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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남편이랑 동거하는 TS물 읽어보실분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2.08 09:01:41
조회 55 추천 0 댓글 3

누나의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 걸까요?


#TS #현대 #일상물 #로맨스 #순애 #약피폐


0.


  우리 누나, 우연은 친누나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동네 누나라는 뜻도 아니지만.


  우연의 아버지- 그리고 내 새아버지 민형은 아빠의 쌍둥이 형제였다.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입양을 결정했다, 고 들었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새아버지는 나를 좋아했지만 새엄마는 마뜩찮아 했다는 것, 그래서 집에 있을 때마다 누나가 편애 받는 분위기를 느꼈다는 것, 그 편애의 명세를 따져보면 사실은 무관심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 뭐 그런 기억 정도야 아직도 남아 있지만.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냐일 뿐.


  누나는, 나보다도 더 그 가정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매형과 결혼한 뒤, 아이조차 남기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린 걸 보면.


  ...누나.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누나.


  천사처럼 착했던 누나는, 천사 노릇을 강요하는 이 세상에 질려버렸던 거야?


1.


  아침.


  또 지긋지긋한 아침이다.


  나는 일어나서 휴대폰의 알람을 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평일에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그야 지금은 빌붙어 사는 신세니까. 매형 집에 빌붙어 사는 입장에서, 게으름을 피울 만큼 낯짝이 뻔뻔하진 않다.


  침구를 치우고 반듯하게 접는다. 버릇처럼 한숨을 내쉬며 욕실에 들어선다. 살짝 코끝에 감도는 시트러스풍의 방향제. 거울에는 이제 익숙해져버린 내 얼굴이 비친다.


  그럭저럭 관리가 된 단발. 여자애들이나 입을 법한 잠옷. 키는 여자치고도 살짝 작은 편이고-


  얼굴은 짜증스러울 만큼 누나를 닮았다. 평범했던 나와는 달리, 길거리 캐스팅도 당할 만큼 예뻤던 누나.


  물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예계에 진출하는 일은 없었지만. 누나라면 얼굴만으로도 잘 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슴상... 이라고 해야 하나. 잘은 모르겠어도 걸그룹 비주얼 센터를 서도 될 만큼 예쁜 외모다. 작은 키와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일지, 내 경우에는 그저 귀엽기만 한 타입이긴 해도.


  조금, 죄스러운 마음이다.


  죽어버린 누나와 똑 닮은 얼굴로 산다는 것은. 가질 자격 없는 유산을 차지해버린 탕아가 된 기분이랄까.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모두 다 병 때문. 선천성 성전환증, 혹은 더 대중적인 명칭으로는 '우화'라고도 부른다. XX염색체임에도 남성으로 태어난 극소수의 사람이 성인기에 겪는 변형이라나.


  감성돔 같은 생선의 웅성선숙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라곤 하던데. 아무튼 그놈의 우화 탓에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매형에게 빌붙어 사는 중인 것도 다 우화 때문이고.


  갑자기 쓰러진 내 병원비를 대준 것은 매형. 치료 과정에서 곁에 있어준 것도 매형. 변형 후 도저히 자립할 수 없어진 나를 거두어준 것도 매형이다.


  그런 매형이 내게서 뭘 구하고 있는진 모른다. 나를 누나의 자그마한 대체품으로 보는지, 아니면 그저 죄책감에 붙들려 있을 뿐인지.


  하지만... 최소한 매형은 내게 젠틀하게 굴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나도 매형에게 잘 해야할 뿐이다.


  그런 게 사람 사는 도리라고 배웠으니까. 선의는 선의로, 악의는 악의로 되돌려주는 것.


  보일러를 틀고 샤워기에서 온수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훈김이 욕실 안에 감돌기 시작할 때 나는 물을 맞는다.


  역시 따뜻한 물은 좋다. 우울하거나 잡스러운 생각은 대부분 물길에 씻겨나간다. 한껏 온기를 만끽한 이후에야 몸 구석구석을 살필 기분이 든다.


  뭐, 이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긴 했는데. 여자애가 된 내 몸도 보다보니 익숙해지긴 하더라. 이젠 샤워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만큼.


  바디워시의 거품을 내고 몸을 닦는다. 샴푸를 하고 린스를 하고... 매일 아침마다 씻는 패턴을 나른하게 반복한다.


  샤워를 마친 다음엔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린다. 그리고 이것저것 피부관리용 화장품도 바르고. 처음엔 남자일 때마냥 선머슴처럼 살았는데, 누나와 닮은 얼굴을 망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두려웠달까.


  아무래도 좋은 얘기다. 제대로 된 화장은 하지 않으니 노동이라 할 정도는 못 된다. 나는 빗질을 몇 번 해 산적 꼴을 벗어난 다음 거실로 향한다. 물론 잠옷 위에 가벼운 가디건 정도는 걸친 채로.


  매형의 집은 제법 크고 좋다. 삼십대 남자가 자가로 삼기에는 꽤 과분한 신축 아파트. 서울의 이런 집에서 살 만큼 매형은 나름대로 유능한 남자다.


  그게 좋은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퀀트로 일하던 형은, 암호화폐 관련 규제가 미비하던 시절 상당한 돈을 벌었다.


  그 대부분은 금융사기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짓거리. 코인 광풍의 초기 시절이라 감옥은 가지 않고 빠져나왔다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번듯하게 자란 형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다.


  형... 매형은 그래서 내게도 어려운 사람이다.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변인이 비난하긴 어려운 사람. 누나를 서울 자가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면 사기도 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매형 말고도 많이 있는 걸까? 자기 사람에게는 한없는 헌신을 베푸는 주제에, 불쌍한 독거노인의 전세금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덴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나라면 그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겠지. 피땀 어린 돈을 갈취해가는 한 명의 금융사범이, 자기 아내를 향해서는 한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조차 하느님의 뜻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례를 받긴 했어도 딱히 하느님을 믿어본 적은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곤 사람은 몸으로 이루어진 존재란 게 전부고, 그리고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지옥도 결국엔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있을 뿐이다.


  한숨을 쉬면서 쌀을 씻는다. 아침으로는 그리 무겁지 않게, 간단한 나물과 된장국, 거기에 주로 생선 한 조각 정도를 먹는 편이다.


  매형은 편하게 지내도 좋다고 말했지만... 내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집도 밥도 옷도 돈도 모두 매형의 것으로 해결하는 이상, 집안일 정도는 내가 하는 쪽이 인간다운 도리다.


  형은 그런 도리따위야 아무래도 좋은 거라 말하겠지만.


  전기밥솥의 전원을 켜고 밥을 짓는다. 애호박과 양파와 파와 두부를 썰어 된장국을 끓인다. 미리 만들어둔 나물 세 종류를 가지런히 담고, 김치 몇 조각 또한 접시에 소담히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팩에 포장된 연어 스테이크 한 조각을 굽는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차가운 생선을 구우면 기름이 많이 튄다.


  형, 아닌 척해도 상당히 깔끔 떠는 스타일이시니까. 지저분해지는 건 나도 그때그때 닦으려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키친타월로 기름이 튄 자국을 꼼꼼히 정리한다.


  대충 밥이 다 된 다음 형을 깨운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으로 일어나는 매형조차,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퍽 잘생겼다. 매형은 잘생겼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니까, 나조차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단 한 명 있다면 그건 매형일 거라고.


  하품을 하며 일어난 매형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기껏 씻은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다음 자리에 앉는다.


  "잘 먹을게, 유민아."


  "...네, 형."


  꼭 신혼부부라도 된 기분이군... 하지만 신혼부부라면 이거보단 더 살갑게 대화를 나누겠지.


  나한테 매형은 조금 무서운 사람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누나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 모를 만큼.


  매형은... 정말로 누나와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떠나버리자 폐인처럼 몇 달을 보냈고, 나를 책임져야 하게 된 뒤 겨우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매형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형의 맞은편에서 조심스럽게 나물을 씹는다. 갓 깨어난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생글거리는 얼굴이 보이지만, 솔직히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알기가 어렵다.


  그렇게 평소처럼 반찬을 깨작대고 있으니 형이 문득 날 부른다.


  "유민아."


  "네."


  "저녁에 외식이라도 할까."


  "...어디서요?"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저는 아무거나......."


  아무거나, 라고 말한다 해서 내 탓을 하면 안 된다.


  형과 외식한다면 메뉴는 주로 파인 다이닝 쪽.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얻어먹는 주제에 메뉴 투정을 할 순 없어서, 심지어 그 메뉴마저도 와인 페어링을 포함해 손이 덜덜 떨리는 금액이라서,


  그냥 조용히 받아 먹는 편이다. 그리고 받아 먹는 처지기 때문에 자세한 건 모른다.


  아무거나, 라고 대충 답한 뒤에 형의 선택을 기다릴 뿐.


  그러니까 평소처럼 매형이 알아서 결정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형은 한 번 더 내게 묻는다.


  "소고기 괜찮아?"


  "저야 막입이라... 형이 사준다면 뭐든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천연스러운 척 웃는다. 아무거나라고 한 다음 '그건 좀' 하는 폭거를 저지르진 않는다.


  나는 딱히 주관 같은 건 없는 사람이다. 나한테 주관이 있다면 그건 누나를 좋아한다는 감정 정도일까.


  누나의 남자인 매형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적어도 누나가, 매형이랑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정말로 행복한 듯이 보였으니까. 그거면 된 게 아닐까 생각했으니까.


  그런 매형마저 누나의 죽음을 막아내진 못했지만.


  그래서.......


  남동생이 품기엔 웃긴 생각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매형을 인정하고 있었다.


  매형이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주변인에게 잘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긴 해서.


  누나에게 잘 하는 매형이 싫은 사람은 아니었어서.


  ...


  "잘 먹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음식 솜씨가 좋네."


  식사를 마친 매형이 의례적인 칭찬을 건넨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난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단 말을 들었는데... 진짜로 뭐가 떨어지고 나자 요리가 취미가 되었다.


  그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기도 하니까.


  건강은 몹시 나빠졌고, 여자의 몸으로 바깥일을 할 용기도 없다. 매형이 거둬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아.


  바보같이 눈물이 흐른다. 아침부터 청승맞게 이게 뭔 짓이람.


  매형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내게 손수건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가만히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괜찮냐거나, 왜 우냐거나,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형이 나를 신경 쓰고, 존중하려 애쓰는 중이란 건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면모 때문에 누나는 매형에게 반한 거겠지.



2.


  나까지 식사를 마친 다음엔 설거지를 한다. 원래라면 형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테지만, 몇 번 사소한 말다툼이 오간 다음 대충 역할이 정리됐다.


  집안일은 무조건 내가 하는 걸로.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내 체면이 살지 않으니까, 그냥 날 위해서라도 가사만큼은 내게 믿고 맡기는 걸로.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형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다. 나는 어제 다려둔 정장을 꺼내 가지런히 걸어둔다. 물론 걸어만 둘 뿐이지 입는 건 형이 알아서 입는다.


  ...진짜 신혼부부도 아니고, 옷을 내가 입혀준다거나 하는 건 좀 그렇지.


  형은 무슨 생각을 할지가 좀 궁금하다. 처남이었던 처제와, 그것도 아내를 몹시 닮은 처제와 동거하는 건 꽤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일인데.


  사회적 시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거야? 하지만 형은 안 그런 척하면서 체면에 죽고 체면에 사는 인간이다.


  누나에 비해 전체적으로 작아서 성적인 매력이야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 그럭저럭 예쁜 편이라고는 생각하는데.


  그런 여자애와 - 적어도 액면가만은 여자애와 - 함께 살면서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는 거야? 그냥 누나를 닮았을 뿐 열한 살이나 어린 애니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딱히 중요하지 않나?


  아니면, 그런 시선마저 감수할 만큼 형에겐 아내의 동생이 소중한 걸 수도.


  모르겠다.


  나는 바보라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매형은... 지금의 매형은 책임감 하나로 사는 듯하지만,


  그 감정의 파고가 온전히 책임일 뿐인진 나야 모른다.


  내가 혼자 땅을 파고 있자 번듯하게 차려입은 매형이 또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여자애들은 정리하기 귀찮다고 싫어한다던데... 나야 예쁘게 보일 사람도 딱히 없고, 별로 신경 쓰진 않는다. 형이 내게 말한다.


  "유민아."


  "네."


  "전에도 얘기했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고, 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거뿐인 거지."


  "...네."


  "더부살이가 불편하면 언제든 얘기해. 따로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잡아줄게."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말끝을 흐리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이 사람은 가끔씩 귀신같이 속을 읽는단 말이야.


  나는 멋쩍게 툴툴대며 정장 차림의 형을 올려다본다. 수트핏이 폼이 나는 게 이대로 나가면 번호라도 꽤 따이지 않을까-


  ...내가 누나였으면 의부증이라도 걸렸을 거 같다. 솔직히 바깥에 돌아다니게 두기 무서운 남자야. 나는 떠나가는 매형을 향해 떨떠름하게 인사한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그리고?"


  "저, 산책하러 나가도 될까요."


  "그럼. 그런 거 일일이 허락맡지 말라니까. 뭐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유민이 넌 경우가 너무 발라서 문제야."


  싱그럽게 웃으며 마지막 말은 남긴 형은, 그대로 나를 남겨둔 채 떠난다.


  혼자가 되니까 쓸쓸해- 같은 감상은 들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은 척해도 솔직히 서로 불편한 사이라서.


  형은...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질투가 나기 이전에 그냥 어렵고 불편하다. 오늘 일하러 나가는 것만 해도 그렇지.


  평생 놀고 먹어도 될 돈이 있으면서도, 삶의 기력을 되찾은 뒤로는 굳이 직장을 구했다. 퀀트 경력이 있다지만 금융계 일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회사 재무팀에서 일하는 중이라던가.


  나였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사람 꼴을 갖추고 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다니?


  뭐야 그게.


  매형이 떠난 다음 나는 집안을 대충 살핀다. 빨랫감이 나와 있는지(라곤 해도 형은 깔끔떠는 성격이라 알아서 챙겨 넣는다), 청소가 필요한 곳은 있는지(내 양심상 형의 방에 들어가진 못해서 역시 무의미하다), 장 봐야 할 식품이나 물건은 있는지(어제 갔다왔으니 있을 리가 없다).


  살림하는 주부마냥 이리저리 시간을 죽이다가 머리를 빗는다. 산책하러 나갈 생각이니 화장은 못해도 머리카락 정도는 정리해야지.


  그럭저럭 개털같지 않은 수준이 될 때까지 다듬은 다음 옷을 갈아입는다. 무난한 디자인의 청바지와 흰 티셔츠에 니트. 그리고 폼이 넉넉하게 남는 롱패딩.


  요즘 날씨는 추우니까, 롱패딩에 의지하지 않으면 약골인 난 돌아다닐 수가 없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동현관을 빠져나오면,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뺨을 감싼다.


  후우.


  내쉬는 숨. 다시 들이마시는 숨.


  차갑다.


  아직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든다.


  혼자 집을 나설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여자애가 된 뒤로는 많이 무서웠으니까.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을 경험하게 될까봐.


  피해망상인 건 안다. 한국 정도면 치안이 괜찮은 편이란 것도. 여자애란 이유만으로 범죄의 타겟이 되는 케이스가 드물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는 가짜 여자라서, 뭔가 어색하게 보일 거라서, 웃음거리가 되고 나쁜 일을 당할 거라고.


  원래 남자였다는 이유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떨쳐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은은하게 아침해가 비치는 길을 따라 걷는다. 햇살이 환하다기보다는 서늘하다는 감각을 준다.


  바람이 불고, 가로수가 가볍게 떨린다. 아파트 단지는 고즈넉한 분위기로 잘 꾸며져 있다.


  유치원생인 듯한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종종종 걸어간다. 아이들 앞에서 귀여운 말투로 얘기하는 선생님이 새삼 대단하다.


  내 정신력으론 절대 못해낼 짓인데, 저거.


  나도 아이가 생기면 그럴 수 있을까? 지지야 지지, 하면서 아이를 말린 다음 꺄르륵 소리로 달랜다거나?


  웅웅, 그랬어요. 땡땡이 때문에 땡땡이가 화가 많이 났어요. 선생님이 땡땡이한테도 얘기해 볼게요, 같은 말투를 쓰면서.


  ...


  난 못할 거다.


  역시 애들은 싫다. 새엄마가 날 꺼린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자기 애조차 아닌 애를 돌보는 게 얼마나 성가시겠어?


  심지어 꽤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느닷없이 대 이을 아들 자리를 차지해버린 애라면.


  푸하, 하고 한숨 쉬면 입김이 하늘로 오른다. 고개를 내려 옆을 보면 수로가 얼어붙어 있다.


  나는 얼어붙은 수로 옆을 조용히 걷는다. 서울에서 이만큼이라도 차분한 장소는 아파트 단지뿐이겠지.


  그마저도 더 걸어나가면 곧바로 매연이 가득한 도로가 나오겠지만.


  몸이 약한 환자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암환자도 불치병 환자도 사는 서울인데, 딱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내가 징징댈 처지도 아닌 것 같다.


  삼십 분쯤, 아무런 생각 없이 단지를 걷는다. 걷는다기보단 비현실적인 도시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다.


  불필요한 시선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애매한 시간대라 그럴 수 있겠지만.


  몽롱한 산책을 끝낸 나는 단지 내의 카페로 향한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벌써부터 카페는 영업 중이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패딩을 끌러 2인석의 맞은편에 둔 다음 착석.


  복고풍 인테리어의 카페 내부로는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이렇게 말하면 음악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냥.


  워낙 유명한 곡이라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유명한 야상곡 9-2. 모르는 사람이 간첩... 아니 남파간첩도 이정도는 알 거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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