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부가 고전부 시리즈나 초기작들에서 지속적으로 다루는 주제(전능감의 요동)가 님이 이 12인의 성난 사람들 연극에서 느끼는 부분과 크게 닿아있는데, 결국 이 이야기도 기독교적 원죄랄까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상의 많은 비극이 다 그렇듯이 그 죄의식이란 건 아무리 변명을 해도 실수나 불가항력이 아니라 오롯이 스스로의 잘못이어야만 하는 거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마냥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단 걸 부정하고 또 부정하다가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국 힘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도 일종의 클리셰 같은 거임.

물론 현실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에 의해 결과가 뒤바뀌지도 않고, 실수든 정보 부족이든 뭐든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에, 기승전 고결한 개인 vs 불가항력적인 세계로 안 좋은 건 후자에 다 몰빵하게 되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알라딘이 요술 램프의 힘 포기하는 이야기(올마이티 시리즈라던가)처럼 원형적인 이야기 구조 중 하나라 세상에 차고 넘치게 있고 결국 억지 딜레마로 죄의식 강요하는 감정과잉 신파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오조 오억명 있음.

고전부 시리즈 이야기를 더 하자면 '대죄를 짓다' 편은 한 선생이 학생을 다그치는데 알고보니 선생이 착각한 거였어서, 여주인공이 그 잘못을 지적하는데 감정과잉으로 지나치게 선생에게 화를 내고, 이 이야기를 들은 탐정역인 남주인공이 선생이 착각하게 된 이유를 추론해내면서 여주인공도 선생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실수한 거였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자기도 선생님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임.

결국 이것도 누군가를 간단히 판단하고 뭐라뭐라 규정짓는 건 '대죄를 짓는' 거라는 참으로 고결한 탐정의 죄의식을 다루는 동시에, 이 죄의식이 자신을 향할 땐 고결할지 몰라도 타인을 향하면 또 다시 감정과잉 악마화가 된다는 자기지시적인 모순을 드러내는데, 그래서인지 호노부 빠인 제 형은 이 단편이 호노부의 생각을 가장 잘 요약한다고 평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