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잘못 가면, 그냥 또 하나의 근본주의로 빠질 우려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광신도만 근본주의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고

무신론의 근본주의 역시 종교의 문화적인 요소를 훼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함... 

예컨대, 원래 원시불교에는 당연히 중국 전통인 염라대왕 같은 건 없었고

지장보살이 죽은 지 49일만에 내리는 저승 재판에서 변호사 역을 하고... 뭐 이런 것도 없었음.

부처님은 그런 질문에 대해 '병신아 니는 독화살 맞았는데 독화살 색깔 관찰이나 하고 있겠냐???' 라고 씹었음.

근데 만약 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내가 '아 독화살 색깔이구나!' 하고 ㅇㅋ 납득하겠냐구.

결국 우리 할무니 서방극락정토 나시기를 바랄 텐데

그러면 평생 '아 할머니 좋은 곳 가셨으려나' 하고 걱정하고 있느니

그냥 돌아가신 지 49일째에 날 잡아서 법회 한 번 하고

그걸로 '나는 내 할 수 있는 최선 다 했다'라고 위안하는 게 낫잖음.

막말로 내가 사람이 죽어서 어케 되는지 뭘 알 수 있겠냐.

아무것도 모르니까, 결국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 하는 거지 뭐.

그게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내가 믿는 거니까, 믿고 싶어하는 거니까 믿는 거라고.

악의 문제도 비슷하게

이것도 내가 믿고 싶은 사람은, '아, 선과 악이라는 게 인간의 눈에서 본 단견이구나,

닥터 스트레인지의 눈에는 스타로드가 타노스 싸다구를 때린 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바일 수 있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함.

구체적으로는, '악의 문제가 세상에 실존하는 것은, 우리가 선악에 착취되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관점.

물론 이걸 납득해 줘야 할 이유는 없음,

나도 솔직히 현대인에게 이게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하지만 이건 말하고 싶은 게, 신앙은 결국 실천의 문제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한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내가 실천할 수 없으면 그건 그냥 죽은 종교일 뿐이라는 거.

현실의 악에 대한 설명보다, 그 악을 내가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내 안에 샘솟냐의 문제고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어떤 설명들도, 그저 내가 죽음을 참고 견디는 실천을 위한 방편일 뿐임.

여기에 대해서 '그건 원래 그 종교에서는 없었고 이건 말이 안 되고' 해 봤자

그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왜 저러지' 같은 느낌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