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립 지잡대학교 사회과학부 수석 입학 (학기당 생활비로 120만원씩 나옴)
기숙사 신청 안해서 아빠한테 자취할 방 1년 방세 얻어냄.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고, 스텝업을 위한 공부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등학생때, 부모님의 잔소리 없이 하고 싶었던 게임에만 몰두함.
그러다가 학점 3.6 나오고 2학기에 장학금 끊김.
그래서 아 공부 안해야겠다 싶어서 그냥 F만 안받을 정도로만 다님.
중간에 카투사 지원을 위해 토익 시험 봤는데 755점 나오고 그냥 해군 운전병 가기로 다짐.
방학 때도 지방 깡촌의 본가에서 게임만 함. 초등학생 남동생이랑 같이. 귀여웠다.
2020년
군입대를 위한 휴학 이후 공백기가 12월부터 6월까지 있었다.
여전히 게임만 미친듯이 했다. 동생이랑도 잘 놀았다. 커가는 순간순간을 놓치기 싫었다.
내 인생은 그게 전부였으니까.
너무 놀기만 하는 거 같아서 모델하우스의 주차장에서 행사장 및 주차 안내 요원을 했었다.
근데 모델하우스 가구 등 집기 등을 첫 날에 전부 옮기게 해서 근육이 완전 찢어졌었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거기 팀장이 사흘 동안 쉬라고 말해줬었다.
그런 고통은 살아생전 처음이였던 거 같다. 집에 돌아와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바를 한 달하고 끝낸 뒤,
여전히 게임만 하다가 입대하게 된다.
2020년 6월 ~ 2021년 12월
인간관계가 서툴고 운전도 못했던 나는 군대에서 상병 1호봉까지 운전을 제대로 못했었다.
그때까지 신병이 안들어와서 막내여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박살난 자존감이 더 박살 날 뻔했다.
'미국 주식'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군대 안에서도 일본 만화를 보며, 핸드폰 게임을 하며.
비루한 현실의 나를 잊기 위해 계속 도피처를 찾았다.
군대에서 자그마한 되팔이를 했었다.
PX에서 화장품들을 사서 중고나라에 올려서 되파는 것.
월에 약 20만원~30만원 정도의 부수입을 계속 얻었던 거 같다.
그런 푼돈 벌 시간에 어학공부나, 대학을 바꿀 공부를 할 것이지.
상병을 달고,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이제는 나만 일을 안하는 상황에서 나만 일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뭐, 안 한 만큼 해야지. 라고 받아들였던 거 같다.
그 덕에 왠진 모르겠지만 부산으로 파견근무 (사실상 휴가였다!)도 가볼 기회도 주셨었다.
가긴 갔지만, 거기서도 의사소통,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한 나는 별 좋은 경험은 못하고 돌아왔었다.
미국 주식으로 300%의 수익도 얻어보고, -50% 손실도 보고 하면서. 어떻게 투자를 해야할 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그렇게 나는 1종 대형 면허와 현금 2,000만원, 그리고 약간의 투자 지식과 운전을 하며 외모가 폭삭 늙어버린 내가 되어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전역하게 된다.
2022년
복학은 했지만, 군대를 갔다왔음에도 여전히 대인관계능력이 부족하고 어렸던 나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계속 게임만 하며, 새로운 경험을 늘리지 않고 계속 마음에도 없는 학교, 학과를 다니면서
강의실 - 기숙사 (게임)을 반복했다.
게임은 여전히 즐거웠다. 비루한 현실의 나를 잊고 다른 세상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FPS 랭커인 나는 로그인만 하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었으니까.
알바나, 일 경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모아둔 게 좀 있었고, '나 같은 녀석이 무슨..' 이라는 생각이 줄곧 들었으니까.
옷을 제대로 입고 다녀볼려고 유니클로를 쏘다니며 쇼핑도 하고 그랬지만, 도수 높은 안경에 운동이라곤 평생 안하고 키도 169cm이고 머리도 큰 나는 무엇을 입어도 이상하게 보인다는 절망에 빠진다.
여전히 게임은 했지만,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조금 달라졌다.
중고거래 되팔이로 600만원의 부수익을 만들었었다.
2023년
고등학교 친구와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 오사카에 15일 간 갔다.
충격이였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즐거운 것도 많고, 즐길 수 있는 곳이였다니.
여운에 젖어서 겨울방학 내내 일본인들과 게임 했다.
3학년 1학기가 됐다.
전공 수업은 어려워지고, 일본 여행의 여운으로 내가 걸어왔고,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겼다.
우울증에 걸렸다. 공황장애가 왔다.
수업에 출석할 때마다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느낌이였다.
내가 설 자리가 없는 느낌이였다.
23년 5월, 몇 번의 의미 없는 상담을 마치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휴학하고 히키코모리가 된다.
내 청춘은 뭐였을까. 이제 끝나버리고 하향곡선을 그리겠구나. 내 인생은 뭐지. 보잘 것 없다.
그렇게 찌질한 생각들을 하며 본가의 집에 틀어박혀 새로운 기회를 능동적으로 찾아보지도 않고 게임만 또 하게 된다.
2024년
엄마의 주선으로 행사장 설치 알바 1개월, 주민센터 계약직 알바 3개월을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친구와 일본여행을 갔다.
게임을 같이 하던 일본인들을 만나서 같이 놀았는데
현실에서의 나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였는데, 만난 일본인들은 다들 현실에서도 잘 놀고 게임은 '그저 하나의 취미정도' 라는 느낌이였어서
게임이 인생이 전부였던 나는 괴리감을 심하게 느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병신마냥 쭈뼛쭈뼛하다 왔다.
다른 친구들과 일본여행을 또 갔다.
우울증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 감정 조절을 제대로 못하고 찌질한 행동들만 하다 온 거 같다.
여행 가서 본 규슈의 풍경들과, 혼자 보러 간 <룩백>이라는 영화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눈물이 계속 나왔다.
<봇치더록 극장판>도 개봉 첫 날 보러갔는데, 직장인 아저씨들이 굉장히 많은 걸 보고
'나도 눈치보지 않고 무언가, 누군가를 스스럼없이 좋아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겼다.
여행을 갔다오고, 서울의 고시원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라식 수술을 받았다. 받고 나서 친구들을 만나니까 하나같이 눈이 글케 큰 줄 몰랐다 잘생겨졌네~ 라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역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장기적인 인연은 되지 못했지만,
"나는 할 수 없어.." 에서 "나도 할 수 있을까?" 정도로 바뀐 거 같다.
나보다 4살, 5살씩 어리지만 열심히 알바를 1년 넘게 하며 대학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정말 삶을 보는 관점이 그릇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일이 고되서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 헬스장도 주4일 1시간 반씩 두 달 다녔다.
2025년
편의점이 폐업해서 백수가 됐다.
별로 내키지 않는 친구와 삿포로 여행을 가게 된다.
복학도 신청은 해놨다.
미국 주식이 잘되서 일 안하고도 꽤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라식 수술도 받고, 일본도 자꾸 다녀서 잔고가 천만원대 미만으로 떨어지고,
슬슬 여러모로 한계다. 어떻게든 내가 바뀌어야하는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어.
나같은 비정상도 정상적으로, 만족스럽게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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