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압박감이 수리의 몸을 짓누른다. 그 힘을 버티기도 힘들건만 사정없이 밀어붙혀대니 수리의 몸은 거부할 재간도 없었다.

"이런 것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서."

수리와 비슷한 체구지만 좀 더 키가 큰 소년의 얼굴은 올라간 눈꼬리를 더 사납게 지어보인다. 수리의 어깨를 누른 손은 별이의 몸이 들판에서 구르던, 흙에서 구르던 신경쓰지 않았다.

"감히 기적을 바라?"

잔뜩 성 난 소년의 목소리. 다리사이로 흐르는 정액과 약간의 피가 수리의 희고 고운 피부를 타고 흐른다. 자신의 것을 빼내고 그것을 노려보던 소년은 곧 무심히 돌아선다.

"흐...윽.."
"내 말 그 머리와 귓구멍에 잘 박아두라고 했을텐데."
"...흐긋...으..읏.."
"제대로 지켜야할 것 아니야. 그러니까 오늘처럼 네 몸뚱이에 그런 게 박히는 것 아니겠어?"

소년의 자조적인 미소가 수리를 향한다. 당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협박과 온갖 공격적인 말에 고통섞인 신음도 못내더니 지금에서야 거친 숨을 헐떡인다.

"또 당하지나 말라고."
"..."
"어디까지나 그 몸뚱이도 달릴 건 달렸잖아. 너 아니면 누가 네 자신을 지키겠어?"

자신을 힘겹게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 칠흙처럼 새까맣지만 희망이 있는 누구보다 빛나는 신기한 눈동자. 그런 눈이 소년이 수리를 미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 꽃이 널 지켜주기라도 하냐?"
"...."
"한 번 도망치려면 끝까지 도망쳐."

밝은 갈색눈에 갈색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소년은 그렇게 가버린다.



"수리야."
"..."
"수리야?"
"..."
"...수리야"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불만이 가득 담긴 또리의 표정.

".....너 다리 다 안나았어?"
"응? 나은 게 언제인데~"

수리는 불안해진다. 혹시라도 또리가 그 일을 눈치챈걸까.

"요즘 너 걸음걸이가 이상해."
"..어, 어?"
"이틀 전에 홀연히 사라졌다 어제 아침에 돌아왔잖아. 그때부터 이상했어. 어디서 다친거야?"

역시 또리는 못속인다. 수리는 아직도 따끔거리는 하체의 통증을 참고 웃으며 대답한다.

"...나 안다쳤는데?"
"나한테까지 숨기는 거야?"
"......"
"...신경쓰이잖아."
"난 정말 괜찮아."
"꽃이었을 때 무능력한 내가 너무 싫었어. 하지만 간절히 바라서 지금은 이렇게 사람이 됐어. 이제야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몸이 됐어!"

"또리? 아냐, 넌 꽃이어도 좋은 친구야."
"...실질적인 도움 하나 못줬어."

또리는 무언가 결심한 듯 수리의 손을 붙잡는다.

"수리야,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말해."
"또리..."
"넌 두 번 다신 없을 소중한 내 친구야."

순간 이틀 전 밝은 갈색머리 소년의 차디찬 얼굴과 또리의 다정한 얼굴이 겹쳐보인다. 수리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일부러 더 환하게 웃어보인다.

"응, 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