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문의 시작

자라투가 '운명은 점술가 경로의 주요 특성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난 이말을 듣고 되게 큰 의문을 느꼈음

200화의 '우리가 팅겐을 구했다' 에피소드까지 점술가 경로는 완전히 운명에 관한 경로인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임

그도 그럴게 서열 9 점술가의 연기 수칙은 '운명을 엿보되, 경외심을 유지하라'

서열 8 어릿광대의 연기 수칙은 '운명을 알 수 있더라도 모든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이고,

팅겐 에피소드의 메인 주제 자체가 누군가가 설계한 거대한 운명 속에 휩쓸린 주인공과, 그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임.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진짜로 운명이 주요 특성인 경로인 '괴물 경로'가 소개되면서 해소되나 싶은데,

정작 윌 오셉틴 에피소드에서 괴물 경로가 보여주는 능력은 '행운이 좋아진다'와 '죽으면 전생한다' 이거 뿐임.

그걸보고 아니 중국에서는 운명과 행운이 같은 뜻인가? 아니면 번역이 잘못됐나? 그리고 전생이랑 운명은 무슨 관계야? 싶어서 의문은 더 증폭되기만 하고,

물론 팅겐 에피소드 이후에는 점술가 경로에서 운명이랑은 상관없는 능력들만 생기기 때문에

대충 그냥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고 넘어가려다가도

후반부 승급 의식에 '운명을 속여라' 라는 의식이 필요한 거 보고나서는

아니 운명이 주요 특성 맞잖아? 라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올 정도였음

그리고 소설을 다 보고 나서도 그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음.

아니 점술가 경로랑 운명이랑 엄청 상관 많은거같은데? 오히려 괴물 경로는 그냥 행운원툴아니야? 뭔 거창하게 운명이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도 안옴

그래서 두 경로가 '운명'을 대하는 방법을 비교하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음

2. 괴물 경로에서 운명이란?

그래서 '진짜 운명 경로'의 능력을 먼저 살펴보면서 힌트를 얻으려했음

작중에서 '괴물'경로의 능력자들이 나온걸 정리해보면

서열 9 : 다른 경로는 보지 못하는 특별한 것, 혹은 미래의 사건을 봄

서열 7 : 자기의 운이 좋아짐

서열 4 : 남의 운을 조종할 수 있음

서열 1 : 윤회전생이 가능함, 사건을 재시작해서 초기화할수있음, 운명의 반복 속에 사람을 가둘 수 있음

인데 능력이 통일성이 없고 굉장히 중구난방하다는걸 알수있음

서열 7,4만 보면 역시 '운명'이라는건 행운을 의미하는 건가??싶지만

서열 9,1의 능력은 단순 행운이랑은 별 상관없는 특이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이 모든 능력을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무리 해도 안떠오르다가

괴물 경로의 유일성인 '확률 주사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음

확률 주사위는 1. 주변 사람에게 행운이나 불운을 랜덤하게 부여함

2. 봉인이 풀린채로 계속 놔두면 전 세계를 확률의 집합으로 만들어버림

이라는 두가지 능력이 묘사됐는데

일단 주사위의 이름에서 이 운명 경로의 '행운'관련 능력의 본질은 '확률을 조작하는 것'이라는걸 알수있음

즉 운이 좋아진다->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을 높인다

운이 나빠진다->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을 높인다

라는거임

그리고 이건 한두 사람의 행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봉인 안하고 놔두면 '전 세계'의 모든 사건을 확률로서 나타내고 그 확률을 조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임

그리고 이 설명은 '현실은 고정된 게 아니라 모든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존재한다'라는 양자역학의 설명과 일치함

즉, 괴물 경로에서 바라보는 운명이란 '모든 사건이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이고,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중에 '내가 원하는 사건의 확률을 올린다'라는게 운명 조작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수있음

그런데 이러면 여전히 '윤회전생'이나 '운명의 반복' '사건의 초기화'같은 능력은 이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음

여기서 등장하는게 '다세계 해석'임

물론 다들 판타지 많이 봐서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간단히 예를 들자면

내가 동전을 떨어뜨렸고, 그게 앞면인걸 관찰했다고 했을떄

그 순간 '동전이 앞면인 세계'와 '동전이 뒷면인 세계'둘로 세계가 분리된다는게 다세계 해석이고,

반대로 '앞면인 세계만 남고, 뒷면인 세계는 사라진다'라는게 기존의 양자역학적 해석임

(물리적으로 엄밀한 설명은 아니고, 판타지에서 이렇게 사용된다는거)

괴물 경로가 이 '다세계 해석'을 채택했다고 하면, 나머지 능력 또한 설명이 가능함

즉 괴물 경로에서 바라보는 운명이란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로 쪼개져있고, 괴물 경로의 능력은 '내가 원하는 사건이 일어난 세계로 가는 것'이라는거임

내가 '동전이 뒷면인 사건'을 원한다면, 뒷면인 세계로 갈 확률을 올려서 그 세계로 진입하고, 그 결과 나는 원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운이 좋아진다'라는거임

따라서 단순히 '운이 좋아진다, 나빠진다'라는 능력을 거창하게 '운명을 조작한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됨

여기서 '아니 그러면 서열 7따리가 세계선 이동같은 거대한 능력을 막 쓴다고??얘네가 뭔데??'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나는 괴물 경로가 그래도 될만큼 특별한 경로라고 생각함

그 이유는 나머지 경로는 한 세피로트에 최소 2개 이상의 경로를 포함하는데

괴물 경로만 '한 경로가 세피로트 하나'라는거임

그 자체가 괴물 경로의 본질이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인접 경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른 경로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줌

이야기가 좀 샜는데, 아무튼 괴물 경로의 능력은 '내가 원하는 세계선으로 진입한다'라고 생각됨

서열 9가 본다는 특별한 것 또한 이 '세계선'을 보는것이라고 생각되고

그런데 '윤회전생'과 '운명의 재시작'은 어떻게 쓰는건데?라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여기서부터는 논리를 좀 비약하도록 하겠음(뇌피셜 ㅈㅅ)

나는 괴물 경로의 세피로트인 '빛의 열쇠'란, 이미 한 운명(세계선)의 끝까지 도달한 사람, 혹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왜냐하면, 서열 0의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표현과, 서열 1의 '수은의 뱀'이라는 표현 모두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다'라는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임

(수은의 뱀은 머리가 꼬리를 물고있는 우로보로스를 뜻함)

최초의 빛의 열쇠가 하나의 세계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했기 때문에, 그 순간 다른 모든 세계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거나,

혹은 다시 '선택하지 않은 운명'으로 재시작해서 '모든 세계선을 반복해서 체험'했기 때문에

다른 세계선을 이미 전부 알고있는 상태라는거임

그리고 괴물 경로의 초월자들은 마법약을 통해 그 능력을 일부만 얻은 상태여서

서열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있는 세계선에서 가까운 세계선으로 이동'하는 능력을 얻게된거임

그리고 이건 사실 '이동'이 아니라

세계선을 끝까지 체험한 후 다시 시작부터 반복한 다음, 다른 선택지를 선택해 다른 세계선으로 분기하는 것일 가능성이 큼

말로하니까 되게 복잡한데

분기가 이렇게 되있고, 내가 지금 O에 서있다고 했을때

가만히 있으면 A로 진행하지만, 괴물 경로의 경우

'A에 도착할때까지 전부 진행했다치고'

시작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O까지 온다음

B로 진입할수있는거임

그리고 그 '했다치고'는 괴물경로의 세피로트가 이미 그 세계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했기때문에 본인은 그 체험을 인식하지 않고, 그냥 세계선이 이동했다는 결과만 얻는거임

혹은 세피로트가 그 시점에서 '운명을 대신 반복해주기 때문에' 괴물 경로 초월자 본인은 인식을 못하는걸수도있음

(100% 뇌피셜이고 납득이 안된다면 ㅈㅅ함)

아무튼 이런 설정을 받아들인다면

1.윌 오셉틴이 의사 아들로 전생하는 '윤회전생'은

윌 오셉틴이라는 사람의 운명의 끝까지 체험한 후 시작점으로 되돌아가서, 의사 아들로 전생하는 세계선으로 진입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고

2.우로보로스가 사용한 '운명의 반복' 능력 또한 이런 반복 과정을 남에게 직접 체험시킴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고,

3.윌 오셉틴이 클레인을 돕기 위해 사용한 '사건의 재시작'또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능력임

그리고 내가 이 설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게 '괴물 경로의 서열 0 승급 의식'또한 설명해주기 때문임

운명의 수레바퀴의 진신 승급 의식은 22개 경로중 유일하게 본인이 아무런 개입을 할 수 없는 순수 운빨 의식임

그냥 유일성과 초월성을 다 모은다음에 '어떤 타이밍이 되면' 할수있고 아니면 영원히 못하는 굉장히 이상한 조건을 달고 있는데

나는 그 의식또한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함

1) 최초의 세피로트가 한 세계선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모두 체험하고, 빛의 열쇠 능력을 얻었음.

2) 그리고 그 순간 '나머지 세계선'은 자동적으로 세피로트에 도달하지 못하는 오답이 됨

3) 그러므로 1번에서 묘사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진행이 가능한 세계선을 '정답 세계선'이라고 가정함

4) 수은의 뱀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기가 '정답 세계선'에 있는지는 모름

5) 다만 진신 승급 조건이 채워지면(유일성을 갖고 있으면) 어렴풋이 자신이 정답 세계선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타이밍을 주는것으로 보임

6) 수은의 뱀들의 목적은 이렇게 세계선을 계속 건너다니면서 정답 세계선을 찾고, 그 순간 승급 의식을 시도하는 거임

이런 방식으로 승급이 이뤄진다면, 윌 오셉틴이 묘사한 승급 의식에 아주 근접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고, 괴물 경로의 모든 능력 또한 설명이 가능하게됨

3. 점술가 경로에서 운명이란?

어쩌다보니 괴물 경로에 대한 설명만 한참을 했는데... 이야기가 딴길로 많이 샜지만 어쨌든 내 원래 목적은 그게 아니라

'점술가 경로는 괴물 경로의 반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는거임

작가 전작인 '아르카나 마법 도서관' 본사람은 알겠지만

커틀피쉬라는 작가는 인류 과학사에 대한 사랑이 아주 대단하고

아르카나 마법 도서관에서는 독자들에게 강제로 고전역학->양자역학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먹인 전력이 있음...

즉 커틀피쉬는 작품에 이런 내용 넣는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점술가 경로에서 보는 운명이란 반대로 양자 역학의 반대인 '고전역학적 운명론'

즉 모든 운명이 이미 결정되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됨.

(고전역학이 왜 결정론적 세계관인지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생략함)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작중에 여러가지 힌트가 보이기 시작함

우선 서열 5 '인형술사'의 능력부터가 아주 노골적인 암시임

인형술사의 시각에서는 모든 사람은 '어떤 선에 조종되는 꼭두각시일 뿐'이라는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선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리고 서열 1 '신비의 시종'의 의식에서

점술가는 수많은 꼭두각시를 살아있는 것처럼 조종해서 운명의 궤적을 설계하고, 이를 통해 영계에 대응하는 구역을 만들어야 하는데

즉 점술가 경로에서 생각하는 '운명'이란 '수많은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것'임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개인의 능력으로는 이 운명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

내가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그 행동은 사실 살아온 환경, 주변 사람의 행동 등에 영향을 받고, 따라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상호작용에 의해서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일 뿐 자유의지란 없고, 정해진 운명을 걸어나갈 뿐인 꼭두각시일 뿐이라는거임

즉 서열 9인 '점술가'의 연기 수칙인 '운명을 볼 수 있지만, 운명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하라'

서열 8인 '어릿광대'의 연기 수칙인 '운명을 알 수 있더라도 그걸 바꿀수는 없으니, 웃는 얼굴로 고통과 슬픔을 감춰라'

에서처럼 저등급에서 '운명을 볼 수 있어도 바꿀수는 없다'라는 문장이 계속 나오는것 또한 이런 세계관 때문임

그런데 바꿀 수 없다면 도대체 운명을 보는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거임? 에 대한 대답이 서열 7에서 나옴

서열 7인 '마술사'의 연기 수칙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라'인데,

여기서 점술가 경로의 본질이 나타남

즉 '사람은 바꿀 수 없는 잔혹한 운명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지만, 운명을 바꾸려는 불가능한 도전을 계속하라'라는게 점술가 경로의 본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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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괴물 경로와 비교하자면

괴물 경로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에서 원하는 확률을 높여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능력'을 과학에서는 '맥스웰의 악마'라고 표현함

반대로 점술가 경로에서 '모든 것을 관측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이 전부 정해진 상태'를 만들수 있는 능력을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표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