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낚시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낚시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베트남인: 서울에는 제 1세계라고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빈민가가 있다. 카프카스-튀르
- 싱글벙글 황당한 이혼사유 ㅇㅇ
- 전세계 FPS 재능충들이 모인다는 게임..gif 환송대
- 노래방에서 술 마신 학생들 참교육한 노래방 사장님 나키리
- 싱글벙글 300만 유튜버 피식대학 욕먹는 이유…jpg ㅇㅇ
- 해외여행중인 미국인 관광객 특징 ㅇㅇ
- [단독] 못 믿을 부동산 통계…전국 미분양 실제론 '2.6배' ㅇㅇ
- 고려대 번개 김대중 씨 이야기 한현사
- 길고양이에게 공격당한 택배기사 ㅇㅇ
- 제작중인 K-인디겜 한번 보고가줘 (용량주의) dryrain
- 버스 2인 좌석 바깥 쪽만 앉는거 무슨 심보임? 틀딲
- 까마귀 소녀가 쇼타군을 둥지로 납치해간 이유.manhwa 사자베기
- [단독]“나이 관행 안따질 것”…민주, 상임위원장까지 친명 배치 기류 ㅇㅇ
- 실베가능하냐? 헤갤러
- 보정 끝나서 완성본 자랑해봅니다 사진자랑용
내가 점찍어둔 힙스터 여행지 공유한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kanto&no=369482&s_type=search_name&s_keyword=%EA%B9%80%ED%8C%8C%ED%86%A0&page=1 히로시마에서 찾은 작고 소중한 화장실 - 일본여행 - 관동이외 마이너 갤러리 常夜燈・雁木 · 1-5 Dohashicho, Naka Ward, Hiroshima, 730-0854 일본★★★★★ · 역사적 명소maps.app.goo.gl혼카와 공중화장실나름 핵폭발에서도 살아남은 gall.dcinside.com1. 혼카와 공중화장실수많은 사람들이 원폭 돔을 보러 가면서, 무심코 지나치는 숨겨진 명소. 원폭 투하 당시에 살아남은 건축물 중 하나2. 스에히로 오카미(메이 신사)이나리 산 초입에 숨겨진 작은 신사. 이미 수 백명에게 돌려먹혀 허벌개구리가 된 후쿠오카현의 뇨이린지를 잇는 걸 꿈꾸는 교토의 개구리 신사3. 쇼젠인구마모토현 남쪽 끝자락, 쿠마 강의 온천촌 끝자락 미즈카미에 자리 잡은 절. 고양이를 테마로 잡은 절이다. 곳곳에 적긴 해도 고양이 상이 보임.단점은 사연인데, 고양이가 마스코트가 된 이유가 여기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스님의 엄마가 복수하겠다고 저주 의식으로 고양이랑 같이 자살해서임;;4. 쓰와노 오토메토게 성 마리아 예배당카쿠레키리시탄과 관련한 아마 유일한 혼슈 유적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천주교도들이 정체를 밝힌 그 순간하고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그 짧은 기간 사이에 종교인 박해가 잠깐 있었는데, 그때 나가사키의 천주교도들을 유배보낸 곳이다.200명 언저리가 갔는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기까지 10% 정도만 살아서 돌아갔다고 함.5. 나가사키현 가와타나마치 카타시마 어뢰시험장구 일본군의 어뢰 발사 시험장으로 쓰였으나 패망 후 버려진 시설. 특유의 폐허미가 있어서 코스프레나 촬영 쪽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함최근엔 일부 시설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음.6. 오카야마현 니미일관갤에서 주웠지만 어떻게 동네 이름이 니미;;7. 가고시마현 아마기조(도쿠노시마)의 토모리 암각화 & 보마 암각화뭔가 모양새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같아서 엄청 옛날인 선사시대의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17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적어도 에도시대부터나 그때부터 이 근방 섬사람들에게 암각화를 새기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의의가 있다고 함그래도 힙했으면 됐지 않을까...?8. 구마모토현 가마토마치의 고니시 유키나가 공양탑정말 뜬금없는 곳에 위치한 고니시 유키나가 유적지인데, 이 공양탑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야사가 있다고 함.뭐 복잡한 얘기지만 고니시 가문이 멸문당하기 전에, 한 가신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조카(동생의 아들)을 이곳으로 숨겨 키웠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옴근처에 기쿠치 성터가 있다. 어차피 기쿠치 성터도 충분히 힙한데 같이 가보는 건 어떨까?9. 도쿄 이즈 열도, 고즈시마 쥬리아의 십자가고니시 유키나가랑 관련된 또다른 유적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양해서 키운 조,선 사람 중에는 오타 쥬리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패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고 고니시 가문을 멸문시켰을 때, 오타 쥬리아도 고즈시마로 유배당했다고 함.고즈시마에서 진짜로 죽었는지는 의문이지만(사료 상, 유배에서 풀려나긴 했다고 함) 가톨릭계 재일교포 사이에선 상징적인 인물인지라 많이들 기억하려 한다고 함.여튼 고즈시마에선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녀의 넋을 달래고자 십자가 하나를 세워놨다고 함10.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 오빠이 바위그... 바위가 젖꼭지처럼 생겼다고 함11. 아마쿠사시의 미야지다케 허수아비 마을 & 토쿠시마현의 나고로 허수아비 마을인구가 줄어 가는 마을의 인구를 허수아비로 대체하며 관광자원화시킨 곳들이다.마을의 일상을 허수아비로 표현해뒀는데, 오히려 호러스팟에 가까운 느낌. 관리원들이 상주하고 있긴한데, 밤에 가는 건 비추... 허수아비가 하나 더 늘어날지도 사이타마현의 니에카와랑 히메지시 야스토미초세키에도 허수아비 마을이 있다고 함12. 카가와현 히로시마 이쓰쿠시마 신사일관갤에서 건진 미친 힙스러운 곳. 매일매일 바이럴 당하는 히로시마가 지겹다면 히로시마로 가보는 건 어떨까? 다만 여기 이쓰쿠시마 신사는 일본 3대 절경엔 들지 못한다.13. 삼국시대 신사13-1. 사이타마현 고마 신사13-2. 시마네현 오다시 이소타케초 카라카미시라기 신사13-3. 미야자키현 미사토초 고도 신사다른 시기에 저마다 다른 이유로 어쩌다보니 삼국시대의 삼국을 대상으로 한 신사가 생겼다.신라와 관련된 신사는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이지만, 고마 신사와 고도 신사는 각자 연례적으로 치루는 큰 행사가 있을 정도로 크게 자리잡은 신사들임.셋 다 가보면 일본에서 중세 한국 역사 기행이 가능함ㄷㄷ14. 오가사와라 개척비와 오가사와라일본 최고의 오지인 오가사와라의 본 신사로 오르는 길 초입에는 무인도랍시고 냅다 오가사와라 식,민지화를 선언했을 때 세워둔 개척비가 있다.아이러니하지만 일본 제국의 몰락을 상징하는 치치지마 식인사건과 일본 제국의 시작을 알리는 비석이 같은 곳에 있었다는 건... 힙하잖아...이외에도 오키노시마, 이오지마, 마게시마나 오키노토리시마 같은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은 일반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갈 수가 없어서 뺌천주교 관련으로 뭐가 좀 있는 이유는 저번 여행을 천주교 테마로 했어서 그럼
작성자 : ㅇㅇ고정닉
영국을 명말시킬 뻔한 나치의 위조지폐 제조 작전...jpg
1939년 9월 18일,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을 시점에 독일 재무성은 하나의 비밀작전을 수립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안드레스(Andres) 작전이었다. 작전 내용은 대규모로 위조 파운드화를 제조, 영국 상공에 살포하여 영국 경제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당시 SS(나치 친위대)의 수장이었던 히믈러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재무성의 작전을 좌절시킨 장본인인 SS가 도리어 그 작전을 부활시킨 것이다. 1942년 SS 중령 베른하르트 크루거가 이 작전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베른하르트 작전(Operation Bernhard)이라 한다. 작전의 총책임자가 된 베른하르트는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유대인 기술자들과 인쇄공, 회계사는 물론 패션디자이너까지 동원한다. 이들 중에서 핵심 인력은 유대인 위조범 솔리 스몰리아노프와 유대인들이었다. 그를 비롯한 유대인 기술자들은 수용소에서 차출되어 옮겨진다. 그곳은 바로 19구역이라고 불리는 베를린 근교의 모처였다. 이 19구역에서는 제한적이나마 수감자들에게 개인 여가시간을 제공하였고, 사복과 세면실과 화장실이 포함된 개인 공간이 있었다. 식사에는 스프와 커피가 딸려나올 정도로 아주 좋은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이 작전이 끝난 후의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튼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대인 기술자들에게 그러한 대우를 해줬을 정도로 나치 독일은 이 작전에 큰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이 19구역의 기술과 규모는 날로 성장해나갔다. 18구역을 병합하였고 전문 회계실과 인쇄소, 사진 연구소 등등의 시설까지 별도로 갖추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구역에서 만들어내는 파운드화와 영국에서 생산해낸 진짜 파운드화의 갭은 여전히 좁힐 수가 없었다. 석영램프 불빛을 비추었을 때, 진짜 파운드화와 위조 파운드화의 색이 달라지는 문제가 특히 그랬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진전이 없게 되자, 총책임자 베른하르트는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위폐 제조를 중단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유대인 기술자들은 공포를 느꼈다. 위폐 생산을 중단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이용가치가 더 이상 없는 것이므로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대인 기술자들은 목숨을 걸고 밤낮으로 이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9구역 대형 인쇄기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 때를 노려 유대인 기술자들은 탈출을 감행하려 하지만, 총책임자 베른하르트는 화재현장을 통제하고 소방관 조차도 막아버린다. 유대인 기술자들은 완벽한 위조지폐를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자신들에게 탈출, 생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게 된다. 결국 유대인 기술자들은 진짜 파운드화와 구별 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잉크를 제조하는 데에 성공하고야 만다. 그리고 다음 해, 총책임자 베른하르트는 주머니에서 5파운드화를 꺼내더니 "이걸 보게, 제군들. 이제 이건 대영제국 은행에도 유통되고 실제로 쓰이고 있다네. 나는 자네들이 자랑스럽네, 어서 공장을 확장하자구." 라는 말을 하며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베른하르트는 인력을 늘리고 체계적으로 파운드화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위조 파운드화는 4단계로 나뉘어 생산, 유통되었는데 1단계는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는 완벽한 위폐로, 각국의 독일 스파이들에게 공작금으로 제공되었다. 총 생산량의 10~15%를 차지했다. 2단계는 그 보다 조금 낮은 퀄리티지만 일반인은 속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전문가도 속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3단계는 중립국과의 무역에 쓰였으며 4단계는 영국 상공에 살포할 예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을 위해 1억 3천 4백만 파운드가 위조되었으나 독일의 공군참모총장 괴링과 히믈러의 의견이 잘 맞지 않아 실행되지 못했고 1944년에 이르러서는 작전 실행은 커녕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다시피 하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덧붙여 1945년 초에 들어서는 미국 달러화의 위폐 제작까지 시도했으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이것이 쓰일 일은 전혀 없었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