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라인민공화국으로 출장을 가는 것을 여자친구는 무척 못마땅해했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를 두고 위험한 해외로 가는 것은상당히 겁이 나는 일이었으나, 상당한 보수가 걸린 일이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빠, 꼭 가야 돼?"
"금방 다녀올게. 2일이면 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알겠어."
여자친구는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한숨을...
그러더니 제 손에 작은 봉투를 쥐어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뭐야?"
"오빠, 꼭 갈 거라면 이걸 가져가 줘.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걸 펼쳐봐.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다면 다시 나한테 돌려줬으면 좋겠어."
여자친구가 쥐어준 작은 봉투를 품에 넣은 채 저는 전라인민공화국의 수도인 광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인심도 나쁘지 않고 음식 맛도 나쁘지 않았고, 거래처에서도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 예상과는 다르게 만나는 사람마다 정말 살갑더군요.
그렇게 마지막 날, 거래처에서 알게 된 그곳의 주민들과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이고 하니 긴장이 풀린 저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만 저희 테이블 주민분과 옆자리 사람이 싸움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에 끼어든 것이 저의 실수였습니다.
"이보세요, 저희끼리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쪽이 대체 무"슨상"관이 있어서..."
제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저와 다정하게 술을 기울이던 사람이, 제 등을 얼린 홍어로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흐미, 이 잡것 좀 보소잉. 지금 뭐라혔는가, 슨상? 감히 님도 안 붙히고 감히 슨상슨상거렸냥께?"
아뿔싸.
전라인민공화국의 금지단어를 저도 모르게 입으로 내버린 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전..."
"오오미, 내 생에 첫 민주화랑께!"
뒤늦게 해명하려 했으나 군중은 이미 성난 홍어처럼 날뛰고 있었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얼린 홍어를 들고 제게 덤벼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것일까, 서울에서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나와 결혼하고 싶다던 여자친구가.
눈앞에 주마등이 지나가던 찰나, 여자친구가 말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위험한 순간에 꼭 열어보라던 것, 저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공을 향해 종이봉투를 뻗었습니다. 이미 홍어매질로 인해 봉투는 헤져, 내용물이 보이던 상태였습니다.
그 순간, 주변의 공기는 눈녹듯 사르르 녹아내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저는 김대중 컨벤션 센터 안 가장 높은 자리에 뉘여져 있었습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저를 극진히 보살펴 주었고, 제가 몰고온 현대차를 도요타차로 바꾸어 주며 저를 국경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이런 귀한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인지 몰랐당께, 우덜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요."
"다음에 꼭 오면 홍어 한접시 대접해불랑게, 꼭 오시유. 기다리고 있겄소."
"예, 예에.. 알겠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몸이 떨려 그들이 내미는 상자를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사관 앞까지 오게 되었을 무렵, 조심스레 그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대체 어떤 것이 들어 있었길래 그런 일이.
아버지가 전라도에 갈 때는 꼭 챙겨가라고 하시던 김대중 자서전? 임을 위한 행진곡 친필 싸인 cd?
둘 다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5.18 국가 유공자 카드.
어째서 여자친구가 이런 것을.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경상도에 사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습니다.
그녀는 하프홍어였던 것입니다.
절망감에 감싸여 두 눈을 가렸을 때, 언젠가 그녀가 했던 것 같은 말이, 잠결에 들리었던 것 같은 말이 귓가로 아스라히... 아스라히 쏟아져 내렸습니다.
"오빠랑 결혼해서... 서울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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