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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윈대]1만시간을 채우다(2)

멍애(외교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19 10: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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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 포기하기는.”

나는 텅 빈 지하 연습실을 보며 홀로 기타를 쥐었다. 줄이 손에 휙휙 감기는 느낌이다.

휴대폰을 꺼내자, 그 위에는 9994 : 39 : 07이라는 숫자가 나타나 있다.

이제 이 빌어먹을 고물 아이폰도 버릴 때가 됐어.”

이 아이폰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이 스톱워치 때문이다.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허나, 좀 커다란 일이 있었으니 나는 숫자 옆에 메모를 하나 적는다.

9994 : 39 : 07

-나 혼자 남음.

메모는 그 위로도 듬성듬성 있다. 초기에는 오늘은 처음으로 비틀즈를 완곡함.’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음.’ 같은 것도 적어놨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열심히 적지는 않았다. 가장 최근에 적은 건... 700시간 전의 일이다.

9221시간.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음.

대체 뭐 때문에 피웠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예술인이라는 게 그렇다. 하루하루만 보고 사는 이들에게 과거를 기억하기란 힘들다. 그걸 알았으면 좀 열심히 적어놓지 그랬니, 과거의 나야? 그 다음은 고작 20시간 전이다.

9201시간.

-솜사탕을 팔던 어머니가 쓰러졌음.

, 맞다. 그제서야 기억이 나네.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팔던 어머니가 픽 하고 쓰러졌다. 뭐랬더라, 저혈압이라고 했나.

설탕을 백 배로 부풀려 솜사탕을 만들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두 부모가 찾아온 것이 기억난다. 꿈과 희망을 위해 간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끔찍한 기억만을 갖고 나왔다며 우리에게 배상금을 요구했다.

말도 안 되는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기타를 휘둘러 그들을 내쫒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부터 두 배는 열심히 할게요.

800시간밖에 안 남았거든요.

8704시간.

-오랜만에 작업실에 옴.

나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손 끝에 느껴지는 피부가 살짝 밋밋하다. 그러니까, 이건 아버지가 던진 전기파리채에 머리를 부딪혀 다친 거다. ,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버지 손에 잡히는 것이 전기파리채가 아니라 파리지옥 화분처럼 무거운 것이었다면 나는 분명 죽었을 테니까.

살아있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 아닌가.

8689시간.

-군대를 전역함.

, 맞다. 이것 때문에 맞았다. 군대를 전역했는데 왜 후드려 맞았냐, 물어본다면... 내 전역이 예정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싶다.

아버지가 한 말이 몇 가지 기억난다. ‘네가 아프다고? 난 너를 20년 넘게 봤다.’ ‘네가 부끄럽다.’ ‘남한테 폐는 끼치지 말고 살라 했잖니.’같은 것들이었다.

괜히 기분만 잡쳤네.”

나는 다시 기타를 쥐었다. 5시간 넘게 연습을 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힘을 내도 되는 날이다.

-1만 시간을 채우면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대로 스톱워치를 켰다.

9994 : 39 : 07

9994 : 39 : 08

9994 : 39 : 09

9994 : 39 : 10

순식간에 초가 흘러가고, 나는 이게 40분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9994 : 40 : 00.

정확하게 멈추는 데 성공했다. 지금 시간은 238.

240분까지 기다린다.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맞는 숫자를 보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240분이 되자마자 다시 버튼을 눌렀다.


세 시.

9995 : 00 : 00

오늘의 첫 곡으로는 뭐가 좋을까, 악보를 뒤지다가 <gift>라는 노래가 눈에 들어온다.

꾸준히 하는 것도 재능입니다.”

나는 15년 전, 세일즈맨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1만 시간을 쌓으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는 것도 믿었다.


다섯 시.

9997 : 00 : 00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했다.


여섯 시.

9998 : 00 : 00

두 시간 남은 시점. 나는 슬슬 배가 고프다 싶어 음식을 주문했다. 짜장면? 짬뽕? 죄다 구리다. 오늘 같은 날은 좀 괜찮은 게 좋겠다 싶어 초밥으로 결정했다.


일곱 시.

9999 : 00 : 02

초밥이 와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다시 기타를 잡았다.

악보보단 시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9999 : 59 : 50.

나는 아폴로 우주비행사와 같은 심정이 된다.

어릴 때처럼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곡도 바꿨다.

Europe<Final Countdown>.

***

그 순간, 나는 기타를 사던 어린 소년이 된다.

-이것만 있으면 연습이 잘 돼요.

눈앞에 수염 덥수룩한 개자식이 건네는, 하자 있는 기타를 받으며 생각한다.

10년 후의 나는 대단한 뮤지션이 되어 있지 않을까?

허나,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1만 시간입니다, 1만 시간!

개자식의 얼굴은 어릴 때 보았던 세일즈맨의 얼굴로 바뀌어 있다.

아니, 앤더맨이지.

누군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기둥을 슬쩍 빼 가는, 게임 속의 앤더맨.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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