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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모(컴)(211.109) 2022.01.15 10:50:45
조회 28 추천 0 댓글 0

 성 아퀴나스 종합학원 어딘가에 숨겨진 지하실. 교사들조차 제대로 존재를 모르는 탓에 평소라면 쥐새끼 하나 없어야 할 이곳이 오늘따라 한 무리의 학생들로 북적였다.

 

 “, 신입생들 목 풀고! 잘 따라 해. 알겠지? 아이아이 가나글 파탄!”

 “아이아이 가나글 파탄!”

 “악신님! 얼마의 피를 원하시나이까!”

 “악신님! 얼마의 피를 원하시나이까!”

 “좋아, 그렇게만 해.”

 

 하나같이 검은색의 로브와 고깔 복면을 뒤집어쓰고 영문모를 주문을 연습하는 학생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복면을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대체 뭐가 좋다는 거냐!”

 “왜 그래 신입? 견학하고 싶다는 거 아니었어?”

 

 내가 소리치자, 한창 신입생들에게 주문을 가르치는 데에 열을 올리던 여학생 중 하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내가 견학하고 싶다고 하긴 했지!’

 

 당연한 일이었다. 대륙 최고 수준이라는 미션 스쿨에 떡하니 사교도 연구회라는 동아리가 있었으니까! 이름부터 이 꼴인 동아리에 대체 뭘 기대하고 왔냐 싶겠지만은...적어도, 적어도 이런 걸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다.

 

 그래, 예를 들면.

 

 “저건 뭐냐.”

 

 나는 분노로 벌벌 떨리는 손을 치켜들어 지하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쓸데없이 큰 석상을 가리켰다.

 

 “악신님의 존안을 묘사한 석상이야. 선배님들의 말에 따르면 대륙 끝에 있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건으로서, 처음 어부들이 건져 올렸을 때는 분명 아주 오랜 시간 소금물 속에서 방치되었을 텐데 조금의 흠집도 없었다고 해. 저 디테일이며 질감, 보고만 있어도 과거 악신이 어땠는지 상상이 될 정도지?”

 “아니다.”

 “?”

 “아니란 말이다!”

 

 그래, 저건 사실이 아니다. 저 쓸데없이 해산물을 닮은 외관은 뭐고, 여섯 개의 눈은 뭐란 말이냐? 턱에 달린 촉수는 수염이라고 주장할 셈인가?

 

 과거 내가 아직 현역이던 시절엔, 나를 적대하는 신들조차 내 미모에 홀려 동료를 배신하는 일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그런데 뭐라? 촉수 괴물? 나는 한 번도 저렇게 생겼던 적이 없단 말이다.

 

 “저기 걸려있는 내장들은 또 뭐고?”

 “돼지 내장이지, 몰라서 물어?”

 “그걸 왜 알아야 되는건데...!”

 “의식에 제물이 필요한 건 상식이잖아.”

 “그런 상식은 없다!”

 

 세상 어떤 존재가 돼지 내장 따위를 받고 기뻐한단 말인가? 바보가 아니라면, 아니 바보도 알 수 있는 사실이거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세계의 상식이 바뀌기라도 했단 말이냐.

 

 하지만, 무엇보다 내 화를 돋우는 것은 석상도 돼지 내장도 심지어는 의미조차 모를 멍청한 주문도 아니었다.

 

 마치 성물이라도 다루는 양, 제단처럼 꾸며진 테이블 위에 곱게 장식되어 올려져 있는 작은 도자기. 나는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며 도자기를 가리켰다.

 

 “저 도자기. 저것도 악신이 기뻐할 물건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저거?”

 

 여학생은 마치 질문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펴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건 피의 성배야. 산제물을 바칠 때 피와 목을 담아내 악신님의 목을 축이는 용도...”

 “아니야, 씨팔 아니라고! 저건 피의 성배 같은 게 아니라 내가 쓰던 변기란 말이다!”

 

 이 내가 어째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이럴 줄 알았다면 인류 같은 건 어떻게 해서든 멸망시키는 편이 좋았을 것을.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는 여학생은 짜증을 내며 물었다.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입생? 니가 뭔데 토를 달아?”

 

 내가 뭐냐고?

 

 “그래, 정 궁금하다면 말해주마.”

 

 한때 모든 신을 멸하고 세상을 무로 돌리려 했던 악신의 무리가 있었다.

 

 신과 악신으로 세상을 양분해 일만 년간 이어진 전쟁 끝에 신들은 악신들의 계획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강대한 힘을 가진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유독 지혜로웠던 한 신이 내놓은 비책에 따라 그들을 봉인하기로 했다.

 

 그 힘을 잘게 쪼개어 자신들의 피조물인 인류의 혼에 봉인하고, 그 인류에게 순환의 운명을 부여해 모든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이 다시는 깨어나지 않도록. 설령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윤회 안에서 그들의 악의만이라도 중화되도록.

주술은 성공적으로 작동하여 악신들은 의식을 잃고 인류에 녹아들었고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중 하나가 자의식을 되찾고 인간의 몸으로 깨어나기까진 말이다.

 

 그것도 하필, 그 무엇보다 악랄하고 강했던 존재. 마지막까지 남아 단신으로 신의 군세를 괴멸시키기 직전까지 갔던 지배의 악신이.

 

 “그게 바로 나다. 이제 알겠냐?”

 

 설명을 끝마친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드디어 제 주인을 알아봤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녀석들의 눈빛에선 나를 향한 경외심이 절절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솔직히 방향성이 많이 엇나가긴 했지만, 뭐 어떤가? 잘못이야 고치면 될 뿐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내 존재를 잊지 않고 숭배를 이어왔다는 사실은 치하해야 마땅한 일인 것을. 방금까지 열을 내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얼이 빠진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방향이 엇나가긴 했지만, 너희들의 믿음은 잘 느꼈다. 그러니 특별히 나의 사제로써...”

 “좋아! 신입생들 지금부터 첫 미션이다. 이 새끼 끌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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