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인생에서 전문가 집단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꽤 정확히 사용했으면서도

다 끝나고 나서 '이 용어가 정확히 무슨 의미지?' 하고 구글에 검색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이 정도로 안 들기는 또 처음이다.

뭔가, 이런 전문용어는 뜻풀이 같은 거 없이 걍 툭 하고 던져놓는 게 더 멋있다는 걸 작가가 몰랐던 걸까.

작가가 나름 해커들의 세계를 잘 묘사하려 애썼음에도, 문학적 기교도 부려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해커 집단들이 더 리얼해 보이지도, 더 멋있어 보이지도 않아.

인살에 나오는 해킹 묘사가 더 전문적으로 보일 지경.

다 때려치우고 중간에 파이썬 교양강의 오리엔테이션은 대체 뭔데???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또 썸머 워즈를 따라하고 있어. 장난치냐???

2.

마리얼레트리 시리즈 전체가 좀 그런 감각이 있다만, 이 시리즈는 악역들 대우가 너무 형편없다.

마리아를 인방에서 공개처형하는 게 빌런의 목표라는데... 이거 솔직히 동기는 그럴싸했거든???

근데 이 동기가 왜 '그러니까 인방에서 공개처형해야지 ㅎ'로 이어지는 게 이해가 안 감.

위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솔직히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근데 악역의 심리나 사고방식을 왕창 뭉개놓고 걍 말이 되니까 한다 식으로 풀어버리니까

솔직히... 오글거려. 말이 안 되서 오글거리는 거 이상으로 말이 되는 부분이 오글거려.

이 연장선상으로, 솔직히 이 고려연방이라는 놈들 종북 컨셉으로 어그로만 오지게 끌었지

빌런 집단으로 뭐 한 게 있냐???
걍 체셔라는 놈이 매 권 마지막에 나와서 쪼개는 게 하는 일의 전부야!!!

1권의 고려연방은 주인공에게 심적으로 위협이 되다보니 악역으로 잘 구체화가 됐었는데

이후에는 솔직히 사족 이상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기분이다 이거.

3.

이거 말고도 이 책이 재미없는 이유가 엄청나게 많지만...

근데 따지고 보니까 이게 근본적인 원인인 거 같다.

'여자들만 있는 군함에 남주가 타서 밥을 먹는다'는 내용 자체가, 

장편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흥미롭지가 않다.

군함? 좋지, 애초에 이 시리즈를 알라딘 중고서점서 한 권씩 사모은 이유가 이거에 꽂혀서였으니까.

근데 정작 3권을 넘어가니까 밀리터리 소재가 슬슬 고갈이야.

솔직히 1권의 대잠전, 2권의 상륙 후 시가전, 3권의 쿠데타 개입은 밀리터리적으로 흥미로웠음.

근데 지금 4권 내용은, 이게 해군이랑 대체 뭔 상관이 있냐. 

솔직히 금서목록에 나와야 훨씬 더 그럴싸한 플롯이잖아 이거.

밥? 솔직히 이건 싫다. 마레 1권과 비슷한 시절, 구루메물 붐이 너무 좆같이, 좆같이 붐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1권을 읽고 각혈했던 이세계 요리를 위한 레시피라는 것도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래도 마레 1권이 구루메물로 차별화가 될 수 있었던 건, '명예보다는 밥'이라는 

아나키즘적 주제의식이 나름 잘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완성되어 버렸다. 그게 문제다.

이 이후로는 매 권마다 작가가 밥 타령을 플롯에 끼워넣기 위해서 매우 번거로운 빌드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3권은 솔직히 잘 끼워넣었던 걸로 기억함. 근데 4권은 요리 내용이... 완전히 분량 낭비에 방해다.

마리아 서사 빌드업을 쌓기에도 부족한데, 정보가 새고 있다는 심각한 상황인데

왜 민트차 가지고 개그를 치고 자빠졌냐고 이거!!! 걍 요리 이야기 해야 해서 한 수준이잖아!!!

하렘? 하렘은 좋다, 근데 지금 주인공 처한 상황이 하렘이던가?

여초직장에서 왕따당하는 남자 직원 아냐 그냥??? 근데 그 직장이 군대인???

얘가 4권까지 확정플래그 꽂은 애가 둘뿐인데 이게 하렘이야??? 요즘은 신부도 5등분되서 나와!!!

마지막이 가장 큰 문제다. 군함에서 하렘 만드는 이야기 자체가, 지금 보면 넌센스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1) 직장이다. 직장에서 여캐랑 지지고볶는 건 썸 타는 게 아니라, 걍 일이 ㅈ같은거다.

천하의 미소녀라도 일이 ㅈ같을 때 등장하면 ㅈ같을 뿐이다. 아니 심지어 여기는 직장이 군대야 야발.

2) 죄다 여캐 직장동료다 보니까 개그 패턴이 원패턴이다.

걍 주인공이 남자라는 걸 가지고 성희롱. 주인공이 변태로 몰림. 끝.

이 패턴을 이해인카밀라미나미루나 마리아까지 다 쓴다. 진짜로.

작가가 개그를 잘 쓰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근데 라노베 한 권에 나오는 개그가 다 같은 패턴이면 코난 오브라이언을 델고 와도 못 웃길 거야!!!!

3) 남캐라던지, 연애대상이 아닌 할머니나 어린애 같은 변주가 전혀 없다보니까,

그리고 레즈비언이라던지 취미로 뭉친 친구들이라던지 이런 것도 없으니까,

여캐들 사이에 인간관계가 쌓인 게 심각하게 빈약함.

그래서 어떤 여캐가 다른 여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딱 둘뿐임. 여기 없는 누구 실드 칠 때랑 욕할 때.

거 참 군생활 고증 오지게 잘 해 놨네.

하렘물의 재미 절반은 다양한 여캐들의 화학반응을 구경하는 거라고 갠적으로 생각함.

밀리터리물의 재미는 서로 지지고볶고 싸우는 놈들이 전우로 같이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근데 이 작품은 '전투원 전원이 가임기 여성인 배에 주인공을 넣어야지~' 해 버린 결과 

여캐들의 개성들은 있을지 몰라도, 그거 가지고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게 너무 1차원적이다.

'이해인 조리장 무서워~' '함장 일해~' '엘레나 무서워~'... 너무하잖아 이거.

그래서 좀 미친 소리 같겠지만, 마레는 배에 남캐가 한둘쯤 타거나 했으면

차라리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개그 원패턴이나 리액션 원패턴은 나아졌을 테니까.

그래서 대체 여기서 어떻게 발전하면 블루아카이브가 된다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음...

블아 안 해보긴 했는데, 개그나 여캐들 사이의 케미도 나름 고평가받는 물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