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벽에 막히자… 주민들 49층 포기하고 빠른 사업 추진 택해]

150억 들여 국제 설계 공모하고 5차례나 층수 조정 협의했지만 서울시 49층案 심의도 않고 거부
"버틴다고 능사 아니다" 확산… 주민투표서 71%가 '35층' 찬성
초과이익환수제 피하기 어렵고 분양가 상한제에 걸릴 가능성도


'49층 재건축'을 고집하며 서울시와 갈등을 빚어온 은마아파트가 결국 백기를 들고 '35층' 안(案)을 수용했다. 주민들이 서울시 방침을 받아들여 서둘러 재건축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써 2003년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설립된 뒤 14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 1월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14층 28개 동(棟) 4424가구 규모로 지어진 단지로 강남에서 대표적인 대규모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49층 고집…2년 맞서다 백기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는 26일 "주민들로부터 최고 층수 35층 안과 49층 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동의서를 제출받은 결과, 35층 안이 과반 동의를 얻어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투표 참여자 3662명 가운데 71%인 2601명이 35층 안을 선택했다.

추진위는 당초 최고 49층 6054가구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49층 안 핵심은 단지 내 일부 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 용적률을 더 높이는 것이었다. 초고층 '랜드마크'로 지으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데다 일반분양 가구 수가 늘어나는 만큼 조합원 추가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면 서울시는 "도시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 따라 3종 일반주거지역 내 공동 주택을 최고 35층으로만 지을 수 있다"며 맞섰다.

추진위와 서울시는 그동안 층수 조정을 위한 사전 협의를 다섯 차례 가졌다. 은마아파트는 작년 150억원을 들여 국제 현상 설계 공모까지 벌이면서 49층 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자인 특화 아파트이니 예외를 허용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최근 서울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이 50층으로 통과된 것도 이런 고집을 꺾지 않은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번번이 '불가(不可) 방침'으로 답했다. 추진위가 지난 8월 서울시에 49층 계획을 포함한 계획안을 올리자, 시는 심의조차 않고 거부했다.

35층 안으로 재건축하면 은마아파트 전체 가구는 4424가구에서 5905가구로 늘어난다. 추진위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수렴한 35층 안을 최대한 빠르게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추진만 14년째"라며 "서울시 반대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49층을 무한정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는 이미 삼성물산과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상태라 시공사 선정 과정을 생략하고 건축심의·사업승인인가·관리처분인가 등 후속 단계에 바로 들어가면 재건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 "다행"…초과이익환수제 불가피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한고비를 넘겼지만 지금부터 진행해도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분양가 상한제'에도 걸릴 가능성이 크다.

남은 과정도 많다. 우선 조합을 설립해야 한다.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등 진통이 예상되는 인허가 절차가 남았고 이주·철거 작업도 만만치 않은 변수다. 주민들 사이에선 그나마 더 늦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주민 박모씨는 "규제가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어 버틴다고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35층 안'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는 조합원과 투자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재건축이 본격 추진 궤도에 오르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된 것. 에덴공인중개사 윤고용 대표는 "그동안 집주인들이 눈치를 보느라 매물도 없고, 호가도 13억원대 후반에 머물러 있었는데 앞으론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