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휴 그랜트와 드루 배리모어가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불렀던 노래 'Way back into love'처럼 녹음하고 싶었어요. 아이유가 한 소절 부르면 내가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드는 식으로요. 그렇게 녹음도 했는데 맨 마지막 '도대체 넌 나에게 누구냐?'만 살려 놓았더라고요. 하하하."

산울림 10집은 데뷔 시절의 음악으로 회귀하려 했던 앨범이다. '춤추는 밤' '숨길 수 없네' '동화의 성' '독수리가 떴네' 같은 하드록이 주류를 이룬다. '너의 의미' 역시 1집 발라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떠올리며 쓴 곡이다. 이 음반에는 산울림 삼형제가 연주한 곡과 세션맨들의 곡들이 섞여 있다. 또 수록곡 상당수는 당시 이무송의 밴드 '어금니와 송곳니들' 데뷔 앨범에 먼저 실렸다. 김창완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이 밴드는 영국 록밴드 앨범 재킷을 그대로 베껴올 만큼 엉성했던 팀이다. 이런 30년 전의 풍경에서 '너의 의미'가 다시 사랑 노래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 윗세대 어른들이 전쟁의 상흔을 '굳세어라 금순아'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노래들로 건너셨잖아요. 마치 헛개나무 술통에 담긴 술처럼 노래 몇 곡으로 질곡의 세월을 녹여버린 거예요. 나는 다음 세대에게 이렇게 한 세대 전의 사랑 노래를 전해주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김창완은 지난 3월 라디오 생방송 도중 'E메이저를 치면'이란 곡을 즉석 창작해 발표했다. 기타 E 코드를 친 뒤 "E메이저를 치면/ 그녀가 입던 초록색 점퍼가 생각이 난다" 하고 읊조리는 곡이다. 한대수가 2006년에 발표한 괴작(怪作) '지렁이' 이후 가장 충격적인 음악적 경험이었다. 김창완은 "설핏 잠든 사이에 번쩍하고 굉장히 복잡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을 코드 몇 개와 가사로 표현한 것"이라며 "음악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맘속에 있고, 여전히 해답을 찾느라 생쥐처럼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천재들을 이해하려면 생쥐를 관찰해야 하는 걸까.

인터뷰를 마친 김창완은 중국 음식과 고량주를 주문했다. 작은 병에 든 고량주를 마시던 그는 "이 술은 큰 병에 담긴 게 훨씬 맛있다"며 큰 병을 또 시켰다. 술병 두 개가 절반쯤 줄어들었을 때 그는 "막걸리 약속이 있다"며 고량주 병들을 안고 식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