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자. 한국의 호러는 형편없다. 한국에서 괴담 이야기란 참으로 창의성 없는 뻔한 현실 이야기이며, 학교/군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더 들어보지 않아도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건 한국에서 기괴한 이야기를 다루는 전통이 그리 공포에 관심이 없었고, 이후에도 대체로 사회 질서의 원통함을 그리는 한이 공포보다 훨씬 더 한국 정서에 맞기 때문일지 공포의 종류가 수입된 호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니면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이 유독 공포에 잘 맞아서 대조적으로 그리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한국 공포 영화 중 제이리 좋아하는 <기담> 역시 공포스러웠느냐 하면 사실 잘은 모르겠다. 서사의 기묘하게 꼬인 운명은 늘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어 있다. 한국 공포의 가능성은 너무 좁다.
<괴상하고 무섭고 슬픈 존재들>에서 다루는 근현대 조선/한국의 괴담 역사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순 있다.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합리적이어야 하는 단단한 체계에서 비현실적 존재가 몸둘 곳은 별로 없다. 기이한 것은 죽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사람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형태로 나타나거나, 아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현상으로서만 출현하곤 했다. 비교적 익숙한 발 없는 귀신의 형태조차 식민 치하 조선의 신문에서 일본의 괴담 형식을 수용하며 생겨난 것에 가깝다. 처녀귀신의 존재는 그 점에서 특기할 만한데, 체제 내에서 호소할 곳 없는 절대적 약자로서 등장해 한을 풀거나 골탕을 먹이거나 남을 돕는 처녀귀신은 점차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양을 띄게 되었으며, 80년대 영화에서는 스펙터클한 괴물로까지 진화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매우 예상 가능한 범주 내다)
비록 책에서는 억압 받은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유미주의적 호러, 성적 억압과 이를 표출하는 체계 밖 인물로서의 처녀귀신 등 여러 문화비평적인 설명을 이야기하지만, <괴상하고>를 읽으며 가장 분명하게 느낀 건 한국의 합리적 성향이었다. 한국의 기괴함은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의 틈새에서, 일제강점기에는 합리주의의 틈새에서, 그리고 독립 이후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과거 역사의 틈새에서 자라났으며, 그 틈새는 단지 좁을 뿐 아니라 틈새를 벗어나는 순간 체제에 포섭된다. 조선 시대의 귀신은 이치를 따지는 선비에 의해 해소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의 귀신은 곧잘 과학적 법칙의 이름으로 결말 내려지곤 했고, 독재정권 치하의 귀신은 '그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던' 일종의 신화로 남는다. 도시의 귀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한참은 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고, 그나마도 지금은 완전히 쇠퇴한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역시, 기대했던 건 찾을 수 없고 예상한 건 그대로 나온 역사적 현실이었다. 비평조차 호러가 아닌 다른 어떤 영역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타자의 자리매김 이야기가 많아 실망이 컸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긴 하니 그냥저냥 다소 지루하게 읽었다.(<천예록> 같은 야담집은 나중에 도서관에서 눈에 띄면 둘러볼 순 있지 않을까?) 호러에 한해선 확실히 과거보다는 현대에 눈을 돌리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책 초반부에 말하듯, 호러는 모던 청중을 위한 새로운 놀거리에 가까우니까. 그리고 (비단 이 책이 아니라 일반적 현대 괴담/크리피파스타 비평이 논하듯) 호러가 어쩔 수 없이 사회 일반의 바깥을 겨냥한다는 것도 어쩔 수 없을 테다. 사람은 피셔가 구분하듯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두려워하지, 비슷한 걸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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