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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 + 멘헤라 + 이세계 모험 TS물 프롤로그 보실 분?

ㅇㅇ4(123.248) 2025.01.25 01:21:10
조회 58 추천 0 댓글 1

너무 설명충인가? 싶긴 한데요


대충 이 다음부턴 템포 좀 올릴듯



흡혈 공주는 사랑받고 싶어


Intro


  우리 누나, 소연은 내 친누나가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누나라긴 더 애매했다.


  소연의 아버지 - 그러니까 내 새아버지는 친부의 일란성 쌍둥이였다. 부모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입양을 결정했다, 고 들었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두 살. 그러니 머리가 굳기 전까진 입양아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다만 새엄마가 미묘하게 누나를 편애한다는 것만 느꼈다. 그래서 어릴 땐 새엄마를 많이 미워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니다. 새엄마는 충분히 좋은 분이셨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을 덮어놓고 차별하지 않았다. 문제는, 뭐랄까.


  아이들은 타인의 악의와 선의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가더라도 누적된다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자신이 순전하게 사랑받을 수 없는 처지란 걸.


  그런 처지 아래 자랐기에 나는, 계산적이고 애정결핍인 아이가 되었다. 미묘하게 겉도는 아이였던 나를 한없이 사랑해준 한 명에게, 끝없는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


  ...누나.


  내 사랑하는 누나.


  이십오 퍼센트의 피로 이어진 누나.


  입양아인 나마저 차별 없이 사랑해준 누나.


  그런 누나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누나는 말했다. 이제 예쁘고 착한 딸로 사는 건 질려버렸으니까.


  유언 같던 그 말은 정말로 누나의 유언이 되었다. 다음날 새벽 누나는 배란다의 테라스를 넘어 투신했다. 십오 층 옥상이었으니 조금의 기적조차 바랄 수 없는 즉사였다.


  왜?


  라고 물을 여유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누나는 급하게 죽어야만 할 이유라도 있는 사람처럼 곁을 떠났다.


*


  열여섯의 여름.


  몹시 더운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누나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툭 건드리면 끊어질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했다. 적의와 악의와 실의밖에 없는 사흘이 흘렀다.


  그리고 또,


  사흘이 흘렀다. 비가 내렸다. 매미의 울음소리 위로 떨어지는 폭우였다.


 사흘이 흘렀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사흘이 또 흐르고 비가 그쳤다.


  사흘이... 흐르고 흘러 세 달이 흘렀다. 우리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세 달이 더 흐르고, 겨울이 지나가고, 세달이 또 흐르고.......


  누나가 죽은지 삼 년째의 여름.


  나는 누나를 따라 투신했다.


  누나의 흔적이 사라진 십오 층의 배란다에서.


*  


  누나.


  누나는 정말로 예쁘고 착한 딸이었어. 예쁘고 착한 누나였어.


  그러니까 천국은 있어야만 해. 누나 같은 사람을 위해 천국은 있어야 해.


  나는 믿어.


  아니 확신해.


  죽음 이후에는 누나를 위한 천국이 있을 거라고.


  확신이 있으니까 죽음은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죽어서 지옥에 가는 거야.


  만약에... 누나, 내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다면,


  누나는 역시 나를 구하러 와줄 거지?


  사랑해, 누나.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


  그렇게 기도했지만,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자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낯선 세계였다.


  아가타- 누나의 세례명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 기독교도 없는 세계에서 왜 그런 이름인지 모를 소녀.


  별로 좋은 처지의 소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다지 좋은 세계도 아니었다.


  아가타가 살고 있는 곳은 인류제국이라는 이름의 나라. 그곳에서 아인종은 모두 노예로 취급되었고, 아가타는 요정의 피가 섞인 아이였다.


  아가타의 '주인'과 요정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비천한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학대당한 끝에, 결국에는 자살을 기도했고, 그렇게 다시 깨어난 결과-


  기억상실 컨셉을 잡은 내가 빙의된 모양이었다.


  아가타의 자살소동 때문인지 주인은 화를 냈다. 내게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라기보단... 뭔가 더 끈적한 종류의 애증이 깃들어 있는 마음.


  집착하고, 학대하고, 그런 끝에, 아가타라는 소녀의 날개를 완전히 꺾어버리고, 마음이 망가진 인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


  어쩌다 그런 마음을 가진 부모가 됐는진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깨어난 이후로도 나는 학대를 당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무시가 전부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물어도, 다른 노예들은 벌벌 떨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어느날 나는 주인에게 물었다. 저를 사랑하냐고. 주인은 나를 사랑한다고 답했다. 나는 악에 받쳐 마지막 용기를 짜냈다.


  왜?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누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사랑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평생 예쁘고 착한 딸로 살 수밖에 없었던 누나의 기분을.


*


  새로운 세계에서 2년이 흘렀다.


  나는 얻어맞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가혹한 노동에 동원됐다. 그러는 와중에도 쓸데없이 회복력이 좋은 몸은 상하지 않았다.


  인간보다 오랜 시간을, 500년의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요정 혼혈의 몸.


  그 몸은 세월을 견디기 위한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인간이라면 죽을 정도의 상처마저 끝내는 회복했다.


  그래서,


  처음 자살시도를 했을 때조차 죽지 않은 거라고 했다.


  앞으로 자살을 시도하더라도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학대 속에서 점점 죽어갔다. 울면 운다는 이유로 맞았고, 울지 않으면 반항한다는 이유로 맞았다. 주인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나를 때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아픈 건 역시 싫었다. 이미 지쳐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물리적인 폭력이 이어지자 모순적인 사람이 됐다.


  죽고 싶어.


  살고 싶어.


  누나를 보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싶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받고 싶어.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


  그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카를로스 쿠에르보.


  요정 혼혈인 아가타와 똑 닮은 외모. 동양인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


  소년과 청년 사이의 나이로 보이는, 귀여움과 아름다움과 멋있음이 공존하는 남자.


  저택에 불길이 솟았다. 사람들이 비명지르는 소리가 났다. 재와 피와 죽음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그리고- 죽은 주인의 시체를 내 앞에 툭 던져주며, 해맑게 미소짓는 그와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눈 앞의 이 남자는, 주인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평생 군림해왔기에 약자들의 입장따위는 전혀 모르는 인간.


  그가 상큼하고 귀엽게 웃으면서, 피와 불을 배경으로 말했다.


  "안녕?"


  "..."


  "내 이름은 카를로스. 카를로스 쿠에르보. 너를 구해주기 위해 왔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났다.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죽음의 흔적이 어린 복도를 조용히 걸었다. 나는 죽음을 마주보는 것에 질려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정문을 나설 때쯤이었을까. 나는 우중충하게 물들어 있는 하늘을 봤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처럼 부르는 이름.


  "카를로스, 님?"


  "응."


  "왜예요?"


  "왜라니?"


  "왜 저를 구해주신 거예요?"


  그 물음에 카를로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불타는 저택 바깥으로 향하던 그는, 나를 돌아본 채 여전히 상큼하게 웃더니-


  "글쎄. 죽은 여동생이랑 닮아서일까?"


  농담인 척하며 진실을 말했다.


*


  나는 그를 따라 마차에 탔다. 동력원이 무엇인지 모를 마차는 스스로 하늘을 날았다. 심지어 조종하는 마부조차 없는 깡통이었는데도.


  판타지 세상이란 건 알았지만 막상 진짜 환상과 마주치자 신기했다. 물론 이 세계에선 환상이라기보단 기술에 가까운 취급인 모양이었지만.


  나는 차창밖으로 불타는 저택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지난 2년의 지옥이 불타는 것을 보니 이 모든 게 꿈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내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카를로스는 최대의 상냥함을 띤 얼굴로 물어왔다.


  "괜찮니?"


  "네."


  "이름이 뭐야?"


  "...아가타. 아가타예요."


  내 주저에는 거리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누나의 세례명과 같은 이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따위가 그 이름을 쓰는 건, 누나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져서.


  그런 내 기색을 살폈는지 카를로스가 물었다.


  "아가타, 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 거야?"


  "그, 별로, 싫은 이름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요......."


  "그렇구나. 그럼 내가 새 이름을 지어줘도 될까?"


  "...네."


  카를로스는 잠깐 고민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고민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내 몸 뒤에 있는 무언가를, 이제는 사라져버린 망령의 그림자를 보았으니까.


  그가 선고하듯 말했다.


  "아우라."


  "아우라......."


  "아우라 쿠에르보, 그게 지금부터 네 이름이야."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서 죽은 누이를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이미 죽은 가족 때문에 움직이는 망집의 덩어리였으니까.


*


  카를로스의 영지는 서대륙 최남단에 있었다. 사실 영지라기보단 국가라고 하는데, 현대인으로서 나라라 부르기엔 민망한 규모랄지.


  회색빛 땅과 회색빛 성이었다. 아마도 흡혈귀가 사는 곳이 그렇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니 카를로스가 웃었다. 가볍게 웃고서 말했다.


  "아우라."


  "...네?"


  아우라, 라는 이름이 나를 지칭한단 걸 까먹어 대답이 늦었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있지."


  "네."


  "나는 흡혈귀야."


  아.


  진짜 흡혈귀인 건가.


  하긴 판타지 세상이니까, 그리고 요정 혼혈이라곤 해도 보기보다 나이 많은 지배자 같으니까.


  그가 흡혈귀라 해도 놀랄 건 없다.


  내가 무표정하게 따라 걷자 카를로스는 투정부리듯 말했다.


  "뭐야. 놀라지 않는 거야? 아니면 농담이라 생각하는 쪽?"


  "그냥... 카를로스 님이라면 그럴 것 같았어요."


  "으음. 그런가. 그거 왠지 나쁜 말 같네."


  "..."


  나는 그의 말에 살짝 겁먹어 아래를 보았다.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카를로스도 날 학대할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은 여동생을 닮았다는 이유로?


  살짝, 떨면서 벌을 기다렸지만 질책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카를로스는 여전히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정식으로 소개할게. 나는 카를로스 쿠에르보. 7계위의 흡혈귀이며, 시조 혈족의 군주. 앞으론 네 오라버니가 될 남자야."


  오라버니, 라고.


  나는 단순히 그의 여동생, 그러니까 아우라란 이름일 아이의 대체품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흡혈귀끼리 피로 이어진다는 것은 보통보다 더 깊은 의미였다.


1.


  카를로스와의 만남으로부터 50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그의 영지를, 정확히는 성을 떠날 수 없었다. 흡혈귀가 태양에 약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어느 날 카를로스가 내게 말했다.


  "아우라, 미안해. 답답하겠지만 사정이 있어."


  "사정이요?"


  "응. 이 땅의 권력구조는 고여 있거든. 다른 반신들이 널 반기지 않을 거야."


  카를로스에 따르면 내 탄생은 이례적인 경우였다.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흡혈 공주 '아우라 쿠에르보'로 만들었다고.


  뻐기는 투라기보단 담담히 사실을 말하는 듯했다. 통상 국가들의 정체는 전생으로 따지면 신정 파시즘에 가까운 구조. 흡혈귀의 7계위와 견줄 만한 반신들이 신이자 왕으로서 영토를 다스렸다.


  새로운 초인의 탄생은 그자체로 세력균형의 붕괴를 뜻했다. 그러니 나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려는 반신들도 있었다. 인류 제국의 황금왕 아우레움이나 황무지의 늑대왕 카심이 특히 위험하다고.


  카를로스의 말에 납득한 나는 얌전히 50년을 숨어 살았다.


*


  그사이 나는 카를로스에게 훈련받으며 힘을 키웠다. 이런저런 교양도 익혀 공주 흉내를 낼 정도는 됐다.


  ...아니, 솔직히 죽을 정도로 노력했다. 이 세계가 판타지 세계인 이상, 누나를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서. 카를로스에 따르면 8계위부터는 진짜 '신'에 가깝다는 모양이다.


  신이 되면 누나를 다시 볼지도 몰라. 비록 시조 카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7계위의 벽을 넘지 못했다지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노력했다.


  노력의 결과가 바로 새로운 7계위 흡혈귀의 탄생. 나는 50년만에 반신격에 올랐다. 카를로스에 비하면 같은 계위라도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기지개를 쭉 편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카를로스가 와인 글래스에 피를 따르며 축하해줬다.


  "대단해. 아무리 내 피를 받았다지만 이 속도라니. 나도 7계위에 오를 때까진 800년이 넘게 걸렸거든."


  "축하 고마워요. 치트 능력 하나 없나, 했는데 그게 설마 흡혈귀로서의 재능일 줄은."


  "응?"


  "아뇨, 아니에요. 전에 말했죠. 저한텐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그냥 시덥잖은 얘기예요."


  전생 이야기는 20년 전쯤에 했다. 카를로스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진짜 아우라'는 어떻게 됐는지, 그런 건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는 카를로스를 꽤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를 믿고 있다.


  나와 영혼의 맹약으로 이어진 사이,


  오라버니라곤 하지만... 나한텐 이 세계에서의 '진짜 아버지'.


  그러니까 그에게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 내 모든 것을 줘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나를 제외한다면.


  카를로스와 잔을 부딪힌다. 신선한 피를 마시지만 딱히 달콤한 느낌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충족감. 참고로 야수성에 떨어진 게 아니면 죽을 때까지 피를 뽑는 일은 없다.


  쿠에르보 영지는 살 만한 곳이다. 세금과 피를 적당히 바치면 반신의 보호를 받는 영토. 심지어 카를로스는 신민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유지한다.


  이 세계의 정치가 신정 파시즘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반신의 의중에 따라서는 현대만큼 자유주의적인 곳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자유의 신이 허락한 자유에 불과하다 해도.


*


  7계위에 오른 뒤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 하자, 카를로스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그를 애칭으로 부르며 물었다.


  "칼, 진짜 가도 되는 거예요?"


  "물론. 너도 이제 혈족의 공주니까. 더이상 예전의 연약한 여자애가 아닌 걸."


  카를로스의 녹색 눈동자 아래 담긴 감정은... 역시 알기 어렵다. 나는 그가 분노하거나 무감정한 걸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죽어가는 장소에서조차 항상 웃는 사람. 너무 오래 강자로 군림했기에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나도 이제는 '공주'로서 세상 물정을 알기에 묻는다.


  "제가 남의 영토 돌아다니면 문제 생길 텐데."


  "괜찮아. 인류 제국이나 늑대인간들의 성지만 조심해. 마법사들이 굳이 널 건드리진 않을 거고. 산해경에선 환영해줄 거야. 왕녀는 나랑 친하니까. 나머지는 아마도 중립. 네가 조용히 돌아다니면 다들 묵인해주겠지."


  "그럼 그동안 숨어 산 건요?"


  "6계위까진 햇볕이라는 약점이 너무 뚜렷하니까. 정치 이전에 당장 물리적인 위해를 막기가 어려웠어. 내 직접적인 비호 아래 있는 게 안전했지."


  "네에......."


  정말, 알기 어려운 사람이다.


  국제정치학따위는 나도 모른다. 다만 이 세계의 반신들끼리 얼마나 견제가 심한지는 안다. 나를 7계위까지 보호하기 위해 카를로스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다.


  일단 쿠에르보 영지는 가장 작은 국가니까. 사실상 카를로스 일신의 초월적인 무력에 의지할 뿐인 국가. 날 지키는 건 정말 목숨을 건 도박이었겠지.


  '아우라'와 닮았을 뿐인 내게,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나?


  나는 카를로스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자신감이 좀 생긴다. 최연소 반신이 되어서야 안심할 수 있다.


  최소한, 내가 카를로스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진 않을 거다.


*


  성을 나서는 건 처음이다. 카를로스의 성은... 마치 나, 아니면 '아우라'를 지키기 위한 요새 같은 구조였으니까.


  안에서 사는 게 불편하진 않았다. 성은 넓었고 유물 레벨의 마도구도 여럿 있어 거의 호텔 수준이었다.


  유물은... 시조 카인 같은 진짜 신들이 활보하던 시절, 신화시대에 제작된 오버테크놀로지 마도구다. 전생에 종종 농담으로 이야기하던 블루투스 샤워기 같은 것들.


  있다. 진짜 있다. 그밖에도 영구 지속이 되는 승강기라거나. 불이 꺼지지 않는 랜턴이라거나.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 해도... 50년이니까. 50년이나 갇혀 사는 게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나는 시종장 라파엘을 따라 걷는다(이런 이름인데 이 세계에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없다). 그는 흡혈귀는 아니고 혈족의 축복을 받은 인간. 태양에 약한 흡혈귀들 대신 이런저런 잡무를 처리한다.


  그중에는 공주님 에스코트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고.


  "즐거워보이십니다."


  "그러게요. 맑은 공기... 라긴 어렵지만. 거리에 나오니 좋네요."


  쿠에르보에서 군주와 공주는 상징적인 존재. 나름 인기는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국가에서처럼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정체를 숨긴 채 돌아다니기로 했다. 딱히 공식적인 행차를 할 필요는 없다던가.


  바깥 풍경이나 기술 수준은 책으로 읽던 것과 비슷했다. 벨 에포크 시대 유럽을 떠올리게 하면서,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마도공학으로 대체한 문명.


  반신이 비호하는 소규모 국가인 만큼,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영지라던가. 처음 영지에 온 날에는 차분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 보니 풍경이 꽤 나쁘지 않다. 잿빛 하늘, 잿빛 성. 고요하게 잠긴 고딕 풍의 대도시. 가로등 안에서 마법의 불이 타고, 말 없는 마차와 전차가 흘러간다.


  ...꼭 동유럽 여행이라도 온 것 같네. 예쁘다.


  "아름다운 밤이지요, 공주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곁에서 라파엘이 말한다. 나는 공주다운 미소와 함께 답을 돌려준다.


  "네. 이곳 사람들은... 행복해보여요."


  "..."


  "아마 그래서 칼은 영토전쟁을 하지 않았던 거겠죠. 인류제국은 그 덩치 때문에 지옥이 되었으니까."


  "그렇습니다."


  내 말에 동의한 라파엘이 지긋이 끄덕인다. 확실히, 무력은 반신 혼자서 어떻게든 되는 세계니까.


  부유한 영세중립국이라는 선택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늦게까지 불이 밝은 커피하우스를 바라보며 묻는다.


  "라파엘? 잠시 쉬었다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라파엘은 수완 좋게도 척척 자리를 잡는다. 나는 꽤 프라이빗하고 자릿세가 비싸 보이는 방으로 안내된다. 소파와 의자와 탁자가 있는, 조용한 회의실 풍의 방.


  가구 재질도 고급인 것 같고... 정말 부유한 도시긴 하구나. 잠시 기다리다보면 커피와 디저트가 세팅된다. 


  흡혈귀의 주식은 피지만 평범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물론 오늘의 목적은 식사나 티타임이 아니고. 나는 혈마법으로 수호진 몇 개를 설치한 다음 읊조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사실 칼도 바라던 바라고요."


  "그렇습니다. 공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반신 둘이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아요."


  "..."


  "물론 명분일 뿐입니다만,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군주들에게도 균형이 깨지는 건 나쁜 변화입니다. 당분간 비교적 불안정한 남대륙 쪽, 그중에서도 반신의 직할 영토가 아닌 곳으로 주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더 문제가 될 여지는요? 어차피 통신은 마도구로 해결될 텐데, 음모를 꾸미는 중이라 오해할지도 몰라요."


  "그부분은 전하께서 해결해주실 모양입니다. 남대륙 국가들은 언제나 인류 제국의 견제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예. 대충 반신들끼리의 합의가 끝났습니다. 아우레움과 늑대왕은 반대하겠지만 별 수 없겠죠. 공주님께선 명목상 남대륙 여행을 하실 뿐이니."


  "우음. 정리하자면, 전 그냥 남대륙에 가 있기만 하는 거군요. 직할 영토는 위험할 수 있으니 피하고요. 공식적으로는 조용히, 흔적 없이 여행을 다녀오는 형태가 될 테고."


  "예. 그냥 남대륙에 계시기만 해도 신호가 될 겁니다. 명분은 좋죠. 아우레움의 패권으로부터 남대륙을 보호하기. 남대륙 쪽이니까 마탑이나 산해경, 중원은 중립을 지킬 겁니다. 아우레움 입장에서도 적대적인 반신 둘이 인류제국 근처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 체면이 살 시점까지 반대하다가 마지못하는 척 묵인하겠죠."


  어.......


  이렇게 될 거라곤 솔직히 생각 못했다.


  쿠에르보 영지 내에서라면 모를까,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진 몰랐는데.


  "저... 그럼 그냥 가서 놀아도 되는 건가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마 위장신분을 드리겠지요. 거시적인 역사에 개입하지만 않는 수준이라면... 소소한 균열을 해결하거나 미궁 공략에 참여하셔도 되겠죠."


  ...


  설마 진짜 판타지세계 여행을 할 수 있을 줄은.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카를로스와 사는 동안엔 꽤 행복했고, 삶의 의지도 많이 되찾았다.


  그러니까... 조용히 여행하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다녀야지.


  나는 역시나 사랑받고 싶다.


  그게 얼마나 위선적이든, 시혜적이든, 가식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평범하게 좋은 일을 해서, 그 보답으로라도 사랑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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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9932 와 블매걸 카드 존나 이쁘네 [3] ㄴㅅㅇ(58.122) 01.26 24 0
7139930 15일남았군 이루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5 0
7139929 명조팸 저 로코코 뽑았음 [2] 위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4 0
7139927 팔도 완성 [1] 지평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9 0
7139923 미안 우리 헤어져 [5]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8 0
7139922 여고생은 사랑을 해야해 이루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5 0
7139921 선법 생생우동 먹기의 술 [4]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5 0
7139918 교미교미교수랑 교미교미하고싶네 [2] 이루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4 0
7139914 근데 이 언니들은 대체 왜 이렇게 생각하는거임 설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60 0
7139912 남역ts의 멋짐을 모르는 멍청이들만봐 [2] ㅇㅇ(223.38) 01.26 33 1
7139911 진짜 이 미유 피규어는 투하가 올렷을듯 [10] 방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70 0
7139910 걸을때 빤쓰 다보이겠네....jpg ㅇㅇ(118.235) 01.26 32 0
7139909 명빵 마리 일루와잇! 도도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7 0
7139908 근데 그 ai로 소설쓰는건 아이디어만 얻는거야? [3] ㅋㅁ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8 0
7139905 와마 시발 이거 너무 비참하고 끔찍하네 [9]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76 0
7139904 명조 6막까지 다밀었는데 뭔가뭔가네 [2] 위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5 0
7139902 얼버기 불건전유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4 0
7139900 가톨릭 개신교 차이점중에 마리아관련해서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7 0
7139899 알바 끝났다 이제 자야지 화참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2 0
7139898 경고)))))))개<<와 섹스할 수 있는 여자만 클릭할것 [5]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55 0
7139895 나 큰결심 해버렷삼 방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7 0
7139894 바나나는 물가가 역전된듯싶네 [1] 푸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4 0
7139893 "반룡... 가슴이 많이 자랐구나." [3] 피채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5 0
7139891 일단 몸 완성 [5] 지평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5 0
7139888 디씨어플은 왜 ui가 맨날 좆대로 바뀌냐 양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4 0
7139887 김빤뿡이 울면 반룡도 슬픈ㄷ 반룡이 뜩벼리 쩌금통 털어서 주는건ㄷ 산산도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0 0
7139886 엄마랑 할머니 어디나가시는거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8 0
7139884 남녀역전Ts는 그냥 성별만바뀐거잖아... [2] 유동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8 0
7139880 얘들아 나 상혁인데. [4] 피채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6 0
7139879 짱깨겜 광고는 왤케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수렴진화하냐 [2]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8 0
7139877 아베무지카 << 얘네 체급 어느정도임?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3 0
7139874 서울 지하철 처음 타보는데 [3]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7 0
7139873 너무 일찍 깨버렸는데 이루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7 0
7139871 인싸들이 가끔 뭔데 그렇게 재미있어요? 하면서 다가오면 [4] ㅋㅁ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47 0
7139868 요새는 피싱도 가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구나 桜坂・亜衣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3 0
7139865 윤간으로 옷이 찢겨진 채 기절해 있는 마키마를 발견하면 어떻게 함? hym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9 0
7139864 이게 GIF랑 MP4 많이 업로드할수록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5 0
7139861 짭선장 빨통 뭐야 [1] 유동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3 0
7139858 크롸롸롸롸롸롸롸롸롸 [1]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6 0
7139857 이 레일 좀 신기하네 [1] 인터네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0 0
7139852 망한세계게임착각 재밌긴 하네 ide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1 0
7139849 무녀 수녀 뭐가 더 꼴림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3 0
7139848 기다려줘 쿠쿠츠마와시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3 0
7139844 무녀, 토리이, 신사, 음양사 <-- 씹덕최적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5 0
7139843 도타를 하면할수록 결국 피지컬로 귀결되는 이 현상. 양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4 0
7139841 조선시대 사람들은 반룡을 먹으면 강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니가누군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20 0
7139840 아니 귀찮다고 약 안타왔더니 이명이 소리가 안들릴정도로 심하네 설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16 0
7139838 너커서뭐될래? 라 꾸중듣는 아기반룡 [3] 소악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0 0
7139837 성 욕<<< 해소 마렵네............. [1]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6 32 0
뉴스 [왓IS] ‘강경준♥’ 장신영 자녀 공개 논란…’편스토랑’ PD “입장無” 디시트렌드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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