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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연기? 검은 연기? 콘클라베 굴뚝 연기의 비밀
Conclave라는 단어는 Com = together, Clavis = Key에서 유래합니다. 즉, 열쇄로 봉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선출을 위해서는 콘클라베 추기경단 3분의 2 이상을 득표해야 합니다.이번 콘클라베에는 선거권을 지닌 추기경 133인이 참석했기에 이는 89표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첫째 날 오후에 한차례 투표를 합니다.둘째 날부터는 오전에 두 차례, 오후에 두 차례 투표하여 총 4번 투표를 합니다.3일이 지난 후에도 답보 상태에 있으면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며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갖습니다.그 후 7차례 투표 이후에도 결과가 없으면 다시 휴정합니다.33차례 투표 이후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득표 1위 후보와 2위 후보로 결선 투표를 합니다.결선 투표에서도 두 후보는 3분의 2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한 후보가 선출된다면 콘클라베 의장인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 선출을 승낙하는지 묻습니다.후보가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 순간부터 교황으로 선출됩니다.콘클라베 투표의 결과는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의 색으로 알 수 있습니다.결정이 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검은 연기결정이 됐을 때 나오는 흰 연기굴뚝 연기를 피우는 난로(좌)와 투표지를 태우는 원통 모양의 난로(우)오늘날에는 난로가 두 개 동원됩니다. 특수 제작된 약제를 첨가하여 굴뚝 연기의 색이 확실하게 식별 가능하게 하는 좌측의 난로와, 투표 용지를 태우는 우측의 난로입니다.투표지만 태우면 흰 연기가 나오며, 이는 교황이 선출됐다는 의미입니다.투표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우면 검은 연기가 나오며, 이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첫째 날에는 오후에 첫 연기가 나오고, 둘째 날부터 하루에 두 번 연기가 나옵니다.2005년 콘클라베의 경우 첫날 검은 연기는 현지 시각 오후 8시 5분에 목격됐고, 2013년에는 오후 7시 41분에 목격됐습니다.1958년 이전에는 검은 연기는 투표지를 태워서 검은 연기를 발생시켰으나, 1958년 콘클라베에서 연기 색으로 인해 큰 혼란이 있던 이후로 두 개의 난로를 쓰게 됐습니다.1958년 교황 비오 12세의 선종 이후 열린 콘클라베의 둘째 날 오후 5시 55분경, 굴뚝에서 흰 연기가 오분가량 피어올랐습니다.교황 선출을 오인한 사실을 전하는 당시 매체이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탑이 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스위스 근위대는 새 교황을 맞이하기 위해 대열을 정비했습니다.바티칸 라디오의 진행자인 프란체스코 펠레그리노 신부는 5시 55분부터 6시 25분까지 약 30분 동안 전세계에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Habemus Papam을 외쳤습니다.그러나 교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바티칸 라디오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했고, 다음날인 27일 AP 통신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은 콘클라베 굴뚝 연기와 관련된 소동을 보도했습니다.그리고 론칼리[요한 23세]는 28일에 선출됐습니다.이는 콘클라베와 관련된 여러 가설을 낳았고,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 제노바 교구장을 지냈던 "주세페 시리" 추기경 가설입니다.이를 Siri Thesis, 시리 가설이라고 부릅니다.1958년 주세페 시리 추기경시리 가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둘째 날 흰 연기가 굴뚝에서 나왔을 때 교황이 선출됐었고, 이 인물이 바로 시리 추기경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시리 추기경을 교황으로 원치 않는 어떤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콘클라베의 추기경단이 다시 다른 인물을 선출했다는 내용입니다.이 압력에 대한 가설로는 바티칸에 대한 핵위협, 추기경단에 대한 협박과 위협 등이 제기됩니다.이는 댄 브라운 소설이 원작인 영화 "천사와 악마"의 내용을 연상시킵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vaticancity&sort_type=N&search_head=10&page=1 바티칸(교황청) 마이너 갤러리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유일한 참된 교회이다. 로마의 사도좌는 공석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면 무효이며 배교이다. 로마는 배교한 대립교회가 점거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대항하지 못한다.gall.dcinside.com1903년 콘클라베까지 유럽의 일부 가톨릭 왕가(오스트리아 제국, 프랑스, 스페인)에 한정하여 군주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이 콘클라베에서 앞서던 램폴라 추기경에 대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거부권을 행사합니다.당시 램폴라 추기경은 과거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외교전을 벌이던 프랑스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1903년 콘클라베에서 유력 후보로 여겨졌던 램폴라 추기경.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가톨릭 군주가 행사할 수 있었던 콘클라베 거부권을 행사하여 선출되지 못함.그리하여 사르토 추기경이 선출되고, 사르토 추기경은 근대주의와 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정죄하신 교황 성 비오 10세가 됩니다.1903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르토 추기경.비오 10세라는 즉위명을 택했다.이 콘클라베를 계기로 가톨릭 군주의 거부권에 대한 폐지 의견이 우세를 점했고, 교황 비오 10세는 이 거부권을 폐지합니다.시리 가설에 따르면 1958년 콘클라베 당시 강대국 중 하나가 시리 추기경의 당선을 취소하라고 압박하며 이 거부권을 내세웠다고 하나, 이 거부권은 가톨릭 군주에게만 주어졌고 그 역시 1903년 콘클라베 이후로 인정되지 않기에 이는 합당한 주장이 아닙니다.또한 교회법상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교황을 "취소"하고 다시 교황을 선출할 수 없습니다.따라서 이 시리 가설에 따르면 론칼리[요한 23세는]는 적법한 교황이 될 수 없습니다.따라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요한 23세바오로 6세요한 바오로 1세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이들을 적법한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고,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배교임을 말하는 주장을 교황공석주의(sedevacantism, 空席主義)로 일컫습니다.이러한 연기에 대한 소동은 그 이후 콘클라베에서도 있었으나, 가장 중대했던 소동은 1958년 콘클라베였습니다.따라서 오늘날에는 투표지나 젖은 짚단만을 태우지 않고, 난로를 하나 더 투입하여 화학물질을 연소하며 확실한 색 구별을 합니다.2005년 콘클라베의 경우 연막탄을 썼는데 일부 추기경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한국 시각으로 콘클라베 첫날의 결과는 8일 0시 이후에 나올 것이며, 그 이후로는 하루에 두 번씩 결과를 알립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vaticancity&sort_type=N&search_head=10&page=1 바티칸(교황청) 마이너 갤러리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유일한 참된 교회이다. 로마의 사도좌는 공석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면 무효이며 배교이다. 로마는 배교한 대립교회가 점거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대항하지 못한다.gall.dcinside.com
작성자 : 센튜리온고정닉
요즘 현지에선 역대급으로 욕쳐먹고 있는 헐크호건 상황
요즘 헐크 호건이 에릭 비숍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든다고 하는데아마추어 레슬링 기반에 프로레슬링의 기믹, 스토리라인을 합친 "리얼리즘 실전 레슬링" 이라는 이상한 단체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음.그러면서 자기가 레슬러들과 얼마나 친한지 과시하면서 브록 레스너, 쉘턴 벤자민 이런 레슬러들을 언급했는데하필 또 유독 개중에서 '흑인' 인 쉘턴 벤자민과 꼭집어서 "벤자민 쉘턴" 하고 내가 친하다고 함;;MVP는 "입만 열면 구라만 치는 인간 배설물 새끼 또 지랄하냐?" 이런 반응.예전에 있었던 헐크 호건 인종차별 몰카 사건에 대해서 아무래도 이런 이슈랑 거리가 먼 우리 입장에서는"호건도 상황이 좀 억울한 면이 있지 않았냐""호건이 그래도 진짜 악랄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 않냐" 이 정도로 반응하는 편인데문제는 호건이 WWE에서 볼드모트 행 풀리면서 다시 돌아올때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사과한답시고 한 말 가장 첫번째가"녹음 되고 있는줄 몰랐다" "항상 말 조심해라""사실 난 그런 말 한 기억 자체가 잘 나지 않는다."이렇게 말함. 인종차별 발언한걸 후회하고 진심으로 사죄한다 이런게 말실수 한게 녹화된게 후회된다 거의 이런 느낌.그 이후로 호건 평판 라커룸에서 나락으로 감.당사자인 쉘턴 벤자민은"야 이 씹새끼야 니가 나랑 언제부터 알고 지냈다고 친한 척이냐? 니가 한 '사과' 이후로 난 너랑 알고 싶지도 않다.내 이름 엉터리로 부르고 우리가 뭔 있지도 않았던 친한 시절 있는것마냥 깝치는대신 걍 뒤져라" 라고 욕함.MVP나 쉘턴 벤자민이나 흑인 레슬러지만 흑인 선수들 떠나서 그냥 지금 현역 로스터에게 완전 인식 나락가서 전혀 리스펙 받지 못하고 있는데세스 롤린스는 저번에 Raw에서 호건이 관중들에게 쌍욕 먹는거 보고 "즐거웠다" 고 공개적으로 발언함.베키 린치는 안티들이 자기를 "베키 호건" 이라고 욕하는 말 보고"그런 세상에서 가장 추잡스런 인간 이름을 써서 나를 비난하지 말아라" 고 함.CM 펑크는 로얄럼블 시즌에 다가올 럼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프로모 중에개뜬금없이 로럼에 참가할 리가 만무한 호건 언급하면서"헐크 호건이 로럼에 기어 나오면 그 새끼 내던져서 헐카매니아를 완전히 죽여버릴거야" 갑자기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을 치면서 관중들에게 호응받음.그리고 백스테이지에서는 특정 선수 거론하며 애드립 했다고 뭐라 한게 아니라 오히려 다들 재밌어했다고 함.지금 현역 레슬러들에게 호건 취급이 거의 이정도임...헐크 호건 이미지가 현지에서 좆구린건 인종차별 사건, 그리고 그거 뒷수습 제대로 하지도 않은게 제일 크지만호건이 입만 열면 자기를 추켜세우려고 온갖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것도 큼.이게 너무 많고 어이가 없어서 거의 헐크 호건 어록 모음 이 정도로 될 정도임.아래에 소개하는것들 다 농담이 아니라 헐크 호건 본인이 진지하게 한 소리들임.헐크 호건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와 사적으로 절친한 사이였다. 메탈리카가 나를 베이스로 영입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하지만 정작 울리히는 호건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고 밝힘....헐크 호건 "더스티 로즈는 내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여섯살, 일곱살 무렵의 나는 매주 그를 보며 레슬러에 대한 꿈을 키웠다."근데 더스티 로즈는 호건이 14살은 될때야 데뷔했었고,전국방송에 레슬링 거의 안나오던 시절에 호건이 TV에서 볼 수 있는 플로리다에서는 호건이 17살은 될때서야 겨우 와서 경기함.헐크 호건"멤피스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던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는 나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곤 했다."문제는 헐크 호건이 멤피스에서 레슬링 선수로 활동한건 1979년부터인데,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에 죽었음...헐크 호건"70년대 최고 레벨의 탑 탤런트였던 존 벨루시는 레슬매니아 2를 보러와서 쇼가 끝나고 나와 즐겁게 어울렸다. 둘이 술먹기 경쟁을 했는데 벨루시가 나를 이길 수 없어서 결국 파티를 먼저 떠났다."근데 존 벨루시는 1982년에 죽었고레슬매니아 2는 1986년에 열렸음...헐크 호건"NXT에서 케빈 오웬스의 경기를 보고 '열정이 넘치는 진짜 재능이 있네' 라고 생각했다.WWE 관계자 전체 중에서 나만큼 그를 높게 평가한 사람이 없었다. 난 WWE 관계자들에게 '그에게 기회를 줘' 라고 생각했다."근데 호건이 WWE 관계자들에게 "내가 재능을 먼저 알아본 오웬스를 푸쉬해줘라" 라고 말했다는 시기는호건이 이미 인종차별 사건으로 볼드모트된 시점임...조지 포먼은 무하마드 알리와 싸운 복싱계 최고의 레전드 중에 한명인데,그보다도 은퇴후에 '조지 포먼 그릴' 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게 미국인들에겐 더 유명함. 미국에선 정말 잘나갔던 상품임.헐크 호건"근데 그건 원래 내꺼였다. 내가 가장 먼저 제안을 받았는데, 난 홍보모델 해야 할 시간에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거절했다. 내가 깐 뒤 그 뒤에 포먼에게 갔고 포먼은 결국 엄청난 돈을 벌었다."근데 조지 포먼 그릴쪽에서 호건에게 접근 사실 자체가 없었음...헐크 호건"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올드 레슬러 케리 폰 에리히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바로 나다.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러고 불과 며칠뒤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문제는 케리 폰 에리히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에 댈러스에서 경기했고,약물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일본행 비행기는 탈수도 없었음.여기서 더 어이없는건 심지어 헐크 호건 본인도 그 시기에는 캘리포니아에서 WWE 녹화중이었음. 즉 케리 폰 에리히도 그때 일본에 안갔는데, 헐크 호건도 일본에 안갔음...헐크 호건"나는 1970년대부터 '프라이드' 의 격투가들과 실전 경기에서 맞붙었고, 그들을 이기기도 했다. UFC 쪽에서는 UFC1때 나에게 출전 제의를 하기도 했다."문제는 격투기 단체 프라이드는 1997년대에나 생겼음... 다 떠나서 1970년대에는 제대로 된 격투 단체조차도 아예 없었고 MMA라는 개념조차 없었음.그리고 UFC는 UFC1 호건 출전제의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함.헐크 호건"일본에서 WWF 투어를 하던 도중 상대였던 후지나미 타츠미가 갑자기 실전 싸움을 나에게 걸어왔다.억지로 쓰리아웃을 따내 WWF 벨트를 강제로 신일본으로 훔쳐가기 위해서였다.내가 뻗어서 벨트를 뻇기면 우리 회사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나는 격렬하게 실전으로 맞섰다.""또 내가 일본에서 이노키와 경기할때 이노키는 그대로 죽을 뻔했다.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났는데, 나는 야쿠자를 피해서 겨우 도망쳐야했다."당연한 소리지만 호건 헛소리 외에 아무 증언도 없음..야쿠자를 피해 일본을 겨우 떠났다고 하는데 그 후로도 일본 잘만 왔다갔다함.헐크 호건"내 고등학교 야구실력 때문에 신시내티와 양키스가 모두 나를 영입하려고 했다. 나는 메이저리그 데뷔가 코앞이었다. 그러나 팔부상 때문에 그 꿈은 산산조각 났다."하지만 양키스와 신시내티 쪽에서는 전혀 그런 말 없음...헐크 호건"언더테이커와 경기할때 언더테이커가 나를 들고 의자 위에 툼스톤을 찍었는데, 언더테이커가 실수했다.나는 거의 식물인간이 될 뻔했지만 겨우 살아났다."호건이 이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한동안 언더테이커 본인도 '아 내가 헐크 호건 죽일뻔 했구나' 생각했다고 함.그런데 아주 한참 뒤에야 영상을 보니까 호건은 머리가 땅에 닿은 적도 없었고 언더테이커는 탄식했다고 함.헐크 호건 Raw에서 야유 엄청나게 받았을때 언더테이커도 "꼴 좋다" 고 엄청 고소해함.언더테이커도 호건처럼 MAGA 성향 때문에 반대쪽에서 욕 많이 먹었는데 정치색 떠나서 걍 호건은 싫어함.헐크 호건"나는 전성기 시절 1년에 400일 동안 레슬링을 했다."유치원생도 알다시피 1년은 365일임. 호건 본인은 '일본과 미국을 끊임없이 오고다녔기 때문에 시차로 시간을 더 벌어서 1년 400일을 경기했다' 라고 주장함.헐크 호건"레슬매니아 3에서 있었던 앙드레 자이언트와의 경기는 나에게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왜냐하면 그 경기를 하고 며칠 뒤에 앙드레가 죽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도 그 경기를 떠올리면 슬프다..."호건이 레메 3 며칠뒤 죽었다는 앙드레는 1년뒤에는 좀비마냥 안죽고 살아서 호건에게 타이틀을 다시 따내기도 함.그리고 레메 3 끝나고 무려 6년이 지난 뒤에야 사망함.헐크 호건"섬머슬램 92때 나는 자선 활동의 일환으로 웸블리 경기장 가장 맨 앞에서 중병에 걸린 어린아이가 경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어린이는 섬머슬램 메인이벤트에 나서는 나를 응원했다.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슬프다...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것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문제는 92년 섬머슬램에는 호건이 메인이벤트 경기를 하지 않았음.그보다 좀 더 큰 문제는 호건은 92년 섬머슬램에 출전하지도 않았음.거기서 더 이상한 점이 있다면 호건은 그때 WWE 소속으로 일하고 있지도 않았음.그리고 호건은 평생동안 웸블리에서는 레슬링 경기 해본적도 없음..그리고 얼마전엔 MAGA 선언도 함.안그래도 공개적으로 MAGA 선언한 유명인들은 현지에서 지금 평판들이 나락인데 평소에 하는 소리가 저런 소리니 완전히 노망난 늙은이 취급.거기에 해리스보고 흑인으로 변신했다 이래서 논란이 됨.그리고 어김없이 트럼프 관련해서도"트럼프가 나에게 스포츠, 피트니스 및 국민들 영양 관련 부서 쪽 내각에 나를 임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 주장함.물론 지금 호건은 공식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아무런 직책도 제안 안받음....https://youtu.be/nbZW3J5UkPs올해 WWE 나왔을때 역대급으로 야유 처먹던 호건지금은 호건 언급될때마다 헛소리 조롱하는 댓글 가득차거나아니면 "얼른 죽기나 해라" 이 정도 수준프로레슬링식 "역반응이다" 수준이 아니라 걍 인간 자체 보고 진짜 얼른 뒈져라 수준까지 반응 험악함....
작성자 : 대갓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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