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20 12:07:03
조회 268 추천 4 댓글 22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ece4acdf620


요즘 좀 인기 많은 책인데 걍 볼만은 한듯 그래도


*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던 책이지만, 또 그냥 좋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책이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확실히 학술적으로 진지한 책이다. 인터넷 밈 및 인터넷 환경을 다루는 연구는 꽤나 뻔하고 피상적이거나, 단순한 민족지학에 가까운 듯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에 대한 연구가 그리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지도 않되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골치 아픈 구설수만 늘어날 주제가 한가득이면서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탓이 클 테다. (예를 들어, Loss 밈의 은밀한 내부자 유머는 단순히 밈 이미지나 텍스트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준에 그 해석에 있어서도 곁가지만 살짝 건드리며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밈의 분석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이런 밈의 발생 및 수용이 매체 이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만한지를 다양하게 제시하는 쪽을 택했다.


그 방향성이 좋은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으면서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요소 위주로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골수 유저가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웃긴짤모음.jpg나 릴스/숏츠 등은 한두 번쯤 눌러보는 시대에 이 밈들은 이따금 시대를 막론하고 수면 위로 부상하곤 한다. 20년 전에 유행했던 인터넷 밈(개죽이, 심영 등)이 너무나 멀어 오히려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환경이며, 글 짤림 방지->짤방->짤이라는 흐름이나 합성필수요소의-샘플링의 '죽은 목소리 부두술'을 연상시키는-기이함을 모르는 이들이라도 인터넷이라는 신매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그 편린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구술문화의 결여로 비어 있는 맥락을 보충하기 위해 텍스트를 이미지에 추가하는 '짤'의 포맷을 논한다거나, 엽기와 병맛이라는 다소 괴상했던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온전하게' 수용되었는지를 설명한다거나, 흥미로운 주제가 상당히 많다.


반면 그럼에도 시시한 부분들이 꽤나 있다. 짤과 움짤이 어떤 뚜렷한 원작자 없이 밈으로 고정되며 인터넷 환경의 새로운 언어 역할을 하는 것-이를테면, 일종의 이모티콘처럼-을 논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해 베르그송 식의 일종의 사유화된 시간, 기존 맥락으로부터 낚아챈 상황주의적 뉘앙스를 덧붙이는 것은 대중서를 위한 이론적 억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싱하형"의 말을 실제 이소룡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애초에 그 이미지가 이소룡의 이미지라는 것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이는 그보다는 조금 더 정치적이고 소위 '혐오적' 밈, 노무현, 박원순 등의 사례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라는 식의 메타적인 빨간약 드립이야말로 그 낚아챔의 정치성, 그리고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재미를 위한 초연함을 드러내는 좋은 예시일 테니.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주의자가 한국-홍콩 합작 영화를 공산주의 프로파간다로 탈바꿈해 한국에서 원작자를 처벌한 이야기와 개구리 페페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울리는 감이 있다)


또한 개인적인 이유를 짚고 가자면, 한국 인터넷 밈의 지형도에서 너무 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가 있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한국 인터넷 밈은 사실 영미권 인터넷 밈보다는 일본 인터넷 밈과 좀 더 유사한 감이 있으며(이미지+텍스트라는 영미 밈의 일상적인 형태는 10년대 초반 이후 모습을 감췄다), 보다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밈만을 다루고 저 심층에서 그 밈이 '퇴물'이 되기 전에 밈의 몸체를 만들어냈던 엔진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다른 어느 나라의 인터넷 환경보다도 역동적이고 깊고 특이한 한국 인터넷 밈의 현장을 직시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영역을 '혐오'와 '비하'로부터 표백시키는 방식으로는 더더욱.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현대 인터넷 남초 밈에 대한 분석이 외려 4챈 같은 미국 인터넷을 다루는 앤절라 네이글 著 <인싸를 죽여라> 인용보다 얕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자로서 하는 말에 가깝고, 사실 이 영역을 보다 더 넓은 영역의 인터넷 밈을 다루는 대중서에서 굳이 더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일반적인 '일베'론 등에 적당히 편승하는 편이 좋았으리라 생각하긴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든 생각은, 아무래도 낡은 매체 철학은 인터넷이라는 최신 매체를 다루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것이리라.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여러 인쇄매체 및 영화 관련 이론은 현대 한국 인터넷 환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한국 인터넷이 미국 인터넷보다 '좀 더'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는데, 아마 한국의 집단주의적인 성향과 유서 깊은 인터넷/PC 보급률이 서로 합쳐지며 빚어진 기이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영미권에서 이제야 막 유행이 되기 시작한 shitposting/뻘글론은 한국 인터넷에서는 한참 전에 지나간 담론이며, 이미지+텍스트 포맷은 주작용이 아니라면 오히려 유치하게 보이는 판국에, 최근 들어 대두되는 저능아 밈에 대응될 만한 것은 동북아권 밖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언젠가 좀 더 성숙한 인터넷 원주민 이론가들이 나와 아이러니에서 시작해 아이러니로 끝나는, 무한한 카니발이 이어지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세상, 한국 인터넷 매체의 핵심 밈을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추천 비추천

4

고정닉 3

4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2024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넷 이슈는? 운영자 24/12/23 - -
6984322 찢에서 유일하게 노르르상 픽인것.man [2] 무명소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6 0
6984321 휴대용 가습기 추천좀 [5] olbers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4 0
6984320 나 MZ세대역스퍼거딸깍충인데 딱 유륜만 보여주는 중세(?)짤이 좋음 [3]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41 0
6984319 크리스미스 아리스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3 0
6984318 오늘 케이크 폐기 3개 나오는날임 [1] 아니야왜냐하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0 0
6984317 근데 여성향은 dlsite는 태그있나 물렁굴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2 0
6984316 레헤의 비밀 컬랙션 [2]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0 0
6984315 얘들아 나 엄제현인데 판갤 3일차 뉴비가 질문받습니다! [2] 엄제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7 0
6984314 외티 <<< 이녀석 어디감 [3] 외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9 0
6984313 통탕이 아들 사랑하는 장면 존나 문학적이네 [2]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60 0
6984312 쓰름포인트 [1]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3 0
6984310 투하<<이거들어가면 글 지워짐??? [2] 방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4 0
6984309 [라비헤드의 마크 건축일기]- 성교회 암퇘지 마을 [4] xX라비헤드X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3 0
6984307 히미미는 부럽다. 가만히만 있어도 아로프라짤 떠먹여주고 [4] 유로지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8 0
6984306 저지능투하푸슈 [10]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2 0
6984305 상대방이 수정되는 순간이 보이는 능력 [2] 자이니치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9 0
6984304 아...잘것같아 [1]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8 0
6984301 슈퍼셀2집이 오늘따라 너무좋네 [6] 밤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5 0
6984300 약을 3알을 먹었는데도 두통이 안 낫네 가오렌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6 0
6984299 얘들아 나 엄제현인데 소원 들어드립미다^^ [18] 엄제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7 0
6984297 와인 혼자 700 마시려니까 뒤질맛이네 [2] 망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5 0
6984298 이거는 씨발 볼수록 어지가 맞음 나는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3 0
6984295 캬 올해는 진짜 주식으로는 축복받은 해노 ㅋㅋ [1] 폭유밀프모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47 0
6984294 근데 시티드로우가 랫풀다운보다 등을 쓴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2]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2 0
6984293 유우카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1] 뭬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8 0
6984292 태어난날 역산해서 언제 사정됐는지 알아내는거 끔찍한듯..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4 0
6984291 히미미를 위한 마이고 선물.man [9] 무명소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3 1
6984290 호르몬 진짜 두렵네 [3] 썬컷0.5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8 0
6984289 판도라의아이템 = 좆병신억까증강 [1] 은하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5 0
6984288 스테이끼 먹고 샴페인 먹으니 취한다 [1]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0 0
6984287 내놓을 수준의 범죄자성향 <- 단어가 왤케웃기지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2 0
6984286 ㄹㅇ 오늘따라 쥰내 헛헛하네잉... [11] 치이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5 0
6984285 퇴근해서 집에가면 가장 먼저하는게 [8] 종말연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71 0
6984284 여친이랑섹스한거인증함 ㅇㅇ(218.144) 12.24 23 0
6984283 이거 보고 러닝 자세 좀 바꿨더니 종아리 터질거같네 [1]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26 0
6984282 캨ㅋㅋㅋㅋㅋㅋ 후라이드에는 새블리짘ㅋㅋㅋㅋㅋㅋ [4] The-secon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7 0
6984281 내가 게일 좋아하는게 타라가 북실이 닮아서 그런건가 나는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4 0
6984280 와 소아과 심지어 수입도적네뭐임 [4]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6 0
6984278 진짜 개졸린데 지금 자면 이상한 오해 받을 거 같네,,,ㅋ [3] Dan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0 0
6984277 산타복입고 춤췄다 이루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2 0
6984276 우와 4다리녀 진짜 놀랍도록 쓰레기같네... [10] 무명소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70 0
6984274 프라나 이 십련 허벅지가 [4] 투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47 1
6984272 아 의심받을까봐 가끔 판갤들아와야하네 래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7 0
6984271 블햄 가슴 개크네 [2] 우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9 0
6984270 아이는 부모의 신이라는 거 생각나네 [3] alemb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36 0
6984269 슈키슈키 다이슈키 슈키슈키 쇼키쇼키 쇼키셋테이 [1] ㄴㅅㅇ(58.234) 12.24 11 0
6984268 케무리 하쿠 <- 얼굴어려보이는데 몸은 성숙한 갭이좋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18 0
6984265 내 마망임 [2] ㅇㅇ(218.144) 12.24 22 0
6984263 아니 근데 이런게 상사병인가봐 [22] 종말연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477 11
6984262 갤에 없는 새끼들 리스트 [5] YAMAT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4 52 0
뉴스 ‘모텔 캘리포니아’ 이세영 “’혼혈’이라 외적으로 신경 많이 써” 디시트렌드 12.2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