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좋은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예, 하늘 같은 스승님에게 드리는 말이라기엔 지나치게 무례한 말이죠. 그건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당신은 좋은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세 제자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첫째 제자, 제 사형께선 스승님을 끔찍이도 여겼지요. 당신은 사형을 끔찍하게 여겼고요.
사형이 다섯 살일 때,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죠. 제가 본 당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죠.
거의 아들이나 마찬가지로 대했다고 그러더라요. 어찌나 사랑해주었는지, 사람들이 그토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인데.
그래서 당신은, 사형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는 어둠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보셨는데 못 본 척이라도 하셨습니까? 그럴 사람은 아니죠.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사형의 손속이란 참 자비가 없어서, 그의 부모를 죽인 이들을 찾아가 삼족을 멸했습니다. 그걸 들은 당신은 사형을 파문했죠.
사랑했기에, 용납할 수 없었던 거겠죠.
그 뒤로 사형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형께선 꽤나 자주 찾아왔습니다. 우리를 나름 신경써주기도 하셨죠.
차라리 용서하시지 그랬습니까.
그토록 상처를 받아 평생을 그리 괴로워 하실 거라면, 차라리 용서하시지 그랬습니까.
제가 일곱 살일 때, 당신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겠죠.
사형이 그 일을 벌이고 1년이 지난 후군요.
당신은 참 매몰찬 사람이었습니다.
사형과는 달리, 저를 오로지 제자로만 대했죠.
당신께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사형이 참으로 미웠습니다.
그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저를 사형의 대신으로 데려온 거였으면 하고 바랬을 정도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의 대신조차도 될 수 없었으니까요.
추하군요. 당신이 아니라 제가 말입니다.
눈 내리는 날이었죠. 제가 막내를 데려온 것이.
버려진 그 아이를 두고 올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네 알아서 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죠.
막내는 참 착했습니다. 똑똑했고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죠. 그래서 눈치를 좀 많이 보는 아이였고요.
불쌍한 아이입니다.
당신께서도 그리 여기실만큼.
덕분에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은 녹으셨습니까? 저에게는 그리도 차갑던 그 심장이 말입니다.
예, 저는 막내에게조차도 질투를 할 만큼 속이 좁은 남자입니다.
그 아이를 미워할 수는 없었지만요.
그래도 당신께서는 그 아이를 제자로 들일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애초에 그런 발상조차 없었겠죠.
막내가 검을 따라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 날도 혹독한 수행이었습니다. 스승님은 나에게, 내가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검술을 가르쳤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저는 참았습니다. 당신께 미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1년을 거쳐서 베운 그 궤적을, 막내가 단 한 번 보고 따라했을 때, 당신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건 책임과 의무였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니었죠. 당신은 검사였습니다.
그리고 막내에게는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재능이 있었고요.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순간 당신에게는 그 재능을 키워내야하는 의무가 생겼고요.
당신은 검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나에게도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추한 오라비는 막내를 질투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질투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우리 셋은 그러니, 퍽 괜찮은 남매였다고 생각합니다.
사형께선 가끔 찾아와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스승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우리를 동생으로 대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 역시 그를 형으로, 오라비로 대했습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였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슬퍼하고 있어서, 당신이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기에, 그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웃는 날이 늘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죠. 그래도 가끔은 저를 향해서도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그 미소를 어찌나 바랬는지 모르시겠죠. 모르셔도 됩니다. 그냥 웃어만 주셨으면 그랬을 겁니다.
막내가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결국 당신을 미워했을 테니까요.
당신의 말년에, 당신이 죽기 전 우리는 그럭저럭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죽지만 않았더라면요.
백 명이었나요. 그렇게 수를 맞춰서 보내는 것도 참 악취미입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였죠. 셋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백 명의 살수가 스승님에게로 향했다는 걸 듣고 나서는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우리 셋은 거짓말처럼 똑같이 동시에 당신에게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앞에 모습을 보이려 들지 않던 사형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당신은 백 명의 시체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어리석기는, 스승님이 결코 살수들 따위에게 당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당신에게는 마지막까지 서있었고, 당신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날 우리를 떠났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지 뭡니까.
노환이라니.
차라리 살수들에게 당해서 우리에게 일그러진 복수심이나마 심어주셨더라면.
예, 압니다. 이런 생각 결코 용서 받을 수 없겠죠.
하지만 저희는 당신을 잃었습니다.
그 빈 가슴을 어찌 채우란 말입니까?
사형은 살수를 보낸 자들을 찾아서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방식대로.
우리는 말리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그걸 바라지 않았을 것을 알면서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어찌 말릴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우리 또한 그 일에 동참하고 싶었는데. 아무 의미가 없단 걸 알아도.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혈향이 사라지는 동안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나 흘렀는데도,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추억합니다.
당신이 내게 지어준 몇 안 되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좋은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가 모든 걸 무뎌지게 하는 법이죠.
당신과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가끔 막내와 만났을 때도 당신을 입에 올리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사형께선 만나지 못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 믿었습니다.
오늘까지는요.
전쟁입니다.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요. 이 나라는 언제나 이런 짓을 하고 있었으니.
이미 이긴 전쟁이었죠. 힘의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습니다.
소년병들까지 동원해서요.
당신은 애초에 이런 전쟁에 제가 나섰다는 것을 알면 경을 치셨겠죠. 파문이라도 하셨을지도요.
예, 변명입니다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까지 죽일 정도로 제가 타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발견을 했습니다.
소녀였습니다. 10살이 채 되었을까 싶은 깡마른 몸, 더러운 넝마조각,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카락.
소년병조차 아니겠죠. 허드렛일을 하라고 데려다 놓은 고아 아니면 더러운 놈들이 데려온 새끼 창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녀가 병사 수십을 상대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습니다. 검 한 자루로 정예 군인들 수십을 상대로 단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은 채 막아내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그러나 제가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는 오로지 우리 셋이 전부였습니다.
결코, 다른 이는 없었죠.
그렇기에, 그 소녀의 손에서 보이는 당신의 검을 보고 저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우리 말고, 다른 제자를 들인 거냐고, 그렇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곧 제 어리석음을 깨달았죠. 당신이 죽은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저런 아이에게 검을 가르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다른 제자가 있었고 그에게 검을 배웠다, 그런 가정도 해봤습니다만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 소녀의 검은 결코 제자 따위에게 배울 수 있을 정도의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사실 제자조차도 할 수 없었죠.
그 강한 사형이라던가, 시대에 남은 재능을 가진 막내조차도, 결코 그런 신위를 보일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건,
당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입니다.
당신은 좋은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몇 달 전에 쓴 스승 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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