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내 게임 산업 실적을 보면 대체적으로 우울한 상황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21년 하늘 높은 줄 알고 치솟았던 주가를 떠올리면 된다. 당시 이른바 '불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게임사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가는 기대감에 형성된다고 했으니 그 기대감의 끝이 어디인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존재했다. 연봉을 2천만 원이나 올릴 정도로 달디 단 축포의 끝은 쓰디쓴 실적 감소와 감원으로 돌아왔다. 해외에서 들리는 해고자수는 15만 명을 넘어섰고, 국내도 곳곳에서 진통의 소리가 들여왔다.
모바일 게임에 대한 소비자 지출은 작년에 2% 감소한 1,073억 달러를 기록했다. /블룸버그
◇ 30년 만의 최대의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게임 산업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는 "2000억 달러 규모의 비디오 게임 산업은 스마트폰 게임과 최신 세대의 게임 콘솔이 주도한 엄청난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는 등 30년 만에 가장 큰 둔화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게임 산업이 30년만의 최대의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말이다.
데이터에이아이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소비자 지출이 지난해 2% 감소한 1,073억 달러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낮은 한 자리 수의 성장이 예상된다.
모바일 게임 소비자 지출이 지난해 2% 감소한 1,073억 달러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낮은 한 자리 수의 성장이 예상된다. /뉴주, 파이낸셜 타임즈
콘솔도 2024년에는 게임기기 부족 현상이 찾아올 예정이다. 소니 PS5의 경우 콘솔 수명 주기의 후반부에 진입했고, Xbox는 인기가 없으며, 사람들은 스위치 2.0의 출시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2024년에는 소프트웨어 판매도 상당히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몇몇 있다. 게임 산업 침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에서는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경기 부양을 꿈꾸는지, 또 국내 게임사들은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할지 알아봤다.
◇ 게임 PD도 IP다...새로운 게임 브랜드(IP)의 구축
첫 번째는 브랜드의 구축이다.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 게임사에 비해 브랜드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브랜드에는 게임 IP일 수도 있고, 스튜디오나 회사 브랜드, 창립자와 제작자인 PD의 브랜드도 포함될 수 있다. 일본에서 매출 1위까지 하며 승승장구 중인 '블루 아카이브'의 경우 개발자인 김용하 PD는 '블루아카이브=김용하'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탄생시킨 좋은 사례다.
틱톡이 최근 발표한 모바일 게임 백서에 따르면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71%가 자신이 신뢰하는 퍼블리셔의 게임을 경험하고 싶어 하며, 73%의 이용자가 이용자를 이해하는 모바일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어 한다. 700개의 프랜차이즈 중에서 각 분야별로 가장 점수가 높았던 것은 콜 오브 듀티와 포켓몬, 드래곤볼Z였다.
강조 표시된 브랜드는 현재 모바일 게임 중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는 모바일 게임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IP /NRG
국내 게임사도 20년 전의 그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가 엔씨와 웹젠, 그라비티를 먹여 살리고 있다. 최근 이들 게임사는 기존 IP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새로운 IP를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지금은 서툴러도 그 길이 맞는 방향이 맞다. 다만 게임 IP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중시하는 스튜디오 브랜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베데스다와 블리자드를 인수한 후에도 해당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모기업인 테이크투보다 자회사인 락스타가 더 유명한 것도 같은 원리다.
스튜디오 브랜드는 기업의 귀중한 자산으로,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경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고기 탕후루나 돈슨과 같은 치욕적인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국내 게임사도 잘 알고 있다.
◇ 전략적인 마케팅에 기반을 둔 게임 만들기
지난 해 출시된 3매치 게임 '로얄 매치'는 국내 매출 톱10에 자리 잡고 있는 게임이다. 캔디 크러시 사가 이후 국내 매출 순위 톱10 안에 든 퍼즐게임은 흔치 않다. 로얄 매치의 마케팅적 특징은 플레이 가능한 광고를 많이 배치하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을 보여주면서 이용자들에게 직접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이 게임은 많이 하는 이유는 오프라인 게임이라, 비행기 기내에서도 플레이 가능하며, 광고가 없으며, 하트를 거의 무한대로 퍼주기 때문이다. 일단 첫 판만 클리어하면 1시간의 하트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저것 아낌없이 퍼준다.
광고도 많이 했다. 로얄 매치는 드림게임즈에 지속적인 자금조달이 이루어진 탓에 반년 만에 10억 달러(1조 3천억 원)가 넘는 광고비를 지출했고, 2023년 가장 빠른 속도로 매출이 성장한 게임으로 기록됐다. 실제 이 게임은 킹의 '캔디 사가'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도 구글 매출 톱10에 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앱매직 데이터에 따르면 이 게임의 누적 매출은 2조 4085억 원이다.
로얄매치 국가별 매출 변화 추이 /앱매직(appmagic.rocks)
이 실적의 핵심은 '간발의 차이'다. 3매치 퍼즐에서 딱 1개 차이로 실패로 끝난 경우를 자주 만들어내는 핵심 역량을 드림게임즈가 갖추고 있는 것이다. 너무 넘사벽이라는 느낌이 들면 게임을 포기할 것이고, 단 1개의 이동이 모자라기 때문에 아이템을 쓰게 되는 것이다. 사실 광고에서 보여줬던 '왕의 악몽은' 낚시에 불과하다.
로얄 매치 왕의 악몽은 100판을 플레이해야 1판을 플레이할 수 있다.
국내에서 구글 매출 1위까지 오르며 '도대체 왜?'라는 탄식을 내뱉게 했던 '라스트 워: 서바이벌'이나 '화이트 아웃 서바이벌' 같은 게임도 처음부터 마케팅을 기반으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구글 매출 1위를 달성한 '라스트워: 서바이벌'의 경우 단순히 숫자를 보고 피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트랜스포머처럼 3단계 이상의 장르 변신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마케팅을 이해하고 마케팅적 사고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게임이다.
광고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라스트워
'화이트아웃 서바이벌'도 월 매출 추정치가 5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고 매출 모바일 SLG가 됐다. 얼음과 눈을 배경으로 한 서바이벌 테마를 도입, 과거 캐주얼 게임에서의 경험을 SLG로 승화시킨 것인데, MMORPG가 아닌 캐주얼 전략 게임도 전략적인 마케팅에 의해 매출 톱10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식시킨 사례다.
◇ 이용자가 주도하는 게임 만들기
글로벌에서 새로운 게임 제작 트랜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플레이어가 주도하는 게임'이다. 핵심 플레이어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플레이어가 게임 개발을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 전 세계를 주도한 한국 온라인게임의 주인공은 플레이어였다. 리니지에서 '길막' PK가 등장한 것도 이용자가 만들어냈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재미를 만들어낸 것도 이용자들이었다.
샌드박스 인터랙티브가 선보이는 알비온 온라인도 마케팅 문구에서 '이용자들이 주도하는 거대한 오픈월드에서의 모험'을 강조하고 있다. 이용자 주도의 경제와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전투에서 자신의 영지를 확보하고, 개인 섬을 확보하여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생산 및 건설을 통해 섬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이용자가 주도하는 게임의 끝판왕이라 부를 만한 것이 '팰월드'다. 팰월드는 한 달 만에 2,500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 모았고, 200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또 다른 방식의 IP 게임 인기를 보여줬다. 이는 '배틀 그라운드'의 성공만큼이나 매우 드문 성과다.
팰월드의 본질은 총기류, 서바이벌 샌드박스 등 포켓몬 회사가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여 항상 존재했지만 시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장의 틈새를 메우는 것이다. 제약에 묶인 오리지널 IP가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플레이어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원작 IP를 설득해 틀을 벗어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직접적인 표절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변신을 시도해 현재 플레이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높은 구조물을 만들고 직접 오르는 영상을 올린 이용자. 팰월드
올해 1월 스팀에 출시되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동시 접속자 수는 26만 명에 달성한 일레븐 아워 게임의 '라스트 에포크'라는 게임도 이용자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미국의 조그만 바에서 이용자들이 게임에 대한 수다를 떨며 개발을 시작했고, 6년 동안 8명에서 90명 가까이 늘어나 마침내 '라스트 에포크'를 출시했다.
일에븐 아워 게임은 '우리는 커뮤니티 플레이어들의 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이용자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R&D 정책을 채택했고, 최종 결과물로 텐센트의 투자를 유치하며 꿈을 실현하고 이용자 주도형 게임 개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디아블로 4에 바랬던 모든 게 있다는 라스트 에포크
국내 MMORPG에서는 '이용자가 주도하는 경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제약이 존재했고, 결국 이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일레븐 아워 게임의 창업자가 "수천 시간을 투자한 이용자보다 이 게임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이용자가 게임 연구 개발을 주도하도록 하면 플레이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 과연 한국은 얼마나 이용자가 주도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했나? 깊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 젊은 게임 기획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진 AI의 활용
다음은 AI의 활용이다. 20년 전 한국 게임 산업이 온라인게임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듯이, 신 성장 패러다임으로 가장 먼저 거론할 만한 것이 바로 AI의 활용이다.
지난 2년간 AI의 발전은 기하급수적인 상승 그래프를 그렸고, 이제 그림과 영상은 물론이고, 게임까지 만들어주는 세상이 됐다. AI는 커스터마이징, 지능형 NPC, 레벨 생성부터 전반적인 연구 개발, 마케팅, 빅 데이터 분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게임 산업에 활용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AI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고, AI의 활용에 뒤쳐진 기업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국내 기업도 잘 읽었다. 10년 넘께 AI 연구를 하고 있는 엔씨는 블레이드앤소울의 비무 AI, 리니지 이벤트 거울 전쟁 및 기란 무한 대전 등에서 이용자와 PVP를 벌이는 NPC에 인텔리전트 에이전트(IA) 부문의 의사 결정 AI 기술을 적용했다. 특히 강화 학습으로 훈련된 인공지능 블레이드 앤 소울의 비무 AI는 2018년 글로벌 경기에서 한국 선수를 상대로 2대0 승리를 거두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블소 비무 ai /엔씨소프트
게임 산업 속 인공지능은 이용자 성향 분석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 추천에도 사용된다. 넥슨의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에서 이용자 성향과 실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트랙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에도 넥슨의 최신 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가 있다. 넥슨은 이외에도 생성형 AI 연구를 연구 중이며 비정상적인 게임 플레이 패턴 발견, 욕설 탐지, 이용자 이탈 원인 분석 등에 인공 지능을 활용 중이다.
게임 산업에서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게임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것은 게임 자체의 완성도 향상과 보다 쾌적한 게임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상을 노려야 한다. 국내 게임사들이 10년 이상 AI에 대한 기반을 닦아 체력을 키웠다면, 이제 홈런이나 장타를 때릴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게임 기획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국내 대형 게임사가 10년간 AI의 기반을 닦았다면 그 위에서 젊은 기획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30년간의 깊은 침체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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