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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들어먹은 크리스마스 점심밥
크리스마스엔 모두들 행복해서인지 나 역시 뭔가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요리대회 참가하면서 요리 에너지를 죄다 써버린지라 그냥 좀 간소하게 대충 넘길 수 있는 건 넘겨가며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일단 까눌레부터. "대충 만든다면서 까눌레를 구워?"싶지만 이번에는 까눌레 프리믹스가 나온걸 써서 그냥 따뜻한 물에 버터 좀 넣고 섞어서 굽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숙성시킬 필요도 없이 바로 구워버리면 된다는 거. 뒤집는데 신경써야하는 팬케이크보다 난이도가 쉬워졌습니다. 식혀서 먹는 과자인데다 오븐에 고기 요리를 하고 나서 까눌레를 구우면 고기향 나는 까눌레가 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작업합니다. 물론 미드 '프렌즈'의 조이는 고기향 까눌레도 좋아하겠지만요. 레이첼이 요리책 책장을 잘못 넘기는 바람에 디저트인 트라이플에 고기를 넣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들 역겨워하는데 조이는 "글쎄,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커스터드 크림, 맛있지. 잼, 맛있지. 고기, 엄청 맛있지"라며 다 먹어치웠으니까요. 닭은 6호짜리 작은 걸로 한마리 사서 염지해둡니다. 물 1리터에 소금50그램, 설탕30그램, 월계수잎, 후추, 마늘이 전부. 냉장고를 열어본 아들내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 냉장고에 닭이 있는데.. 검은 거 혹시 닭똥이에요?"라고 묻는 바람에 한참 웃었네요. 하긴, 옛날에는 후추에 섞인 쥐똥 골라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통후추 생긴게 좀 거시기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침부터 재워서 4시간 가량 염지합니다. 더블오 밀가루에 달걀 깨넣고 파스타도 만듭니다. 반죽을 하고 비닐랩에 싸서 30분 정도 숙성시킨 후 파스타 기계에 돌려버리면 됩니다. 키친에이드 파스타 액세서리로 뽑을 수도 있는데, 변압기에 반죽기 내려서 꽂을 거 생각하면 번거로워서 그냥 수동 기계 돌리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스파게티나 링귀니 만들 때는 이렇게 손으로 돌리는 기계가 더 맛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치킨 요리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니까 치킨부터 오븐에 넣습니다. 당근은 글레이즈드 캐럿을 만들까 하다가 그냥 다른 채소들과 함께 오븐에 구워버립니다. 기름 좀 두르고 소금 후추 뿌린게 전부. 그나마 닭을 트러싱(끈으로 묶기)해서 모양 잡느라 신경을 좀 썼네요. 옛날에 로스트 치킨 만들때 등쪽을 위로 가게 구웠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입니다. 닭요리가 거의 다 되면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여 파스타를 삶아줍니다. 갓 만든 생면이라 금방 건져내고 들러붙지 않게 오일 뿌려서 일단 대기. 마트 알림문자로 크리스마스 만찬용 랍스터와 소고기를 특가 할인해서 팔길래 충동구매 했거든요. 팬에 고기를 굽고 냄비에 랍스터를 쪄냅니다. 고기 레스팅하는 동안 파스타를 휘리릭 볶아서 완성합니다. 서프 앤 터프. 랍스터는 자숙인데다 500그램짜리고, 척아이롤은 스테이크라고 불러주기엔 너무 얇아서 로스구이라고 보는게 맞을듯. 평소에 수산시장에서 1.5~2kg쯤 되는 살아있는 랍스터를 사와서 바로 잡아서 회와 찜의 중간쯤 되게 요리해 먹었던 거에 비하면 아무래도 손색은 있습니다. 그래도 양이 적어서 맛보기 용도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꼬리와 집게살보다 머리 넣고 끓이는 라면 쪽이 더 맛이 좋은건 좀 슬프네요. 닭은 작은 걸 써서 그런지 아주 잘 구워졌습니다.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닭고기가 최고지요. 성냥팔이 소녀에서처럼 먹어달라고 뒤뚱거리며 걸어오지는 않으니 직접 카빙나이프 들고 손질해야 하지만, 이렇게 고기를 썰어서 나눠주면 뭔가 서양식 명절 분위기가 납니다. 염지도 잘 돼서 가슴살까지 촉촉하고 간이 잘 배었네요. 파스타는 별다른 소스 없이 카치오 에 페페. 기름에 볶아서 소금과 후추 뿌리고 치즈만 갈아올린 파스타인데도 불가사의하게 맛있습니다. 원래는 반만 삶으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리필 요청이 들어와서 나머지도 다 삶았네요. 케이크 대신 까눌레를 쌓아서 슈가파우더를 뿌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냅니다. 맛은 뭐... 프리믹스를 써서 그런가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공장제보다는 맛있다 수준. 럼을 넣어서 구우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럴거면 아예 처음부터 직접 만들고 말지 싶네요. 아무리 석학들이 머리를 모으고 고민해도 정성들여 숙성시킨 반죽을 이길 수는 없나봅니다. 이렇게 다 모아놓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입니다. 생각해보니 아뿔사! 샐러드를 빼먹었습니다. 대방어회 주문해서 샐러드 만들어 먹을 계획이었는데 말이죠. 어차피 늦은거 깔끔하게 포기하고 차려놓은 것만 맛있게 먹기로 합니다. "“It needs only a good bottle of wine for a roast chicken to be transformed into a banquet. 로스트 치킨 한 마리를 풍성한 연회로 바꾸기 위한 것은 좋은 와인 한 병 뿐이다"라는 제럴드 애셔의 말처럼 와인도 한 잔 곁틀이니까 좋네요. 다만 크리스마스 케이크용으로 작년에 럼주에 절여둔 과일들이 냉장고에서 비명을 지릅니다. 내년에는 사이드 디쉬와 식기, 장식에도 신경써서 제대로 크리스마스 만찬을 차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물씬 드네요. - dc official App
작성자 : Nitr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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