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아이유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아이유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ARCC MAIN BXSL같은 BDC 분석하는법 풋바오
- 서부 정문 실시간 친중앞잡이척결
- [단편] 플래시 카운터 下 나보이
- 백종원유튜브 근황.jpg ㅇㅇ
- 오들오들 대학원에서 교수 잘 못 만난 썰 ㅇㅇ
- 민주당 비공개회의.. '여론 대응팀 창설 제의' 논란(1보)ㄷㄷㄷㄷㄷㄷ VWVWV
- 싱글벙글 어쌔신크리드 재팬 근황 ㅇㅇ
- 싱글벙글 의외로 pc한 국가 코드치기귀찮아
- 짤로 보는 2024년의 정치권 이슈 목련피는봄
- ??? : 초청권은 돈주고 사는거다!!! ㅇㅇ
- A-WEB) 사라진 선관위 중국인 99명 행방 ㅇㅇ
- 유럽도 대석열 지지 입갤 ㅇㅇ
- 전시 스트릿 (21장) doer
- [단편] 플래시 카운터 上 나보이
- 일녀혼 vs 한녀혼 결정적 차이 (ft.슈카).jpg ㅇㅇ
9주년 기념 코인 가지고 굿즈 만들어왔음
9주년 기념으로 산 건 좋은데 딱히 용도도 없고 가지고 놀기도 애매한 코인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없다가 다른 회사에서 괜찮은 상품을 찾았음대충 이런 스탠드에 넣으면 이쁜거 아님? 이란 생각이 들어서 만들기 시작일단 베이스로 TCG용 카드 전시대를 쓸거라 그쪽에서 사이즈를 떼와서 대충 퓨전으로 쓱쓱 그림그리곤 마찬가지로 도면으로 뽑는다사실 위에 3d 이미지에 수치만 적당히 써서 줘도 알아서 아크릴 아저씨가 가공은 해주겠지만내가 보기 편하자고 대충 만들었음로고도 넣고 싶으니까 구글에서 적당한 로고 파일을 찾아서 ai의 힘을 빌려 해상도를 올려준다좌우가 다른건 구멍을 가운데 뚫을지 위쪽으로 올려서 뚫을지 고민하다가 둘 다 그려서 랜더링 돌려본거라 그럼우측보단 좌측이 밸런스가 좋길래 좌측으로 정함나머진 주문만 하면 되는데아크릴은 국내 업체에 가공 의뢰했고로고는 데칼 전사지로 할까 하다가 잉크젯 전사지는 색이 흐려지고 이러는 걸 알아서스티커 형태로 뽑아주는 국외 업체를 이용했다그렇게 엑조디아를 모으면 이렇게 된다설명 안한 나사가 한뭉터기 더있는데 그건 뒤에 설명로고는 어떤 사이즈가 좋을지 결정을 못해서어차피 싼 가격이라 3, 4, 5, 6cm 로 뽑아봤는데5랑 6 사이가 딱 적당해보이는데 어쩔 수 없이 6으로 결정했다그리고 가조립을 시작했는데나사가 짧음ㅋㅋㅋㅋㅋㅋㅋ이게 그냥 카드를 넣을 거였으면 동봉된 나사로 감당이 됐는데코인 두께가 대충 3~4mm 정도 되다 보니까 그만큼 늘어나서 나사가 짧더라아차 싶어서 이 시점에서 나사를 새로 주문함근데 또 찐빠내서 이번엔 나사를 작은 걸 삼ㅋㅋㅋㅋㅋ국내에선 나사 하나에 1200원씩 받아서 화나가지고 알리에서 산건데 시간만 더버리고 다시 나사 주문함...이제서야 구멍 크기도 맞고 길이도 맞는 나사가 됨모든 부품을 다 모았으니까 조립. 해야겠지?해서 일단 가조립을 해봤다.불투명한건 아크릴 보호용 비닐을 안떼서 그럼생각보다 깔끔하게 잘 나옴아크릴 아저씨도 찐빠내서 주문한 세로 길이가 1mm 모자라긴 했는데 아무튼 조립은 됐고새로 산 나사도 끼워보니까 1mm 정도 남아서 위쪽 나사는 제대로 고정이 안되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조립은 됨비닐도 뗴어내고 완벽히 다 조립하면 이런 느낌이다비닐을 왜 마지막에 떼냐고 물어볼수도 있어서 답하자면아크릴은 저 보호비닐을 떼는 순간부터 엄청나게 먼지가 붙는다진짜 장난 아님. 조립하기 직전에 뗀건데도 사진에서 보이는 정도로 붙음.따라할 갤넘이 있다면 유의하길 바래코인 놀리는게 좀 아쉬워서 해보긴 한건데계산해보니까코인 10,000원카드 스탠드 10,000원(예비 차원에서 3개 사긴 함)아크릴 주문제작 10,000원(2mm 두께로 2개 했는데 3mm 하나면 될듯 이것도)나사 5,000원로고 스티커 6,000원해서 대충 41,000원 정도 들었음왜 했지 ㅅㅂ아무튼 가지고만 있고 놀리는 굿즈가 있다면 이렇게 재활용 해보는 건 어떨까비슷한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위에 올린 도면 사진에서 수치만 바꿔서 해달라고 하면 아저씨들 알아서 잘 해줄테니까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작성자 : desu고정닉
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3/3)
[시리즈]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 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1/3) · 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2/3) · 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3/3) 1924년, 레닌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만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끌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대신, 유언장을 통해 후계자 후보들에 대한 의견 정도만을 남겼다. 레닌의 유언장에서는 스탈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스탈린 동지는 서기장이 되면서 무한한 인사권을 갖게 되었지만, 그 권한을 신중히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중략...) 스탈린은 너무 거칠다. 이러한 결점은 서기장 직책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동지들이 스탈린을 서기장에서 해임하고 다른 사람을 임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중략...) (스탈린을 대체할) 이 사람은 동지들에게 더 관대하고, 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충성스럽고, 예의 바르고, 덜 변덕스러우면 된다. 이 점들이 아마 보잘것 없는 작은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중략...)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그러나 레닌은 자신의 명성을 활용하여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의사라도 확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년에 경고만을 남겼을 뿐이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레닌이 범한 실패 중 하나가 되었다.1922년, 스탈린은 서기장이 되었다. 서기장이 되면서 그가 얻은 인사권은 매우 강력한 권리였다. 레닌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기에, 후계자는 당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다. 당은 누구인가? 당은 인민이었다. 그 인민은 누가 선택하는가? 인사권을 가진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공산당 지역위원회 서기들을 임명했고, 이 서기들은 공산당 대회에 참석하여 거수기 노릇을 할 지역 대표들을 선출할 사람들을 임명했다. 그들을 뽑아준 사람들을 뽑아준 사람은 스탈린이었다.1927년,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스탈린은 어떤 인물일까. 피해망상을 가진 사이코패스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집권 후 레닌의 유언장에 언급된 인물들 중 제르진스키, 오르조니키제, 트로츠키 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처형했다. 제르진스키는 스탈린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인 1926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오르조니키제는 1937년 비밀경찰의 손에 죽기 전 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트로츠키는 추방되었고, 1940년 멕시코시티에서 암살당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모든 이들과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고, 그 자리는 철저히 스탈린에게 의존하고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로 채워졌다. 1927년 당시 소련의 상황을 보자. 이 해 소련은 기대수명, 인구, 산업생산, 생활 수준에서 1914년의 수준을 회복했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됐고, 자원만 축내던 귀족정도 사라졌다. 이에 인민들은 지지를 보냈다.그러나 여전히 위협이 존재했다. 소련 고위층은 자본주의 세력이 자신들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 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이미 적백내전과 폴란드와의 전쟁을 겪었고, 이후 나치 독일이 침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려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소련 지도부는 생존을 위해 빠른 산업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스탈린은 이를 위해 5개년 계획을 시행한다. 그는 성장하는 산업 도시로 노동자들을 이주시키고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민들을 집단 농장으로 집산화시켜 농산물을 아주 낮은 가격에 공급하도록 강제했다. 공산품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한 반면, 농산물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했다. 많은 농민이 도시로 떠나 노동자가 되었으며, 남은 농민들은 공산품을 구매할 수도 없었고, 농산물을 팔아 충분한 수익을 얻지도 못했다. 즉, 스탈린은 산업화 추진을 위해 농민들을 착취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농민들은 불리한 거래 조건에 반발하며 집단 농장을 거부하고 자급자족 농업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농산물 유통량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도시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면 대혼란에 빠졌다. 스탈린은 이 위기의 원흉을 쿨라크(kulak)라 불리는 부농이라고 보았다. 쿨라크들이 곡물을 비싸게 팔기 위해 감추고 내놓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탈쿨라크화 정책을 시행했다. 쿨라크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집단 농장에 추방했다. 그렇게 소련 정부는 전체 농민의 약 94%를 국가 소유의 집단 농장에 소속시켰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농민들이 처형되었고, 수용소로 끌려갔고, 굶어 죽었다. 아마도 1,500만명 정도가 죽었다. 농업 생산량은 3분의 1이 줄었고 가축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도시 산업생산 능력의 일부를 농민이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 돌려, 농민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며 더 많은 식량을 거래할 수도 있었다. 수많은 농민들을 희생시키는 대신 살려 두고, 그들의 곡물을 소비재와 교환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더욱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소련 정부가 선택한 방식은, 앞서 언급한 비효율적인 사실상의 농노제였다.5개년 계획의 주요 목표는 중금속 제조업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뜻에 따라 대규모의 중공업 공장이 우랄 산맥의 마그니토고르스크에 조성되었다. 이 지역은 인구가 매우 적었다.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할 생각도 없는데, 스탈린은 어떻게 이 춥고 낙후된 지역으로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그는 강제적인 징발을 활용했다. 국내 여권 제도는 노동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고, 일자리 여부에 따라 주거지와 배급 통장을 배정하는 방식은 이들이 일자리를 갖도록 강제했다. 징발을 거부하거나 고용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수용소로 추방되었고, 처형되기도 하였다. 마그니토고르스크뿐만 아니라 소련의 많은 계획 공업 도시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소련의 성공적인 산업 도시 구축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자유 박탈과 희생이 있었다.5개년 계획은 분명 효과를 보았다.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소련의 산업생산은 1933년에 181%, 1938년엔 558% 증가했다. 1928년부터 1958년까지 실질 국민생산은 평균적으로 매년 4.5%씩 성장했다. 이는 인상적인 수치이다.그러나 그 대가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었다. 집단 농장에 반발한 농민들은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공장 노동자들도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스탈린에게 반대 의견을 내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그저 스탈린에게 거슬리게 느껴진 지식인들도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관료들과 공산주의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대 대숙청에서 죽거나 유배된 당원과 정부 공직자는 500만 명이 넘었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 끊임없이 채워졌고, 그들은 그곳에서 죽나갔다. 스탈린 시기 소비에트의 정치, 경제 시스템은 실로 수많은 인민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돌아갔다.마르크스가 이 꼴을 원했을까? 만약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음울함과 경멸의 표정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르크스는 예언자였다. 자신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행보를 바라보며 음울함과 경멸을 느끼는 것은 예언자들이 빈번히 맞는 숙명이다.-「20세기 경제사: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브래드퍼드 들롱)를 읽고 작성함.
작성자 : 땅콩쓰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