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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게임으로 포커플레이어 있는 팀 가지고 노는 장동민
심리싸움에 자신있는 장동민이지만 하필 국내 최고 포커 플레이어가 2명(홍진호, 스티브예)이나 있는팀과 카드게임으로 붙게된 장동민 팀 홍진호와 스티브예의 공격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장동민 안그래도 카드게임이라 유리한데 카드까지 잘 받은 포커 플레이어 홍진호 스티브예 팀 공격적인 상대방의 성향을 이용해서 0승전략 성공한 장동민 이번에도 낙원팀의 전략을 예측하고 2승 전략 맞불 2승을 먹기위해 최고의 카드를 들고나온 낙원팀 를 모두 예측한 장동민 결국 2라운드도 장동민팀 압승 이번에도 낙원(홍진호 스티브예팀)팀의 모든걸 예측하는 장동민 그리고 자신의 턴에서 홍진호가 점수먹는걸 막아서 우승 확정 낙원= 홍진호 스티브예팀 130점 잔해= 장동민팀 230점
작성자 : ㅇㅇ고정닉
번역)8240부대와 한국전쟁의 유격전 – 2. 정보적 상황(1)
[시리즈] Dark Moon · 번역)8240부대와 한국전쟁의 유격전 – 책 소개 · 번역)8240부대와 한국전쟁의 유격전 – 1. 프롤로그 Dark Moon : Eight Army Special Operation in the Korean War다크 문 : 한국전쟁기 미 8군 특수작전Ed Evanhoe 저1. 정보적 상황 - 1945년에서 1951년 초까지2차세계대전 직후 1946년, 트루먼 대통령은 전략 사무국(OSS)를 한 번의 펜질로 해체했다. 트루먼이 제시한 이유는, 전쟁 전처럼 FBI와 군, 국무부에서 각자 정보를 수집해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별도의 해외 정보 기구를 유지하는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OSS 국장 윌리엄 F. 도노반제시되지 않은 이유는 아주 많았지만, 최우선적인 동기는 소속 정당에서 트루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OSS의 수장 윌리엄 F. 도노반 소장은, 워싱턴의 많은 정치인들에게 반감과 불신을 받았다. 그는 민주당 행정부에서의 완고한 공화당 지지자였다. OSS의 권한은 광대하고 불분명했으므로, 정치인들은 도노반이 FBI의 J. 에드가 후버가 그랬던 것처럼, 그 무한한 권한으로 공직자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수집해,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사용할 것이라 우려했다.FBI, 국무부, 군으로부터의 압력 또한 있었다. 후버는 OSS를 박살내야 할 건방진 라이벌로 보았다. 국무부는 자신들이 외국에서 직접 운용하는 첩보 요원들 외에 다른 요원들이 존재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런 요원들로부터의 보고는 정부에서 통제할 수 없으므로, 국무부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군은 2차세계대전 중 OSS에게 대부분의 정보적 역할을 상실했고, 이젠 돌려받기를 원했다.1947년이 되자, 동유럽과 발칸 국가들은 확고한 소련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철의 장막이 드리우며 서방으로 향하는 국경이 폐쇄되었고, 그렇게 냉전이 시작됐다. 서방의 외교관들은 수도에만 머무를 수 있게 되었고, 서방도 동일한 방법으로 보복했다. 동구와 서구 간 민간 통행은 더뎌졌다가, 공산 국가의 국민들이 서방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택하자, 완전히 중단되었다. 소련의 팽창 경계에 접한 대부분의 비 공산 국가들은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반정부 정서를 부추켰다. 공산주의 정변은 흔한 일이었다. 정변이 실패하면, 공산주의자들은 산으로 달아나 체제 전복 활동과 게릴라 전술로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 곧이어 공산당 주도의 내전이 그리스, 중국, 버마, 인도차이나에서 벌어졌다.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보 부처들은 난맥상에 빠져있었다. OSS가 2차대전 중 구성했던 첩보망은 사라져버렸고, 곧바로 대체될 수 없었다. 미군은 의회에서 급격히 군사 예산을 삭감한 탓에 세계적이고, 전략적인 첩보 부서를 운영할만한 훈련된 인원도 충분한 예산도 없었으며, 굳이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FBI의 자원들은 국내에만 묶여있었다. 국무부의 정보 체계는 국무부 내 다른 부서들처럼, 공산주의 옹호자들이 강하게 침투해 무능했다. 예산과 권한에 대한 부처 간의 경쟁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결과로, 미국은 다시 한번 공산주의가 새롭게 얻어낸 갑작스러운 성과에 놀라게 되었다.뭔가가 이뤄져야만 했다. 그것도 빠르게.1947년 말, 의회는 트루먼 대통령의 강력한 촉구(그리고 국무부와 FBI의 반대) 아래, 외국에서의 전략적 첩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를 창설했다. 타협이었다. FBI를 만족시키기 위해, FBI의 해외 사무실은 국제 경찰 조직들과의 연락소로 사용하도록 계속 운영이 허가했다. CIA가 미국 국경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수많은 제약 사항이 법에 포함되었다. 세부적으로, CIA는 미 국경 내에서 첩보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으며, 대신 미 본토에 요원 훈련 및 강평 시설을 가질 수는 있었다.당시에는 유럽, 즉 발칸, 터키, 그리스에서의 공산주의 활동이 주요 위협으로 여겨졌다.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먼 후순위였다. CIA의 첫 3년 동안, 부서 내 대부분의 작전 요원들은 유럽의 CIA 지부(Station)로 파견되었고, 비교적 적은 CIA 비밀 작전 예산의 대부분도 같은 지역에 할당되었다.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동남아를 삼키려 할 수도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자원, 즉 인력과 자금만이 극동으로 보내졌다.도쿄의 CIA 본부였던 NYK(일본우선) 해운회사 사옥. 더글라스 맥아더 육군원수와 그의 정보장교인 찰스 A. 윌러비 소장은 CIA의 극동 작전의 또 다른 걸림돌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개전 시점에서, 일본의 CIA 본부는 도쿄 시내 작은 호텔의 근무자 6명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숙소까지 호텔은 둘이었다. CIA 근무자들은 맥아더의 사령부와 그 휘하의 군사 기지, 즉 일본,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을 포함한 지역에서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이었다. 맥아더가 극동 CIA의 주 임무가 워싱턴에 있는 맥아더의 정적들에게 정보를 대는 것이라는 편집증에 가까운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맥아더(좌측 세번째)와 윌러비(좌측 두번째). 50년 6월 29일, 영등포 동양 맥주 공장의 수도사단 지휘소에서2차대전 당시 맥아더는 OSS 부대가 자신의 관할 아래에서 활동하는 걸 차단했었다. CIA가 탄생하자, 맥아더는 똑같이 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CIA가 그의 관할 내에서 작전할 수 있도록 허가할 것을 지시하는 직접 명령을 내리자, 맥아더는 마지못하며 따랐다. 그러나 공식 창구 이외에 “워싱턴 염탐꾼들”과 무언가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대빵”이 매우 언짢아 할 것 이라는 말이 돌았다. “공식 창구”라 함은, 극동사령부(FECOM)에 소속된 모두의 정확한 해석에 의하면, 맥아더의 정보참모부장인 찰스 윌러비 소장과, 윌러비 장군이 지명한 누군가를 의미했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CIA에 대한 맥아더의 시선을 바꾸지는 않았으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필요성이 극동 내 CIA 작전에 반발하는 그의 태도를 누그러뜨렸다.CIA 조직도(1949년 1월 시점)1950년 7월, OSS 출신의 2차대전 베테랑이자 CIA 출범 당시 처음으로 채용됐던 인물 중 하나인 프랭크 위스너가 극동 CIA 작전의 책임자로 일본에 도착했다. 위스너는 자신의 경험과, 심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능력과, 거의 무제한의 예산을 함께 가지고 왔다. 위스너가 제일 처음 착수한 일 중 하나는 새 부서인 특수작전실(Office of Special Operations, OSO)을 감독하기 위한 부관으로 한스 토프트의 배속을 요청한 것이었다.(*)* 위스너는 48년 9월~51년 8월까지 CIA의 정책조정실(Office of Policy Coordination, OPC)의 수장인, 정책조정보조국장(Assistant Director for Policy Coordination) 이었음. 토프트도 OSO가 아니라 일본지부 OPC 실장으로, 저자가 인용된 원서에도 OPC라고 나오는데 어떻게 오류가 생긴건지는 모르겠음...토프트는 덴마크 선장의 아들로, 흥미로운 배경을 가졌다. 그는 중국어를 포함해 6개의 언어를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었다. 무제한 선장 면허와 더불어, 개인 비행 면허에 계기 비행 및 쌍발기 자격을 갖췄다. 토프트는 2차대전 중 OSS에 모집되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적진 후방에 강하했었다. 마지막 후방 침투 임무를 마치고 퇴출한 후에, 그는 아드리아 해에서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에게 화기와 물자를 나르는 소형 보트 선단을 이끌었다. 토프트는 전쟁 중 소령 계급까지 올라갔으며, 1946년 초 현역에서 예편하기 직전 중령으로 진급했다. 전쟁 이후, 토프트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가 팬암 항공사의 현지 관리자가 되었다. 1948년 미 항공사의 스튜어디스와 결혼한 그는 미국으로 이사했다. 오하이오에 정착한 후, 토프트는 다시 비상근 예비역에서 상근 예비역으로 전환되었다.워싱턴 D.C. E Street에 위치한 최초의 CIA 본부이자 구 OSS 본부.1949년 12월, CIA의 극동부서 책임자인 리차드 G. 스틸웰과 그의 부책임자, 데스몬드 피츠제럴드가 토프트를 영입하려 시도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며 가족을 꾸리던 토프트는 거절했다.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바뀌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토프트는 2주 간의 하계 예비역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틀 뒤, 토프트는 E가의 CIA 본부에 나타나 CIA에 자원했다. 토프트는 채용되었고, 위스너의 요청에 따라 일본으로 배정되었다.좌측부터 한스 토프트, 알프레드 콕스(홍콩지부 OPC 실장), 리차드 스틸웰(CIA 극동지역 OPC 실장)토프트는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버마의 OSS 101 분견대 지휘관이었던 콜웰 비어스를 부관으로 영입했다. 둘은 아츠기 공군 기지 한 쪽 구석에 외떨어진 15 에이커의 공터를 찾아 건축물의 자리를 쟀고, 일주일 만에 엔지니어를 데려와 곧 천여명이 넘어갈 CIA 인원을 위한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좌측부터 토프트, Y부대장(영도유격대) 한철민 대위, 크레이머공사가 시작되자 토프트는 한국에서의 작전에 관심을 돌렸다. 그는 한국 내 CIA 작전을 위해 해병대 중령인 ‘더치’ 크레이머를 영입했다. 1950년 7월 말이었다. UN군은 묵사발이 나 부산 방어선으로 후퇴 중이었고, 크레이머는 CIA의 한국 기지를 한국의 서남 해안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있는 거대한 섬 제주에 설립했다. 인천 상륙작전과 낙동강 반격작전 이후, 크레이머는 본부를 부산에서 남서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섬 영도로 옮겼다. 1950년 11월 초, 영도 조직에게는 “주한합동고문단 Joint Advisory Commision, Korea”(*), 혹은 JACK으로 잘 알려진 위장 명칭이 부여되었다. * 명칭 자체를 직역하면 주한합동고문단이지만, 대원 제대증에는 주한연합고문단사령부로 기재되었으며 공식적인 한글 명칭은 주한연합고문단사령부인 것으로 보임한편, 토프트의 일본 OPC는 극동공군기술분석단(FEAF/TAG)이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음.영도에서 BAR 분해 결합법을 배우는 유격대원이 시점에서 영도에는 한국 정부가 사용중인 일제 시대 건물 몇 채와, 몇몇 근사한 일본 양식의 빌라, 그리고 두 세개의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크레이머는 남한 정부로부터 섬의 주민들을 육지나 다른 섬으로 이주시켜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영도와 주변의 수역은 섬에 사는 사람이나 업무상의 허가를 받은 이들을 제외한 모든 한국인들과 UN 인원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 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여러 달을 거쳐 영도는 무장한, 기밀 기지로 바뀌었으며, 전쟁 내내 그대로를 유지하게 되었다.Horace A. Bass. 러더로우 급 호위 구축함으로 건함되다가, 러더로우 급을 고속 수송함으로 개조한 크로즐리 급으로 변경되어 1944년 취역함. 오키나와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상륙 1파로 참전함미국을 떠나기 전, 토프트는 CIA 지휘 계통을 통해 고속 수송선과 수중폭파대(UDT) 인원을 한국 작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해군은 CIA 극동 작전에 협력하기 위한 주한미해군특수작전단(USNSOG,K)을 결성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1950년 8월 6일, 개수된 구축함 호레이스 A. 베스(APD-124) 함이 JACK의 특수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에 도착했다. 베스 함은 4척의 상륙정, 특수 훈련을 받은 승조원, 20명의 UDT 인원, 해병대 수색소대를 데리고 왔다. 베스는 승조원과 UDT, 해병대에 더하여 162명의 유격대원, 혹은 특공대원을 수송할 수 있었다. 이틀 뒤, 잠수 수송함 퍼치(SS-176 *)가 도착해 베스 함과 함류했다. 퍼치 함은 개수로 승조원에 더해 최대 110명을 수송할 수 있었다.* 책의 오기, SS-176 Perch는 포퍼스 급 잠수함으로 1942년 격침, 한국전에 참전한 Perch는 발라오 급 잠수함으로 함번은 SS-313임.1950년 일본 맥길 기지 인근의 나가 해변에서 훈련하는 UDT-1 팀과 UDT-3팀드디어 JACK은 특수 작전 업무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해안의 황해는 수심이 얕았으므로, 크레이머는 퍼치 함을 동해안의 깊은 해역에서 통상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베스 함은 주로 서해안에서 운용될 것이었다.------------------------------------------------------------------------------------------------------------여담으로 토프트에 대해서는 골때리는 뒷이야기가 있음. 하나는 성공담을 과장해서 예산 타먹다가, 토프트가 보고한 ‘실제’ 유격대 작전 영상을 교본으로 본 훈련생이 어떻게 모든 영상이 대낮에 촬영된건지 의문을 품으면서 거짓인게 들통나 해임됐다는, 검증할 수 없는 ‘썰‘이고,(토프트는 이후 콜롬비아 내전에 관여했음)다른 하나는... 소련 프라우다에도 보도된 골때리는 기밀 유출 사건임.간략하게 소개하자면,토프트가 반지하 집을 월세로 내놨는데, 신입 CIA 직원이 광고를 보고 토프트의 집으로 방문함.토프트와 아내는 이사 갈 집을 정리하느라 집에는 토프트의 장모 밖에 없었음.그런데, 신입이 어쩌다가 3층에 있던 장롱을 연 순간, 거기서 CIA 기밀 문서가 우수수 쏟아져 나온것 (!)이 사건으로 토프트는 하루아침에 CIA에서 해고되고 말았고...토프트는 CIA를 고소했다분량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히네..번역에 이상한 부분이 있거나 글 가독성에 문제가 있다면 마음껏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음.
작성자 : ㅇㅇ고정닉
위증리) 나는 갔다 스코틀랜드: 아란 (첫째날)
[시리즈] 위증리) 나는 갔다 스코틀랜드 · 위증리) 나는 갔다 스코틀랜드: 프롤로그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이 밝았다.혈뇨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여지없이 4시에 눈이 떠졌다. 하지만 충분한 수면은 즐거운 여행의 절대조건이기에 악으로 깡으로 안일어나고 6시에 알람울릴때까지 버텼다.씻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데 춘절 연휴 초반이라 그런지 중국인 대가족이 엄청나게 많아 인상적이었다. 식사는 뷔폐였고 공항 옆 호텔인지라 딱히 기대는 안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무엇보다도 말로만 듣던 해기스.. 이친구랑 이번 여행에서 자주 만나게 될텐데 제발 어긋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다행히 순대맛 나고 꽤 맛있게 먹었다. 드디어 오늘은 아란섬으로 향한다.체크아웃을 빠르게 끝내고 렌터카 업체로 갔다.영업시간은 8시부터인데 일부러 7시40분에 가서 문앞에서 장갑낀채로 손 호호 불면서 인류애에 호소하니까 7시50분에 문열어줬다.굳이 일찍가서 진상떨었던 이유는, 글래스고 공항에서 트룬 항구까지 구글맵 기준 50분정도 찍히는데 트룬에서 아란섬으로 들어가는 첫 페리가 9시 15분 출발, 8시 45분 접수마감이었기 때문이다.일단 나는 안전지향으로 10시 50분 출발편을 예약했지만, 혹시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면 어쩌면 앞에꺼 탈 수 있을지도? 라는 기대에.다만.. 호들갑 떨어서 수속을 빨리 끝내긴 했다만 차량이 전부 실외주차장에 방치되어있던지라 전후좌우 모두 꽁꽁 얼어붙은 유리창을 고냥이가 지나가다 홀라당 자빠져서 뚝배기 깨질정도로 얼어있었다.그래서 이거 녹이는데만 20분 걸렸고, 빠르게 포기하고 천천히 운전해서 가는데 아침 해뜨기 직전의 갓길의 안개낀 언덕에 나무가 머리만 내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자니 말 그대로 웅장이 가슴해지면서 간만에 경치보면서 감동했다.페리터미널 도착하니 시간이 살짝 남았던지라 근처 마을 해변가에 주차하고 간단히 둘러보는데, 아침마다 동네주민들 다 모여서 난닝구 뛰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엄청난 인파가 모여있었다.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 뭐야 옛날에 잡히면 합체당하는 컨셉의 AV처럼 갑자기 출바알! 하면서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데 순간 지려서 도망칠 뻔 했다.그건 그렇고 여기는 장비충들 없고 그냥 다 자기 마음대로 입고 신고 호다닥 뛰는데만 열중하는게 우리나라 엠제트들이랑 다른점이 아닌가 시프요.드디어 페리 입갤. 숙달된 앞차의 시범을 참고하면서 침착하게 형광색 옷 입은 형아들이 시키는대로만 진행하면 아무 문제없다.근데 만약 니가 선두일땐 어떻게하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해보고 알려주라. 파킹 끝나고 나면 선실로 올라가서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나는 아란섬 도착하면 바로 숙소에 차 대고 증류소로 이동해야해서 미리 배를 채워두기로 하였다.조식으로 나름 스캇히싀 풀브렉빠스트를 조졌기에 이번에는 현지 코쟁이들이 조식으로 즐겨먹는다는 롤을 먹어보기로 했다.햄버거 빵에 야채도 치즈도 뭣도 없이 슬라이스 소시지와 머쉬룸을 넣은 근본없는 빵이 오늘의 메뉴다. 여기에 물과 커피를 추가했을 뿐인데 무려 10파운드가 나왔다.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정신이 번쩍들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적을 체험했다.아란증류소 투어시작이 오후 1시30분인데, 전날 계산해보니 페리에서 차량 하선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숙소 체크인, 그리고 숙소에서 증류소로 도보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서둘러도 10~15분정도 늦을 것 같았던지라 증류소에 미리 메일보내서 양해를 구했다.혹시 내가 늦게되면 도중에 합류할테니 먼저 시작해도 괜찮다고 했더니, 내일 투어 너밖에 없으니까 안심하라구! 더 늦어도 괜찮으니 조심히 오라는 너굴맨의 따스함에 감동 한스푼. 한편으로는 첫 투어인데 오롯이 위스키를 즐기기보다는 분위기 싸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스몰톡 해가면서 마셔야한다는 생각에 가기 전부터 기가 빨렸다. 장기자랑해서 가이드 함박웃음 지으면 창고에서 고숙성 뒷스키 빼줄지도? 라는 흉흉한 소문도 있어서 배에서 유튜브로 장기자랑 찾아보긴 했는데 내가 이나이에 할만한건 없더라.여담이지만 배에 총 승객은 300명정도 되었는데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인종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오늘 증류소 투어가 나밖에 없는거면 이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러 가는거지? 그리고 사실 알고보니 그렇게 보고 즐길거리가 많은 섬에 나는 머가리에 위스키만 가득차서 그거만 보고 냅다 꽂는건데 이게 맞나 싶어서 살짝 몬가몬가 하긴 했지만 나도 내일 트래킹 할꺼니까.. 나 알중아님.. 아무튼 아님.. 반박시 내말이 맞다그렇게 무사히 섬에 도착했고, 아란 역시 태풍의 잔해가 상당히 남아있었고 아직까지 바람은 꽤 강했다. 가는길에 뿌리채 뽑혀 쓰러진 나무들은 군데군데서 볼 수 있었는데, 일단 통행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처리가 되어있었다.숙소는 증류소에서 북쪽으로 도보 10분정도 거리에 위치해있는 에어비앤비로 정했다. 청소년들 수련회 시설의, 보호자가 머무는 건물의 방을 배정받았는데 그날 투숙객은 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뭔가 스산함마저 느껴지는 곳이라 처음에는 쫄았지만 키친도 잘 되어있고 나름 아늑하게 지냈다.대신 밤에는 무서워서 밖으로 못나가쪄..밤에 스산한거 인정?숙소에서 역풍을 뚫고 굳세게 걸어서 이윽고 증류소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가 미친년 산발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이랏샤이마세 (라고 안함) 하면서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화장실 가거나 조금 더 쉬었다 출발해도 괜찮다고 배려해주셨지만 더 민폐끼치면 안될 것 같아서 기사님 바로 가시죠 외치고 출바알!아란증류소는 내가 위스키 입문 초기에 우연히 알게된 증류소이기도 하고, 지금 마시고있는 아란 싱캐가 최애 보틀 중 하나이기도 해서 언젠가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던지라 감회가 남달랐다.나는 이번 여행을 함에 앞서, 증류소를 불문하고 투어 프로그램을 선택하거나 보틀을 구입 할 때는, 1) 증류소에서만 경험/구입할 수 있는 희소성이 있거나, 2) 증류소에서 특별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느냐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정했다.아란증류소의 투어 프로그램은 크게 기본 투어, 중급 테이스팅, 고급 테이스팅으로 분류된다.The Distillery Tour (20파운드, 기본)Arran Malt Experience (40파운드, 중급)The Lochranza Select Tasting (45파운드, 중급)Journey Through The Ages (75파운드. 고급)다만, 그에 앞서서, 아란섬을 방문하게 되면 여행 전체적인 동선의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고, 투어 일자/시간대가 한정적이라 희생해야 할 것이 많다.나도 처음에는 내 일정/동선과는 맞지 않아 다음기회를 기약하고 포기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당초 예정보다 3일 일찍 출발하게 되어 창고에서 오크통에 파이프 꽂아서 뻠핑하는 Journey Through The Ages에 갈 수 있게 되었다.이 투어는 일주일에 2번밖에 운영하지 않는지라 본인의 여행동선과 페리스케쥴에 더해, 투어일정까지 맞아 떨어져야 하는지라 일정을 짜는데 난이도가 조금 있다.투어에서 나를 맞이해주신 분은 나이 가득하신 스캇 형님이셨고, 아란에서 근무하신지는 5년정도 되었다고 한다.고고학에 큰 열의가 있으시고, 은퇴 후 아란섬에 다시 돌아왔다가 어떻게 연의 닿아서 아직까지 증류소에 근무하고 계시는데 본인의 직업과 하시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굉장히 강하셨다.증류소에서의 업무와 겸해 고고학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계신다고 하시며, 이야기 도중 방심할때마다 너님 유적 썰좀 들어보실? 하고 밑밥 던지셨는데 어림도없지 정신 똑디차리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 흘려보냈다.섬 자연환경이나 유적지, 그리고 공룡발자국 남아있는거 보면 이쪽분야 파고드는 사람한테는 오모시로이한 섬임에는 틀림이 없다.킹치만 나는 오늘 질펀하게 취하고싶다구..처음에는 투어 전용 라운지 비슷한 곳에 앉아 간단하게 개인 인적사항과 신상에 대한 취조를 마친 후, 아란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나 경험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해서 신나서 가지고 있는 보틀이랑 마시고 있는 것들 자랑하면서 재롱떨었더니 일본에서는 싱캐 어떻게 구하냐고 하길래 위옥이요.. 라고 시무룩하게 대답했더니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아직까지 아란은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같은 시장에는 직접적으로 공급을 하는데, 먼 지역에 대해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도 여기서 일본위스키 찾는 사람들 많은데 구하기가 쉽지 않아 옥션에서 비싸게 구매하고 있으니 비긴걸로 치자고 하길래 쿨하게 뭐 그러시죠 했다.그러면서 먼저 먼길 오는데 고생했다고 아란워터를 주신다고 하셨다. 아란워터는 많은 사람들이 판매를 요청하지만 별도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오는길에 보니 물맛은 죽일 것 같은 경치라서 뭔가 엄청나게 나오겠거니 했더니 웬걸 63.5%짜리 뉴본스피릿이었다.뉴본스피릿을 맛보는건 처음이었는데,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고 굉장히, 굉장히 맛있었다.누렁이라 노트찾는거는 애초에 안하고 그냥 직관적으로 매우맛있다 / 맛있다 / 보통 / 맛없다 / 칵퉤 의 5분류와 100점만점에 몇점 이런식으로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건 노트를 굳이 찾지 않아도 스트레이트로 펀치 뻗는데다가 특히 청사과 맛이 아주 날것 그대로 다가와서 가능하다면 스피릿만 따로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우 인상적이었다.그리고 본격적으로 생산공정에 대한 투어가 이어졌는데, 어떤식으로 보기를 원하냐고 하시길래 구체적은 공정이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파고들지 않아도 되니 굵직한 사항과 아란의 특징적인 부분 위주로 설명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씀드렸다.사실 라인암 각도가 어떻고 매쉬튠이 어떻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흥미가 없었던지라 혼자 하는 투어의 오히려 좋은 점이기도 했다.공정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생략하도록 하겠다.비교적 신생 증류소라 그런지 시설의 청결도와 내부의 가지런함은 이번 여행에서 방문했던 증류소 중 가장 깔끔하고 모던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또 좋았던 점은, 워시백과 매쉬튠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고 만지게 해 주었던 점일까.공정에 대한 견학을 마치고 대망의 남바완창고로 이동해서 테이스팅을 시작하였다.아란의 경우, 이런저런 시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있긴 한데 최근에는 버번캐스크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었다고 한다. 버번캐스크의 경우 현재 전량 짐빔으로부터 공급받는다고 한다.셰리는 90%정도를 올로로소가 차지하고 있고, 이는 의도하였다기 보다는 공급처와의 계약과 관련된 요소도 작용했다고 한다.다만, 아란으로서도 최근에 급동하고있는 셰리캐스크의 가격은 고민되는 요소라고 한다.버번캐스크가 1통에 200파운드라면, 와잉캐스크는 400파운드, 그리고 올로로소는 1,000파운드를 훌쩍 넘는 시세로 인해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므로 결론은 위스키는 오늘이 가장 싸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창고 투어 중 궁금했던 부분은 엄청난 양의 캐스크가 빼곡히 보관되어 있는 반면 기계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만약 10열 2층 4번째 캐스크를 뺄 필요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단호하게 앞에 캐스크들 다 빼고나서 다시 위치로! 하면 된다고 한다.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음을 시작하였고, 창고에서는 총 4종류의 캐스크를 시음할 수 있었다.한가지 특이한점은 당일 투어에서 시음한 캐스크에 대해 , 1종류를 200미리 보틀로 구매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구매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러기 힘들거다.첫번째는 1996년 통입의 버번캐스크로서 숙성연수로는 28~29년정도 되는, 현재 아란에서 가장 오래된 캐스크 중의 하나라고 한다.그로인해 뒤에 마실 3종의 캐스크보다는 200미리 미니보틀 가격이 2.5배 정도에 책정되었는데, 스캇형님은 이 캐스크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또 강력하게 추천하셨다.버번캐스크의 화사함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아주 잘 만든 한잔의 위스키였다. 특히 장기숙성의 버번캐스크는 희소성 적인 측면에서도 아란에서는 아주 귀한 캐스크라고 한다.100점 만점 기준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는 89점정도 주고싶다.두번째는 2017년 통입의 아몬틸라도 캐스크인데, 처음 5년은 버번캐스크에서 숙성 후 현재의 캐스크로 옮겼다고 한다. 숙성연수가 짧아서 그런지 도수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으나 알콜이 튀는 느낌보다는 화사함을 바탕으로 하는 기분좋은 강렬함이 다가왔다. 88점세번째는 2010년 통입의 쿼터캐스크다. 준수했지만 첫번째 시음했던 버번캐스크의 은은함과 두번째 아몬틸라도의 강렬함 사이의 몬가몬가로 인해 맛은 있었으나 강렬한 인상은 느끼지 못했다. 87점. 슬슬 취해서 사진 흔들린다.마지막으로는 두번째 아몬틸라도와 완전히 동일한 스피릿을, 같은 버번캐스크에서 같은 기간동안 숙성하다 한날한시에 하나는 아몬틸라도에, 하나는 마데이라에 옮겨담았고 이를 똫 같은날 고로시해서 투어용으로 뺐다고 한다.오.. 이날 마신 것들 중 가장 좋았고, 당연히 200미리 미니보틀도 이걸로 구입했다. 90점아란의 경우, 특히 이 Journey Through The Ages는 시그니쳐 투어이기도 하고, 단순히 맛있는 캐스크를 찾아서 시음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아란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일종의 힌트를 제시하고, 투어 참가자의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적절히 궤도수정을 해 나가는, 소비자와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하는 것에 큰 목적이 있다고 한다.그런 맥락에서 오늘 시음했던 캐스크, 특히 버번숙성 후 아몬틸라도나 마데이라로 옮긴 제품들의 경우에는 몇년 뒤 이러한 제품을 시판할 것을 염두에 두고 투어 방문객들에게 먼저 날것 그대로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또한, 스프링뱅크의 로컬발리와 같이, 아란에서도 물밑에서 로컬발리 출시를 위해 준비를 해왔고, 올해 드디어 그 결실을 이루게 될 것 같다고 한다.현재로서는 올해 5~6월 중에 아란 로컬발리 첫 릴리즈를 예정중에 있다고 하지만 판매시장이 한정적인 관계로 우리가 발매가에 구입하기에는 많아 어렵지 않을까 싶다.덧붙여서, 다른 증류소도 대부분 비슷하긴 하지만 아란 역시 원칙적으로는 퍼스트필과 세컨드필까지만 하고 거기서 끝내는데, 색깔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스캇형님도 본인도 사람인지라 위스키 보면 색깔부터 보게된다고 한다.그러면서 올로로소의 색깔이 상대적으로 연하다고 해서 절대 흔들려는 안돼! 라고 말하면서도 스캇찡.. 켐벨타운 놀러가서 카덴헤드 가면 맨날 본능적으로 진한거부터 만지고 맛본다고 실토했다.아란을 제외하고 어떤 제품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글렌스코시아의 빅토리아나를 가장 애정한다고 하셨다.또 이야기가 샛길로 나가는데, 아란의 경우 재미있는 점은 프라이빗 캐스크 프로그램이 있다.내가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 런던출장때 우연히 방문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뜬금없이 본인들의 가게이름이 각인된 아란 10년 싱캐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개업 10주년을 기념해서 아란에 캐스크를 주문했고, 직원고 거래처 등등에 나눠주고 남은 물량을 판매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흥미로워서 바로 1병 구매했었다.그리고 작년 11월 딸아이가 태어날 즈음 와이프에게 넌지시 아기가 태어나는 날에 증류해서 10살 생일기념으로 보틀링하면 꽤 의미있지 않을까? 라고 개수작 부려봤다.그럼 몇병이나 나와? 10년이면 한 280병정도 나올거야가격은? 보틀링까지 포함하면 2만파운드 전후라고 해 (일부러 파운드로 말함)오.. 가격은 둘째치고 그거 280병 받으면 다 마실거야? 아...그것도 아니면 술병에 딸 이름 새겨놓고 그거 밖에다 내다팔꺼야? 아...의 순서로 처참하게 깨갱했다.이 이야기를 했더니 형님은 20년 숙성하면 보틀 수 많이 줄어들고 게다가 성인을 기념하는 보틀이니까 더 의미깊으니 재도전 해보라고 밑도끝도없는 영업을 던진다.위의 이야기로부터 또 샛길로 나가자면 참고로 현재 아란섬에는 보틀링 시설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보틀링으 ㄹ위해서는 본토로 캐스크를 보내야 하는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고, 캐스크 운반을 위해 선박을 대절할만큼의 규모도 아니기에 오늘 내가 타고 온 상업용 페리를 통해 운반하고 있다고 하니 누군가 운좋으면 페리타고 오고가는길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보틀링 시설은 조만간 섬 내에 설치할 예정이며, 곧 공사에 착수할 것이라고도 한다.창고에서의 4잔의 시음을 마친 뒤, 끝인줄 알았으나 테이스팅 룸으로 이동하였다. 왜 사진어 없냐 근데.. 아무튼 혼자 투어를 함으로서 좋았던 다른 한가지 요소는, 내가 술이 강하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각 잔을 음미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워낙 많은 양을 따라주었기에 중간에 바이알로 옮겨가며 마셨는데 페이스를 충분히 배려해주면서도 바이알도 가득 채워주셨다.테이스팅 룸에서는 1997년 증류 2010년 병입의 제품과, 15년 숙성 레어배치 셰리피트 제품을 시음하였는데, 창고에서 워낙 거하게 마신지라 전자의 경우 무슨맛이었는지 지금은 기억 안나고, 후자는 굉장히 맛있게 먹고 보틀구매도 진지하게 고려하였으나 증류소한정 16년 싱캐를 염두에 두고 있던지라 자제하였다. 추가적으로 증류소 한정 16년 올로로소 싱캐와 10년정도 숙성의 PX핸드필을 마구마구 퍼주셨고, 고민할 여지도 없이 올로로소가 와따였기에 해당 보틀을 구매하였다.테이스팅룸을 나서기 전에 갑자기 스캇형님이 잠깐! 하고 외치고 서랍을 주섬주섬 뒤지다가 크고 우람한 것을 꺼내더니 이것좀 만져볼래? 가 아니고 멀리서 우리 증류소 방문을 위해 와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줄만한게 이거밖에 없지만 괜찮다면 가져가 마이프렌 하시면서 너무나도 서윗하게 캐스크로 만든 잔 받침대를 주셔서 낼름 받아들었다. 다른 직원들한테 보이면 한소리 들으니까 이건 빨리 가방에 넣으라고 해서 잽싸게 빤쓰안에 집어넣고 당당한 풍채를 뽐냈다. 첫 투어라 너무 들떠서 아무생각 없이 즐겼고, 그러다보니 1시간30분짜리 투어였는데 정신차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있어서 스캇형님께 너무 죄송했다. 다른 업무도 있으셨을 텐데 눈치와 압박이 전혀 없으셔서 아무런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크게 초과했을 줄이야. 덕분에 내 인류애 측정기도 한계치 초과함.. 비록 첫날이었지만 오늘 했던 투어에 대해서는 대만족하였고, 특히나 평소에 코어레인지는 물론 싱캐로도 접하기 어려운 캐스크들이었기에 독특함과 경험의 희소성 적인 측면에서 내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하였고, 그 퀄리티 또한 매우 훌륭했다.그리고 워낙 동선의 비효율성을 동반하는 루트인 관계로 기본투어나 코어레인지가 포함된 테이스팅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란섬에 방문하거든 무조건 이 투어를 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다시 여행으로 돌아가서 거하게 마셨으니 증류소 2층에 있는 까페에서 스근하게 오늘의 수(θ)프랑 사슴(θ)고기버거 한판 때리고 숙소가서 자면 되겠다 했는데 음식 라스트오더가 마감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그대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대로 숙소로 가는 것이 아쉬워서 산책 겸 술도 깰 겸 근처에 있는 로크란자성으로 걸어가는데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엄청나게
작성자 : 머가리이탄밭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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