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20 12:07:03
조회 214 추천 4 댓글 23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ece4acdf620


요즘 좀 인기 많은 책인데 걍 볼만은 한듯 그래도


*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던 책이지만, 또 그냥 좋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책이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확실히 학술적으로 진지한 책이다. 인터넷 밈 및 인터넷 환경을 다루는 연구는 꽤나 뻔하고 피상적이거나, 단순한 민족지학에 가까운 듯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에 대한 연구가 그리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지도 않되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골치 아픈 구설수만 늘어날 주제가 한가득이면서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탓이 클 테다. (예를 들어, Loss 밈의 은밀한 내부자 유머는 단순히 밈 이미지나 텍스트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준에 그 해석에 있어서도 곁가지만 살짝 건드리며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밈의 분석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이런 밈의 발생 및 수용이 매체 이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만한지를 다양하게 제시하는 쪽을 택했다.


그 방향성이 좋은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으면서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요소 위주로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골수 유저가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웃긴짤모음.jpg나 릴스/숏츠 등은 한두 번쯤 눌러보는 시대에 이 밈들은 이따금 시대를 막론하고 수면 위로 부상하곤 한다. 20년 전에 유행했던 인터넷 밈(개죽이, 심영 등)이 너무나 멀어 오히려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환경이며, 글 짤림 방지->짤방->짤이라는 흐름이나 합성필수요소의-샘플링의 '죽은 목소리 부두술'을 연상시키는-기이함을 모르는 이들이라도 인터넷이라는 신매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그 편린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구술문화의 결여로 비어 있는 맥락을 보충하기 위해 텍스트를 이미지에 추가하는 '짤'의 포맷을 논한다거나, 엽기와 병맛이라는 다소 괴상했던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온전하게' 수용되었는지를 설명한다거나, 흥미로운 주제가 상당히 많다.


반면 그럼에도 시시한 부분들이 꽤나 있다. 짤과 움짤이 어떤 뚜렷한 원작자 없이 밈으로 고정되며 인터넷 환경의 새로운 언어 역할을 하는 것-이를테면, 일종의 이모티콘처럼-을 논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해 베르그송 식의 일종의 사유화된 시간, 기존 맥락으로부터 낚아챈 상황주의적 뉘앙스를 덧붙이는 것은 대중서를 위한 이론적 억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싱하형"의 말을 실제 이소룡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애초에 그 이미지가 이소룡의 이미지라는 것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이는 그보다는 조금 더 정치적이고 소위 '혐오적' 밈, 노무현, 박원순 등의 사례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라는 식의 메타적인 빨간약 드립이야말로 그 낚아챔의 정치성, 그리고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재미를 위한 초연함을 드러내는 좋은 예시일 테니.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주의자가 한국-홍콩 합작 영화를 공산주의 프로파간다로 탈바꿈해 한국에서 원작자를 처벌한 이야기와 개구리 페페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울리는 감이 있다)


또한 개인적인 이유를 짚고 가자면, 한국 인터넷 밈의 지형도에서 너무 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가 있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한국 인터넷 밈은 사실 영미권 인터넷 밈보다는 일본 인터넷 밈과 좀 더 유사한 감이 있으며(이미지+텍스트라는 영미 밈의 일상적인 형태는 10년대 초반 이후 모습을 감췄다), 보다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밈만을 다루고 저 심층에서 그 밈이 '퇴물'이 되기 전에 밈의 몸체를 만들어냈던 엔진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다른 어느 나라의 인터넷 환경보다도 역동적이고 깊고 특이한 한국 인터넷 밈의 현장을 직시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영역을 '혐오'와 '비하'로부터 표백시키는 방식으로는 더더욱.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현대 인터넷 남초 밈에 대한 분석이 외려 4챈 같은 미국 인터넷을 다루는 앤절라 네이글 著 <인싸를 죽여라> 인용보다 얕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자로서 하는 말에 가깝고, 사실 이 영역을 보다 더 넓은 영역의 인터넷 밈을 다루는 대중서에서 굳이 더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일반적인 '일베'론 등에 적당히 편승하는 편이 좋았으리라 생각하긴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든 생각은, 아무래도 낡은 매체 철학은 인터넷이라는 최신 매체를 다루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것이리라.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여러 인쇄매체 및 영화 관련 이론은 현대 한국 인터넷 환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한국 인터넷이 미국 인터넷보다 '좀 더'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는데, 아마 한국의 집단주의적인 성향과 유서 깊은 인터넷/PC 보급률이 서로 합쳐지며 빚어진 기이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영미권에서 이제야 막 유행이 되기 시작한 shitposting/뻘글론은 한국 인터넷에서는 한참 전에 지나간 담론이며, 이미지+텍스트 포맷은 주작용이 아니라면 오히려 유치하게 보이는 판국에, 최근 들어 대두되는 저능아 밈에 대응될 만한 것은 동북아권 밖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언젠가 좀 더 성숙한 인터넷 원주민 이론가들이 나와 아이러니에서 시작해 아이러니로 끝나는, 무한한 카니발이 이어지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세상, 한국 인터넷 매체의 핵심 밈을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추천 비추천

4

고정닉 3

4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여론 선동에 잘 휘둘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12/16 - -
6964033 삶은 고통 공포 절망 고뇌 나태 무기력 무능 저지능 저재능 저학력 저노력 k0198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9 8 0
6964031 그 자존심 높은 카부토가 유일하게 인정한 남자.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9 24 0
6964030 팔척귀신 코스프레인데 [6] 김해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41 0
6964029 택치킨 보니까 혀씹은거 걱정되네 goza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13 0
6964028 나 이타치 팬 아닌데 그냥 팩트만나열함 [7] 시구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39 0
6964027 실베 좆소공장들 가동중단 남일이 아니네 ㄷ [4]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43 0
6964026 앵무새 키우면 식세기 살수밖에 없는이유 [2] 무명소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32 0
6964025 아케인리버 < 내 기준 정사는 하아, 그 코녀가? 이거임 ㅇㅇ 콥등이0.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16 0
6964024 오 양꼬치집에서 노래나오는데 아임블루 리믹스버전인가 퓌캬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14 0
6964023 내일 서코갈건데 살만한 물건 없을까요? [14] 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8 33 0
6964022 오늘 새로운 제로음료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군... [2] 폭유밀프모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7 16 0
6964021 토요일이 폭설 최대고비라는데... 망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7 18 0
6964018 닌자세계를 조작한 최종흑막이 가장 높게 평가한 인물.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7 19 0
6964017 스포) twc를 곱씹고 느낀점 [2] 짭타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7 16 0
6964016 아니 이분 모든 글에 댓글이 가득한ㄷ [4] ㅇㅇ(117.111) 19:07 31 0
6964015 묘한느낌의 키타짤 [2]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 18 0
6964014 념글에 버려야지~ [2] 우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 24 0
6964013 SCF 어덜트존 폐지됐네 [8] 린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 51 0
6964012 4차닌자대전 혼자서 하드캐리함 ㅋㅋㅋ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 32 0
6964011 아이... 앰..... [3]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 24 0
6964010 브라운더스트 겜은 안해봤어도 그림은 자주 찾아봤는데 [5] 황천볶음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 34 0
6964009 페인<< 정보공개하면 뭐 약해지는것도아님 [3] 시구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 36 0
6964008 ts 망상은 게이라고 생각해요........ [5] 검선반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 22 0
6964007 최근 도파민 별로 안나오는 노피아 ts소설 ㅇㅇㅇ(223.38) 19:05 20 0
6964006 허공이랑 세액수를 너무 자주햇나.. 불가능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 10 0
6964004 저거 나루토 중얼중얼글 ㄴㅅㅇ가 개웃기네 [10] 에포캣ⁿ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208 8
6964003 이런옷을 입고다니면서 여자라고 하면 화내는거냐 [11] 어사일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73 0
6964002 무아야 이 무친자식… [1] 퓌닉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14 0
6964001 정킷뱅크 존나 화나는게 그거임 [4] ㄴㅁ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27 0
6964000 이타치 상타치 하타치 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12 0
6963999 근데 난 민주노총에 글케 나쁜 감정이 없네 [12]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60 0
6963998 이타치가 오비토 나가토 둘다 좆텀.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22 0
6963997 반레온은 비극으로놔둬야 완성되는서사라고생각해요 [5] 투띵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31 0
6963996 twc가 진짜 이런 이야기였나? [1] 짭타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3 13 0
6963995 그래서 이타치가 육도페인 이길수 잇음? [4] 저지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3 46 0
6963994 요즘 스팀세일해도 세일같지 않네 [2] 황천볶음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3 30 0
6963993 택치킨 설암 ㄹㅇ 너무 무섭네 [2] 지름코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3 38 0
6963992 눈을 안보고 시야를 차단해도 환술 걸림 ㅋㅋㅋㅋㅋㅋㅋ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3 22 0
6963991 김메아리씨가 그리운 날 [8]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2 31 0
6963989 나루토 떡밥 도는지 알고 싱글벙글했더니 한녀석의 도배였군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2 42 0
6963988 그먼본 40년 전 판갤에서 쿠데타 모의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 [2] 먼본이(223.38) 19:01 29 0
6963987 브더2굿즈삿는데 도착을안해요 [5] 김해늑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1 21 0
6963986 노르르상도 좋아하는 [2]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1 15 0
6963984 작중 이타치에 대한 평가. [4]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1 63 0
6963983 부지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11 0
6963982 지병있는 이타치의 미친 스펙. 99.16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25 0
6963981 찌모근퇴 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11 0
6963980 면세점 인기 탑10중 4가 위스키래서 그정돈가했는데 [2] 뉴구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28 0
6963979 문재인 환불이나 미안하다 고맙다 보면 좀 일반인들이랑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29 0
6963978 와 스팀 용량 100기가 받는데 반나절 쓰게 생겼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10 0
뉴스 '신데렐라 게임' 한그루, 혜성투어 절도 사건 범인 누명 벗을 수 있을까? 디시트렌드 10:0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