켰다. 빨리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주먹 쥐고"
주먹을 쥐니 흙바닥의 미세한 모래조각들이 손을 쿡쿡 찔렀다. 거기에다 일진놈은 당연하다는듯이 지수의 등 위에 않아서 담배를 피웠다. 사실 이건 여러번 있던 일이라서, 팔다리가 아픈것도, 목이 조이는 것도 한순간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게 지수에겐 고통이고 두려움이었다.
"아, 시발. 털에 땀 존나 쩔어."
이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일진이 지수의 털을 커터칼로 잘라내고 있었다. 교복 윗옷을 걷고, 등에 있는 털을 잔디 깎듯이 능숙하게 잘라내는 그의 손길이 지수는 미치도록 싫었다. 땅바닥에 물이 몇방울 쏟아졌다.
"어? 비다!"
지수의 심정을 하늘이 대변하듯이, 물방울은 높은 곳에서 뚝뚝 떨어졌다.
"시발, 우산도 없는데!"
일진이 칼을 내팽겨치고 어디론가 뛰었다. 낄낄거리던 다른 패거리도 담배를 집어던진 채 일진을 따라갔다. 그 중 한놈은 지수 목에 걸려있던 목줄을 거칠게 풀어내어 빼 갔다.
곧이어 소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학교 뒤 소각장 옆에 남은 것은 다음과 같았다.
상처투성이 개새끼, 담배꽁초, 책가방, 흠뻑 젖은 책들, 학용품, 커터칼, 깎이다 만 털.

지수는 그날 한번 더 손목을 그었다. 찌질한 시도로 끝난 것이 흠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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