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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시대..<무등산 타잔 살인사건>..JPG
박흥숙(어린시절 이름 박정렬)은 165cm 키에 다부진 몸매, 나이 21세, 전남 영광군 출생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와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살았다. 가난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쇠수리공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공부를 하며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곧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거처로 삼은 곳이 바로 무등산이며 무등산 산자락에 움막집을 세우고 가족들과 함께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무등산 자락 주변에는 20여 가구가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박흥숙과 그의 가족이 굶주림에 허덕이면 자신들의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훗날 사건 이후 형성된 박흥숙을 동정하는 여론은 주로 이 주민들의 증언에서 기인했다. 운명의 그날인 1977년 4월 20일 광주시 동구청 소속의 건설반장과 동구청 소속 일용잡급직의 철거반원 7명이 무등산을 올랐다. 그들의 목적은 등산이 아닌 바로 이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기 위한 산행이었는데 마침 그즈음에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박흥숙은 철거반장을 향하여 자신이 만든 사제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사제 총기를 만들 수 있던 연유는 열쇠공을 시작으로 금속을 다루는 일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포박한 철거반원들을 자신의 공부방으로 파 놓았던 구덩이에 넣은 다음 "불태운 우리 집에 사과해라"고 호통을 쳤는데 이 와중에 철거반원들은 마침 헐겁게 묶여 있던 포박을 풀고 반항하였고 박흥숙은 망치로 그들을 공격해서 5명 중 4명을 살해함. 도주 후 간첩 의심자 신고를 하려고 자수했다고한다. 그리고 1980년 12월 24일 사형을 당하게 된다. (짤은 마지막 편지) 2005년 영화도 나왔었는데 . . . . ㅋㅋㅋㅋ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캡틴츠바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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