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목적지는 카페였다.
길 안내는 이민우가 맡았다.
“시에스타.”
이민우가 가는 동안 말했다.
“그런 이름이었지.”
“그래?”
두 사람은 역을 나와 길거리로 향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상가 구획은 사람들로 붐볐다. 태양도 다 저물고 슬슬 어둑어둑해질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의 LED 불빛이 거리를 낮보다도 더 다채롭고 화려하게 밝히고 있었다.
“체인점은 아닌가 보네.”
“어.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야. 부인의 한평생 소원이 찻집을 차리는 거였는데 정년퇴직 하고 나서 할 게 없으니까 남편이 모아둔 돈에 대출을 조금 해서 가게를 열어준 거지.”
“로맨틱한 얘기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거기서 일하다 보니 겸사겸사 듣게 됐지.”
“일? 아르바이트 한 거야?”
“어.”
두 사람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급격히 개발이 이루어진 만큼 한율의 곳곳에는 여전히 과거의 잔재가 남아있다. 철거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 알박기, 그 외 기타 등등.
시에스타가 위치한 건물도 그랬다. 척 보기에도 지어진지 10년은 더 된 것 같은 낡고 허름한 모습이다. 위치도 말도 안 되게 구려서 어지간히 입소문이 퍼지지 않는 이상 자연히 발길이 닿는 일은 웬만해선 없을 듯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일개 아르바이트생인 이민우의 입장에선 한가하니 나쁠 게 없었지만, 가게를 운영해 나가는 부부 입장에선 적은 매출로 인해 고민이 많은 듯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엔 우스운 일이었다. 이런 곳에 가게를 차려 놓고 손님이 오길 바라다니 말이다.
하지만 매출과는 별개로 부부는 지극정성으로 가게를 운영했다. 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 아침 일찍 정해진 시간마다 문을 열었고 빈 공간마다 배치된 열 개도 넘는 화분에 빠짐없이 물을 주었다. 낡은 건물이지만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게 청소했고 누군가가 앉아있는 일이 더 드문 의자들도 매일 마른 걸레로 닦았다.
부부는 가게를 연 동안 함께 있으며 한적할 땐ㅡ대부분의 시간이 그랬지만ㅡ오붓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나 그림을 읽거나 한쪽이 책을 읽어주거나 했다. 그럴 때면 마치 가게가 둘만을 위한 휴양처가 된 것 같았다.
부부는 이민우에게 그다지 많은 일들을 시키지 않았다. 둘은 꼬박꼬박 최저시급을 챙겨 주는 아르바이트생의 역할이 그저 거기에 서서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대신에 부부는 이민우에게 곧잘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은 마치 손주를 대하듯 그가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학교생활이나, 그 외의 개인사 등. 부부는 폭 넓게 질문했지만 결코 집요하게 파고들진 않았다. 그가 별 탈 없이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부의 그런 사소하지만 세심함이 묻어나는 배려 때문이었으리라.
부부는 때때로 두 사람의 자식과 과거 한율의 모습에 대해 이민우에게 얘기했다. 부부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한 명은 서울로 상경해 꽤 규모가 있는 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지방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둘 다 명절에만 만나러 오는데 요즘 들어선 그마저도 추석이나 설날 같은 휴일이 꽤 긴 날에만 온다고 했다.
부부의 남편은 그 점에 다소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세상이 달라져 가는 형태에 대해 곧잘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요즘 들어선 사람들이 과거의 긍정적인 것들까지 모두 한데 묶어 구시대의 폐단이라 여긴다며 못마땅해 했다.
반대로 부인은 그럭저럭 현재의 모습에 순응하는 듯했다. 그녀는 결국엔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거라고 말했다. 한땐 굶지 않기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일하는 세상이 되었듯.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명확했기에 언뜻 그것은 집요하거나 구질구질한 논쟁이 될 수 있는 듯 보였지만 부부는 그것이 논쟁이 될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진 않았다. 부부의 대화는 곁에서 듣는 이민우의 입장에선 항상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다. 결론을 내는 일은 없고, 그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대화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 이민우는 의외로 그것이 정답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노부부에게 있어서도,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따위는.
“여기야.”
이민우는 오래된 상가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고작해야 한 달 정도 안 왔을 뿐인데 기억 속의 그 건물보다 한 일이 년은 더 묵은 것 같았다.
“여기라고?”
한지수가 다가가 건물을 스윽 둘러보더니 이민우에게 돌아봐 되물었다.
“닫았는데?”
“그러게.”
이민우는 가게 앞으로 가서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다. 평소라면 아직 닫을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도 켜져 있지 않고 분위기도 어딘가 허전했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이민우는 창가마다 배치되어 있던 화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폐업했나 보네.”
말하고 나자 이민우는 왠지 슬퍼졌다. 일할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꽤나 이곳을 좋아하긴 했었나 보다.
“최근까지 여기 왔었던 거 아니었어?”
“마지막으로 여기 온 게 한 달 전이야. 그때 짤렸거든. 가게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결국엔 이렇게 됐나 보네.”
이민우는 해고된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노부부는 이민우에게 내일부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뒤에, 연신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이민우의 입장에선, 뭘 사과까지 하나 싶었다. 어차피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란 게 그런 것을.
이후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마무리짓지 않은 채 그냥 묵혀두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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