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확실하게 기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정도로 구체적인, 심지어 인간의 십진법 자릿수에 맞춘 기준에 따라서

크툴루가 부활하는 거라면

이 크툴루 부활 트리거는 인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 즉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범주를 포함해서

작동하는 형태의 트리거일 거고,

만약 충분한 연구가 이어진다면,

아마 인류는 코스피에 대한 많은 자료조사를 통해서

'코스피 3500선과 크툴루 부활의 인과관계에 대한 사회경제문화적 고찰' 같은 책도 낼 수 있을 거고

아주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이러저러한 과정에 의해서 크툴루는 부활할 확률이 매우 높다'

같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

자, 그러면???

불행히도 이재명이 당선되지 않았고, 그래서 코스피 3500선이 가즈아에 힘입어 실제로 돌파해 버렸으며

그래서 깨어난 크툴루가 청와대와 국회의사당과 여의도증권거래소를 때려부수고 있는 게

실시간 중계되고 있고,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전부 산치핀치 하고 있는 도중에

"와, 우리 이론이 증명되었다! 과학적 방법론 만세! 박사 논문 통과 만만세!"

하고 기뻐하고 있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라는 거,

상상할 수 있음???

내가 '코스피 3500선을 넘겨서 크툴루가 부활하는 일군의 과정' 개개에 대해서

아주 합리적이고 완벽한 이해를 했다고 해서,

'그래서 진짜로 크툴루가 부활해 혼파망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완벽히 납득할 수 있겠냐고.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두려운 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라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서 내가 느낀 게 뭐냐면,

사실 러브크래프트식 '형연할 수 없는 불길한 ~~~' 같은 묘사는,

그 대상에 대해 매우 정확한 정보 하나를 제공해준다는 거였음,

'그것은 인간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개념들의 집합 A의 한 원소이다.'

그거는 분명 나한테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야, 뭔가 설명하기는 힘든데.

근데 내가 만약, 그 모든 개별적인 구성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더라도,

그 총합에 대해서는 전혀 납득 불가능한 어떠한 현상이 있다면

그건 내가 대체 어디서부터 이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게 되어버리고

그 이해와 불가해가 전도되어버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완벽한 미지에 대한 공포가 된다... 는 식의 이론임.

먼가 설명이 쓸데없이 장황한데

이건 더 쓸데없이 장황한 소설을 쓰다가 쓰는 거라서 그럼...

이거 글 좀 떡밥 돌고 지우는 게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