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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괜찮았던 현대미술 책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7.21 08:51:35
조회 202 추천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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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서 여기도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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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현대미술' 혹은 '현대예술'이 들어가는 책 치고 추천할 만한 책을 찾긴 쉽지 않다. 대체로, 뒤샹의 <샘>이나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등을 보여주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어쩌고 하는 이야기로 들어가며 다양한 예술 사조를 두서 없이 시대 순서로만 배열했다는 느낌이 강한 데다, 그나마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들어가면 모든 구성이 다 풀어 헤쳐지고 그냥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알아두라는 식으로 끝난다고 할까. 그런 류 책을 이미 여럿 읽어서 솔직히 말해 이 책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읽었다만은, 기분 좋게 기대를 깨주었다. 제목이 말해준 그대로, 현대미술 강의로서 정말 훌륭한 책이다. 비록 아방가르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약간은 비주류인 시각에 입각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 정도의 설득력을 갖췄다면 사실 이쪽이 주류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큰 틀에서, 현대미술은 과거로부터의 반항에서 시작한다. 동북아에서도 늘 그랬듯 특정한 시기의 과거를 계승해 현대를 칭송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현재의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현대미술이며 그 방향성은 정확히 '무엇'에 반항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옛 미술의 재현(실제의 무언가를 똑같이 그려내고자 함)에 반항하며 인상주의 화풍이 나왔고, 합리적이고 규격화된 생산 체계에 반항하며 낭만주의적 예술관이 나왔고, 그런 옛 미술을 규격에 맞춰 생산하는 아카데미에 맞서 모더니즘 예술이 탄생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미술 전시회에서 관중의 야유를 받았다는 건 미술에 조금만 관심 있으면 흔히 듣는 비화인데, 이는 엄밀히 말해 '아카데미의 관중'의 야유를 받았다는 뜻이다. 인상주의는 이후 아카데미 밖의 관중을 창출하는 데에 성공했고, 비로소 최초의 모더니즘 예술이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 강의>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부터인데, 모더니즘 예술이 재현을 포기했다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시기에 구조주의를 비롯해 근대 철학에 크나큰 영향을 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함께 생각해보자. 소쉬르가 언어를 그 지시체로부터 분리해 서로 다른 기호 사이의 관계로만 해석한 것처럼, 재현을 포기한 예술은 현실에 내린 돛을 끌어 올리고 그 스스로의 표현으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림의 의미는 오직 그 그림의 그려진 방식에서만 올 뿐이다. 인상주의에서 출발한 모더니즘은 그렇게 그림 그 자체가 되어갔으며, 자신을 담고 있는 액자를 그림으로 포함하고 (쇠라는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릴 때 캔버스 뿐 아니라 액자에까지 점을 찍었다), 자신이 그려져 있는 2차원의 표현을 강조하고 (피카소의 <다니엘-헨리 칸바일러>는 2차원을 3차원에 표현한 것이 아니라-그건 고전적인 그림이 늘 하는 것이다-3차원을 그대로 짖눌러 터져 나간 표면을 그려낸 것에 가깝다), 그림의 일반적인 구조를 그려내고 (말레비치가 탐구한 "회화의 영도"는 몬드리안에게서 세계 그 자체의 구조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완전히 자유분방한 추상표현주의가 되었다 (잭슨 폴록을 굳이 설명해야 할까?).



모더니즘은 그렇게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 현대성을 처음으로 예찬한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현대성"이란 "유행이라는 역사에서 시를 추출하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증류하는 작업"으로 구성되며, "역사적 현재"로부터 "시적 현재"를 "증류하는" 것이라 정의한 것과 달리 모더니즘의 상상력은 더 이상 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서, 모더니즘과 별개로 흐르고 있던 아방가르드의 저류를 돌이켜볼 필요가 생긴다.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에서 시작해 모더니즘에 대항했다. 순수한 예술을 지향하며 산업 사회에서 하나의 개별적인 산업이 되어버린 예술 작품이란 개념을 거부하며, 현실 정치 차원에서 매우 도발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나 다다이즘은 고고한 예술이란 개념을 비웃었으며,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물성을 강조하며 모든 예술이 모종의 유물론에 입각해 있으며 물질 없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저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이식되었으며, 당대에는 모더니즘과 혼용되기도 했던 네오 아방가르드로 거듭났다. 저자는 이를 크게 두 분류, 미니멀리즘과 팝아트로 나눠 각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모더니즘 예술에 대항했다는 것을 보여줬고 그 파괴적인 영향력은 지금도 뚜렷하다. 미니멀리즘은, 후기 모더니즘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술을 하면서도 정작 그 작품을 자기 손으로 제작하지 않았다. 예술가는 발상을 하고 그 발상의 구현을 별도의 제작자에게 맡겼고, 이는 예술의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가의 손의 후광을 공격했다. 팝, 혹은 팝아트는 예술과 유사한 결과물을 낼 순 있지만 예술로는 결코 분류되지 않는 것을 모아 예술로서 조명하며 대중 예술과 고급 예술의 구분선을 공격했다. 미니멀리즘과 팝아트가 고급 예술로 자리잡은 현재에조차 그 공격은 유효해, 모더니즘 예술은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기치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더니즘의 독립적인 기호의 체계성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런 전장에서 마지막 일격,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보다도 더 맹렬히 모더니즘 예술, 제도화된 예술을 공격했다. 구 아방가르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모더니즘 예술의 '양식'은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예술의 양식일 뿐, 그것이 아카데미의 고전 예술처럼 제도화되진 않았던 탓이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이 태어난 무렵 모더니즘 예술은 고전 예술의 자리를 물려받은 상황이었고, 순수한 예술은 순수한 상품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공격한 대상이 예술이 예술로서 창출되고, 전시되며, 판매되는 상황 그 자체였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서서히 분열되는 기호를 더욱 더 분열시키기 위해, 포스트미니멀리즘과 포스트팝은 각각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흐름을 이어받아 네오 아방가르드보다 더욱 극단적인 수단을 채용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이 금지했던 재료, 절차, 장소를 미술의 새로운 매체로" 사용했고, 포스트팝은 "미학적 경계들을 물화와 파편화 전략으로 위반"해 무엇이 미술인가에 대한 논의를 정치적 차원으로 옮겨놓았다.



그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고 80년대 후반에, 돌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 파괴할 굳건한 예술이 존재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모더니즘에 너무나 집착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 없이는 스스로를 구성할 수 없어서일수도 있다. (영화 <더 스퀘어>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솔직히 예술을 관람하는 관객 그 자체를 공격하는 예술이라는 것이 제작자의 자신감 부족 외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더 정확한 표현은, 현대미술을 둘러싼 대립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과거로부터 재구성될 수 있었듯 우리는 아직 현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일 테다. 최소한 80년대까지의 예술의 흐름은 이 책의 구성을 통해 정리될 수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설을 포함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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