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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일본 전국시대 주요 다이묘가문 후손근황
오다 코이치-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으로 현 오다 가문 당주가쿠슈인 대학 졸업후 저널리스트로 활동 오다 가문은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죽고 세력이 쪼그라져 도요토미, 도쿠가와 밑에서 간신히 가문을 유지하고 메이지 유신후자작에 봉해졌다.도쿠가와 이에나리-도쿠가와 가문 19대 당주장군가의 직계는 아니고 분가의 후손으로써 당주계승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후 번역가, 도쿠가와가문재단 이사장을 역임중이다. 입헌민주당에 입당해 중의원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베트남 여성과 결혼해서 주갤럼들의 워너비가 되었지만자식이 없어서 차기 당주는 불분명하다.다테 야스무네 - 센다이 다테가 18대 당주진주성 전투, 독안룡으로 유명한 그 다테 마사무네의 후손이다. 도호쿠 방송국이사, 즈이호덴 다테 박물관 관장을 역임중.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 자문으로 참가해드라마의 대히트에 입어 센다이 경제를 활성화 시켰다.현 다이묘 직계후손중 조상 마케팅을 잘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힘.우에스기 쿠니노리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 이래 우에스기가문의 현당주.도쿄대 졸업후 우주공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NASA와도 협업한 일본 우주산업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우에스기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도쿠가와 가문에게 밉보여져 영지를 대폭 삭감당하고 한때는 영지 반납을 고려할정도로 힘들게 살았으나 후에 번정개혁에 성공하고 도쿠가와 가문과도사돈을 맺고 번창중이다. 시마즈 타다히로- 시마즈 종가 32대 당주주식회사 시마즈흥업 대표이사 사장.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전사 시킨 그 악명높은 시마즈 요시히로의 직계후손.시마즈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때 서군에 참가해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밉보여 멸문의 위기에 처했지만 처세를 잘하여 살아남았고 막말시기에 쇼군의 정실부인을 배출하고메이지 유신에 큰 공을 세워 후에 공작가로 승승장구한다.마에다 토시타카- 마에다 가문 19대당주교토 이노다 커피 대표이사 사장마에다 토시이에 이후 마에다 가문은 도요토미, 도쿠가와 정권아래 카가 100만석을 지배하는 대가문 으로써 영위를 떨쳤다.허나 막부 내내 대영주로써 우대받아 메이지 유신에 소극적으로참여했고 자신들보다 영지가 작은 모리, 시마즈가 공작가가 된것과 다르게 마에다가문은 후작이 되어 푸대접을 받았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싱글벙글 조선의 신분제는 어땠을까?
보통 제식갤 등의 영향을 받아서조선은 확고한 신분제 사회라는 인식이 꽤 박혀 있는데의외로 조선 전기 기준으로는조선의 신분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음법적으로 노비나 백정 같은 천민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양민으로 똑같이 취급받았거든동시대 서유럽에서는 '자유민' 이라는 개념이 전체 인구의 소수였지만조선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민이었었음물론, 이건 법적으로 그렇고사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서열이 있기 마련이라실제 생활에서는 양민이라고 다 똑같이 취급받진 않았지이렇게 우리가 잘 아는양반-중인-상민-노비 계층으로 분화되긴 했는데,그렇다고 해서 조선을 신분제 사회로 규정하기는 애매한게왜냐하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노비나 백정을 일컫는 천민 개념만 없어졌을 뿐이지자본가와-정치인-관료-관리자-일반 시민이런 식으로 사실상의 계층 구조로 돌아가는 건 똑같잖아?막말로 우리 같은 싱붕이들이나 이재용이나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법 앞에서 평등하다곤 하지만실제 사회적 지위가 같은 건 아니라고 해서대한민국은 신분제 국가다 라고 하면 이상한 것처럼 말이야게다가 조선은 '교화'를 국시로 하는 나라였던 만큼관료계층인 양반을 가장 우대했던 나라지만그렇다고 해서 양반은 서유럽의 귀족과 달리혈통으로 계승되는 게 전혀 아니었어법적으로 4대조 조상 중 천민만 없었다면모든 양민은 과거에 응시할 권리가 있었거든물론 밥만 먹고 공부만 한 명문가 자제들이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했지만조선시대 보면 은근히 흙수저 출신 양민이 과거 문 뿌수고 급제한개천에서 난 용 같은 인간 승리 사례가 꽤 있었거든물론 당대에 이렇게 인간승리를 한 케이스 말고도일반 상민이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자식 농사 잘 지어서과거에 나가 양반이 된 케이스들 같은 건 셀 수도 없을 정도니까그런면에서 조선은 은근히 계층이동이 있던 나라였어애초에 양반의 정의가 4대조 이내에 관료가 있는 집안을 의미하는 건데그런 점에서 4대조를 넘어서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면아무리 집안이 잘났다고 해도 양반이 아니었던 것인만큼나라 꼬라지가 막장으로 치닫은 조선 후기 전에는그래도 신분제 측면에서는 꽤나 열린 나라였어애초에 미국의 공무원 시험이청나라에서 과거 제도가 시행되는 걸 보고'이렇게 공평하게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구나' 라고 감탄하고시작된 것이었던 점에서조선이 그렇게 억까를 당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다만 조선이 민본주의 국가였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던 것처럼양민 내에서 계층이동성이 있다곤 하지만천민에 대해서는 사실 말할 게 적어지는 건 사실이야사실 당시 중국에서는 천민 계층의 세습이최소한 법적으로는 사라진 상황이었음에도조선에서는 사대부 계층들이 농장 경영으로 생계를 유지했기에세습 노비 제도를 끝까지 유지했었거든그래서 조선 중기에는 노비 비율이 30%~50%까지 되었다고 할 정도로뭔가 좀 깨는 상황이 벌어지긴 하는데이를 두고 제임스 팔레는 조선은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했고(의외긴 하지만) 당시 이영훈씨가 그걸 반박하는 주장을 했었어물론 지금 이영훈씨 스탠스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야그래서 조선의 노비 제도는 조선의 신분제를 이야기 할 때좋게 이야기하기가 힘든 부분이긴 해다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조선의 신분제가 문란해져서개나소나 다 호적과 족보를 세탁해버렸거든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호적상으론 다 양반가 자손이고족보상으로는 명문가 출신인 참 묘한 나라가 되어버렸어물론 이런 상황이 국가 행정이 막장으로 치닫았다는 거니국가적인 입장에선 재앙이 따로 없었겠지만아무튼 이 과정에서 전 국민이 양반이 되어버리고이 와중에 노비들도 다들 세탁기를 돌려서19세기 후반에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공식적으로 철폐할 때쯤이면최소한 호적대장상으로는 이 나라에 상민과 노비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어그래서 국가 입장에서도 과감히 신분제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던 거고아무튼 아까 누가 조선 신분제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적어서이를 반박한다고 적다가 자괴감이 들어서이렇게 재미없는 글 적어봤어읽어줘서 정말 고맙다!
작성자 : 코드치기귀찮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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