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가 막힌 표현을 하기엔 독서량이 부족했다.

 능숙한 대응을 하기엔 인생살이가 부족했다.

 아니지. 내가 부족한 게 아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월급루팡하며 자고 있다가 눈을 떴을 때 직장 상사가 눈앞에 있고, 저 너머의 거울 속에는 전혀 모르는 여자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을 때의 대처법?

 그걸 씨발 내가 할 줄 알았으면 여기서 원장 씨다바리나 하고 있겠냐? 월천킥 차면서 사업을 했지?

 "업. 어법. 으버법."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말이라고 하는 게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초고속으로 점등하고 또한 소등됐다.

 월급루팡 하고 있던 걸 변명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조성진이 맞다고 증명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여기 숨어 들어온 도둑이나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나?

 아니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맞긴 한건가?

 내가 진짜로 여자가 되었다고?

 손으로 내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가느면서도 부드러운 몸뚱아리는 지금 나에게 벌어진 상황만큼이나 현실성이 없었다.

 ......후.

 그래.

 진정하자.

 쿨해져라 조에바라 세이이치.

 나는 꼴랑 나이 20쳐먹은 사회초년생이 아니다.

 무려 사무 경력직으로 이 병원으로 이직해 온, 어느덧 월급 받아먹고 살아온 세월만 해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이다.

 스무살 때의 나라면, 급작스럽게 변한 내 신체의 상황과 눈앞의 위기에 어쩔 줄을 모른 채, 눈앞의 상대가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그 배에 가열찬 펀치를 날리고 무작정 도주를 시작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베테랑답게, 이 황당무계한 상황 속에서도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 정리하자.

 남자가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여자가 되어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것은 절대적 명제다.

 그렇다면 여자가 되어있는 지금의 내 상황은?

 당연히 꿈이다.

 내 앞에 있는 것은? 나의 상사. 고용주. 더 보스.

 꿈 속에서 고용주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봐요. 당신 진짜 아무 말도 안하면 경찰에 신고......"

 "뚜랴아앗!!!!!!!!"

 뻐억!!

 처음으로 후려친 상사의 배는, 생각한 것 보다는 단단하고 둔탁한 감촉이었다.

 "꺼..끄억...!"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나의 BOSS.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면 당연히 뒤탈도 없겠지! 죽어라! 노동착취범!!!"

 쓰러진 중년의 배에 다시 한 번 작렬하는 싸커킥!

 "이건 오늘 받아야 했던 내 휴일수당의 몫! 이건 회식 때 병신같은 유우머에 어울려주며 작살나야 했던 내 간과 위장의 몫! 이건 내 사랑스러운 미니어처들의 몫!"

 자비심없는 폭력이 중년 남성을 덮친다!

 "죽어라아아아!!"

 이 세상 모든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원한을 담아.

 나는 서류뭉치로 원장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4.

 좆된 것 같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후 5시 22분.

 나는 경찰서에 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