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는 바보입니다_txt
나는 김우연, 세상 남자들이 우러러 보는 가장 꽃 다운 나이, 낭랑 18살의 소녀지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점만 가득한 여자 아이지요! 결점이라곤 딱 하나.
꼴 보기도 싫은 오빠 새끼가 있다는 것.
세상 모든 남매들은 오빠를 싫어해! 꼴 보기도 싫어! 제발 집 좀 나갔으면 좋겠어! 맨날 집에 오면 뒹굴 거리고. 내가 뭐 사오면 쳐 먹기만 하고!
다른 오빠들은 맨날 여동생한테 립스틱이고 화장품이고 다 사주는데
우리 오빠는 그런게 전혀 없어!
오빠, 부탁인데...
나도 좀 봐달란 말야.
싱그러운 햇살과 산뜻한 봄의 잔향이 남아있는 초 여름.
계절을 뒤덮은 벚꽃잎은 다 저물었지만, 해바라기는 아직 해를 바라지 않는 애매한 시간.
우연과 친구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 대화 주제는 뭐니 뭐니 해도 오빠 욕!
"아 진짜, 우리 오빠 짜증나 죽겠어. 맨날 돼지처럼 내 간식 다 뺏어먹기나 하고."
"언니도 비슷해..."
우연은 친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도 언니랑은 얘기가 통하잖아. 남자들이랑, 여자들은. 대화가 안 통한다구. 우리가 뭐 연년생도 아니고, 나이차도 많이 나는데 나한텐 양보 하나 안 해준다니까?"
"그래 그래... 많이 들었어..."
친구의 반응은 당연했다. 우연은 늘 오빠 욕만 했다. 항상 오빠를 까지 않으면 이빨이 길어지는 비버 같았다. 친구는 우연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공감 능력을 많이 가졌던 그녀가 이젠 지칠 정도로. 그녀는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다가 앞을 보았다.
"야 저기 봐. 니 오빠다."
친구는 키득거렸다. 우연은 짜증난다는 눈매로 앞 쪽을 흘겨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오빠가 여자랑 걸어가고 있다.
사이 좋게.
웃으면서?
"우연아, 너 표정이..."
"대화하네...? 여자랑? 즐겁게? 뭐야..."
"우... 우연아. 너 괜찮..."
"어째서 오빠랑 저렇게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거야. 그리고 뭐야. 저 여우 같은 눈빛은. 오빠에게 무슨 목적으로 접근? 대학 동기? 아니면 같은 동아리? 진짜 뭐냐고 저 여자. 저렇게 진한 화장 과한 거 아냐? 설마 유혹 하는 거? 아니면 순진한 오빠를 속이려는 사기꾼? 뭐냐고 진짜. 짜증나... 짜증난다고..."
친구는 뒷걸음쳤다.
"어. 우연아. 나 엄마랑 약속 생각 나서..."
"잠만 가방 좀."
"어 어...?"
우연은 가방을 내팽겨치고 달려갔다. 그 모습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빨랐다.
"오빠야!"
우연은 그대로 오빠의 등 뒤를 덮쳤다.
팔로 경동맥을 조르는 기술.
리어 네이키드 초크였다. 우연도 유도 유단자다 보니 솜씨가 좋았다.
오빠는 당황했다.
"케엑! 켁!"
우연은 오빠가 답답해하자 금방 풀어줬다.
우연은 빙 돌아 오빠의 앞으로 갔다.
두 눈엔 의문을 품고, 장난이라도 하듯, 도발이라도 하듯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뭐야. 약하게 했는데. 왜 그래?"
오빠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오빠는 손으로 목을 감쌌다.
"야. 갑자기 덮치는데 당연히 놀라지."
"응. 어쩔, 저쩔, 킹쩔."
"너 진짜 그럴래?"
"응! 뇌절!"
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키득 키득 웃어댔다.
오빠가 발끈 했을 때 반응이 제일 재밌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저기... 둘 다 싸우는 거 아니지?"
"이런 건 스킨십이거덩여!"
"도대체! 무슨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
우연은 봐달라며 앙탈을 부렸다.
그 모습은 여자가 남자에게 거는 애교처럼 교태로워서, 남매라 보기엔 너무 위태로울 정도였다.
우연은 그녀를 안심 시키듯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필연 오빠 동생이예요~"
"아. 반가워요. 저는 여기 필연이 대학 선배거든요."
대학 선배란 사람은 손을 내밀었다.
우연의 눈가가 손에 내리꽂혔다. 그 눈빛은 사막보다 삭막하고, 저녁의 거리보다 적막했다.
선배는 흠칫 놀라며 손을 뺐다.
"아뇨. 손 안 잡으셔도 돼요. 저 악력 진짜 쎄거든요. 그치 오빠?"
우연은 확인을 요구하듯 오빠에게 물었다.
"어... 쎄지?"
"에이, 우리 오빠 왜 그래? 삐졌어? 삐졌어? 이쁜 동생 보고 화 풀지? 공주님 같은 동생 보고 화 풀지? 응? 응?"
우연은 눈을 반짝이며 오빠의 손을 잡았다. 웃을 때마다 그녀는 보석처럼 빛났다.
하지만 오빠는
"알았어. 저리가."
"응 어쩔."
우연은 투덜거렸다.
+++
우연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엎어졌다.
그녀가 키우는 개, 통키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평소였다면 행복하게 통키를 안아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바보 오빠, 멍청하고 한심하고 더럽고..."
내가 너무 심했나?
"그럴리 없잖아."
싫어할까?
"그건 아닐 거야."
미워할까?
우연은 답하지 못 했다.
선배 앞에서 본의 아니게 개쪽을 줬으니.
우연은 핸드폰을 꺼냈다.
"오빠 치킨 좋아했지..."
우연은 무신경하게 메뉴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양념과 후라이드, 둘 중 하나지만,
슬라이드를 하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쌓인 울분도, 걱정도 흘려보내는 것처럼.
우연은 그렇게 한창을 누워 있었다.
무감각이, 무력한 기운이 그녀를 짓누른다.
일어나고 싶어도 침대는 푹신했다.
그 편안함과 안락함에 녹은 치즈처럼 눌러붙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멍! 멍!"
우연은 고개를 돌려 통키를 바라보았다.
통키는 좋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우연이 손을 내밀자 통키는 좋다고 코를 킁킁 거렸다.
우연은 웃었다.
역시 그녀에겐 통키 뿐이었다.
"통키야. 누나 갖다 올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야 해?"
통키는 알았다는 듯 혀를 길쭉히 내밀며 헥헥 거렸다.
+++
오빠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연은 얇은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가녀린 팔뚝 만큼이나 빈약한 지갑이었다. 오빠를 위해서 몇 만원 정도 지출하는 건 아까웠지만.
예쁜 동생이 사주는 거라고!
우연은 미소를 지으며 계산을 마쳤다. 계산하던 점원은 슬쩍 그녀의 얼굴을 훔쳐 보았다. 간혹 남자들이 그녀를 돌아보거나, 눈길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길거리에 혼자 다니다보면 전화 번호를 따기 위해 누군가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연은 고등학생이란 핑계로 위기를 무마했지만. 곧 나이가 차면 이런 핑계도 안 통할 것이다.
오빠는 아려나? 예쁜 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이 돌아본다는 걸.
스쳐지나갈 때마다, 예쁘다. 소리를 몇 번씩은 듣고, 누구나 부러워한다는 걸.
우연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착석했다.
"나처럼 오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어깨가 으쓱거린다. 오빠가 하나 뿐인 동생이 치킨을 사왔다면서, 현관문에서 반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빠가 가슴에 그녀를 안아버리고, 그녀는 가슴에 푹 얼굴을 담아버렸다. 우연은 부끄러워하면서 튕기지만, 내심 그 것이 좋아서. 내심 그 것을 더 원해서. 그대로 몇 분이고, 몇 십 분이고 당해줄 자신이 있었다.
"몇 십 분은 너무 심했나...?"
뭐 상상은 자유니까. 이런 저런 행복한 공상들, 상상들을 하면서 기다리다보니 이번에도 은근한 기대를 품은 남자들이 다가왔다.
"저기..."
그 순간 우연은 돌변했다. 날카롭고, 짐승처럼 험악한 표정이었다. 분위기 만으로 차갑게 식어버리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제를 파악했을만큼 싸늘했다.
"뭐요."
남자들은 죄송하다고 소리치며 치킨집을 나가버렸다.
우연은 산통이 모두 깨진 것을 격분했다.
곧 점원이 그녀를 부르자, 우연은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났다.
+++
행복한 기대가 현실 때문에 무너져 내렸을 때, 사람은 실망하고 좌절한다.
오빠는 우연을 안아주지 않았다. 그저 누구보다 빠르게 닭 다리를 채갔을 뿐이다.
치킨을 가지고 가는 길에 품었던 풍선같은 공상에
바람이 빠지는 순간이다.
바람이 빠진 우연은 맥 없이 앉아서, 망연한 얼굴로 치킨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허겁지겁 치킨을 입에 우겨 넣으며 물었다.
"넌 안 먹어?"
"응. 나 다이어트해."
"네가 살이 어딨어?"
그 말에 우연은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예쁜 동생이 군살이 어딨겠어?"
"어쩔."
우연의 말투를 고스란히 돌려받자, 우연의 실망감은 분노로 변해버렸다.
"많이 먹어."
하지만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건드릴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치킨 한 조각을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너 어디가?"
"통키한테 치킨 주게."
"안 먹을 거야?"
우연은 말 없이 방문을 닫았다.
+++
우연을 보자 통키는 꼬리를 치며 반겼다. 우연도 통키를 보자 마음이 너그러졌다.
"왜 이로케 살 쪘어 통키!"
우연은 통키를 기쁘게 안아들었다. 3년 전만해도 작은 웰시 코기였던 통키는, 커다란 핫도그 나무처럼 자라 있었다. 통키는 헥헥 거리며 우연의 뺨을 핥으려 들었다.
우연은 꺄르르 웃었다.
"하지마아. 장난 꾸러기이!"
우연은 통키의 턱을 긁어주었다. 그러자 통키는 기분 좋은 듯 눈을 반달로 떴다.
문득 생각했다.
자신과 통키의 관계처럼, 나와 오빠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손짓을 멈추자 통키는 눈을 똘망 똘망 떴다. 더 놀아달라고 재촉하듯, 꼬리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통키야. 나는 오빠야랑 사이 좋게 지내고 싶은데... 왜 안 되는 걸까?"
통키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우연은 베시시 웃었다.
"니도 모르겠지?"
"왕!"
우연은 필연과 친해지고 싶다.
다른 남매들처럼.
다른 남매보다도.
"나도 모르겠다 통키야."
우연은 오늘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못 털어놓는 속사정을 털어낸다.
비밀스러운 감정을. 그렇게라도 못 하면 자신은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아서.
아까 전의 그 이상한 감정이 뭔지 알고 있다.
어렴풋이, 아니면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우연의 눈은 취한듯이 몽롱해지고, 아련해진다.
"나는... 우리 오빠야만 보면 가슴이 막 콩닥 콩닥 뛴다."
우연은 덧붙였다.
"근데 오빠야는 그런거 몰라."
똑똑. 그 순간 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어졌다.
"어? 왜? 왜!"
어색하게 짝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 너머에서 답이 들렸다.
"우연아, 치킨 내가 다 먹는다."
"아 어쩌라고!"
우연은 신경질이 났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우연은 방문을 열고 거세게 소리쳤다.
"내가 내 치킨 다 쳐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 왜 그래... 알았어. 좀 남겨둘게."
우연은 다시 방문을 쾅! 세게 닫았다.
우연은 그대로 무너지듯이 내려 앉았다.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왜 이렇게 나가는지 모르겠다.
좀 더 살갑게, 좀 더 다정하게 대했으면 안 되는 걸까.
닿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걸.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왔었는 걸.
갑자기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건 오빠가 고3 때 자취를 하게 된 이후였다.
허전한 빈 자리, 매일 아침 화장실을 먼저 쓰겠다며 오빠와 다투던 나날들.
일상 같았던 날이 지워져 버리면서
마음은 어쩐지 그 이상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그렇게 가까이
그렇게...
갈망하게 된다.
"오빠야. 내는 모르겠다. 오빠는 아나? 내가 오빠 때문에 미친다는 걸."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동생이 오빠를 사랑한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다.
꿉꿉한 감정이다. 꾹꾹 눌러 담고, 꼭꼭 숨겨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사랑은 멀어졌다. 숨기려고 밀어내다보니.
이렇게 사랑은 멀어진다. 숨기려고 밀어내다보니.
매일 욕 하고, 매일 싸우고, 매일 놀려대지만.
그렇게 속여도 감정은 거스를 수 없다.
거스를 수 없는 급류에 휩쓸려 가며 우연은 이성을 붙잡았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며 가질 시선이었다.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오빠까지 휘말리게 할 순 없었다.
그냥 참으면 된다. 자신만 참아버리면, 이 위태위태한 관계는
영원히 수면 아래에서 잠들어 있을 것이다.
영원히 떠오르는 일 없겠지.
평범한 오빠와 동생으로 남게 되겠지.
우연은 벅차오르려는 눈물을 참았다.
통키가 보고 있는 앞에서 꼴 사납게 울 순 없었다.
이미 붉어진 눈시울을 통키는 알고 있었다.
통키는 그저 꼬리만 흔들었다.
우연은 통키를 꽉 안아주었다. 부드러운 털, 따뜻한 체온까지.
그렇게 얼마간을 마음과 마음으로 위로 받다가
다시 슬며시 눈을 떴다.
"으응... 부드럽다. 우리 통키 너무 살 쪘어. 오빠가 산책 안 시켜주지?"
"멍!"
"같이 나갈..."
쾅!
갑자기 문이 걷어 차이듯이 열리고
기대어 있던 우연의 뒷통수를 때렸다.
"아 뭐야!"
"어. 너 거깄었냐?"
"뭔 일인데."
"나 등에 파스 좀."
"아 그런 건 오빠가 알아서... 으응?"
기회였다. 우연은 입고리를 씨익 올렸다.
"그럼~ 나같은 동생이 어딨다고?"
+++
오빠는 가만히 바닥에 엎드렸다. 우연은 그 옆에 앉아서 파스를 뜯었다.
"붙일게. 어디가 아파?"
"등 쪽?"
"에휴.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다른 운동처럼 유도 선수에게 허리는 필수다.
많이 사용하면서, 그만큼 많이 다친다.
당연하게, 아무 생각 없이 오빠의 겉옷을 들추려던 찰나 우연은 멈췄다. 땀 냄새가 풀풀나는 언제 봐도 더러운 옷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생리적인 거부감 따위가 아니다. 몸 속 어딘가에서 들끓어오르는 이상한 느낌이다.
우연은 천천히, 너무나도 다정하게 오빠의 옷을 붙잡았다. 그대로 밀어올리면 오빠의 맨 살이 보인다. 분명 여드름 가득하고 더럽기나 하겠지. 끔찍해서 눈을 씻어야할지도 몰라.
분명 그럴 거야... 어쩐지 손이 떨린다. 이상하게 망설여진다. 분명 오빠인데. 오빠인데. 오빠라서
아 몰라.
우연은 그대로 밀어올렸다. 질끈 감았다가 뜬 눈은 파르르 떨린다.
우연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근육이 이렇게 많았던가? 엄청 탄탄한데? 심지어 섹시해보이기까지 한다.
"오빠 뭐야...?"
"응 왜?"
"아냐. 좀 씻어라 제발!"
"그럼 빨리 붙여. 아파 죽겠으니까."
눈물이 찔끔씩 새어나온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한 번만이라도 저 등을 안아보고 싶다. 그러면 진심으로 행복할텐데. 등에 안겨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면 좋을텐데. 벌써부터 욕망이 튀어오른다. 해버려. 그냥 갈겨버려.
"오빠... 나..."
"아 왜."
"가슴이..."
"닭 가슴? 그거 네가 안 먹길래 내가 먹었는데."
아.
"아 이 씨발 새끼."
"뭐?"
"아 알았어. 해줄게. 해줄게. 오빠는 진짜 고마워해야해. 나처럼 이쁘고~"
"알았어."
나처럼
사랑스런 여동생이 어딨겠어.
그치? 나같은 여동생 없지? 나처럼 오빠 생각하는 여자 없잖아.
그러니까.
우연은 파스를 뜯고 오빠의 등을 세게 때렸다.
"나만 바라보란 말야."
"아악!"
소리가 워낙 커서인지 들리지 않았다. 손자국이 붉게 남아 돌았다.
어릴 적 배웠던 유도 실력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오빠는 등을 붙잡으며 뒹굴었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으휴... 진짜..."
손바닥이 매웠다. 우연은 붉어진 손바닥을 보고 그대로 얼굴에 파묻었다. 착해져야 하는데, 항상 이상한 곳에서 발끈해버린다. 이상한 곳에서 욱해버린다. 이대로 가면 오빠는 영영 멀어질텐데 말이다.
"야! 너 왜 그래!"
"아, 오빠가 닭 가슴살 다 먹어서 그런거잖아!"
사실은 그게 아냐.
눈물이 맺힌다. 울음이 나오려 한다.
흘러넘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사실은 그게 아냐.
알아줬으면 해.
"오빠가 아냐고!"
오빠는 당황했다. 오빠는 뒷머리를 긁었다.
"어... 미안..."
"몰라. 앞으로 안 사줄 거야. 아무 것도 안 해줄 거야."
"야. 닭 가슴살 내가 사줄게. 지금..."
"내가 지금 닭 가슴살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부탁이야.
"왜 이러는 지 몰라서 그래?"
날 알아줘.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날 알아줬으면 해.
내 감정을 눈치 채줘.
날 끌어 안아줘.
날 눕혀줘.
"오빠는 왜 그런 거야... 몰라. 짜증나."
우연은 그대로 현관으로 향했다. 필연이 그녀를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신발을 이미 신어버렸다.
힐끗 바라본다.
알아줘. 지금이라도...
"야. 내가 돈 보내줄게. 나랑 가서 사자."
우연은 현관문을 열었다.
+++
화창하던 햇살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우연이 흘리는 눈물을 가리려하는 것처럼
가늘던 비는 굵게 쏟아졌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어디에도 토로할 수 없다.
그냥 꾹 누르고, 못 본체 하고.
그렇게 가라앉기를, 그렇게 잊기를 다짐하는데.
다시 터져 버렸다.
다시 엇나가 버렸다.
우연은 계속 걸었다.
누구에게도 도망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우산을 들었다.
여성과 남성은 한 우산을 쓰고 다정히 걸어갔다.
한 때, 그런 때가 있었다.
우산을 씌워주면서, 함께 길을 걷던 날이 있었다.
우연은 길거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처량하게, 누구라도 그녀를 낚아버리면 바로 끌려가버릴 것이다.
욕심을 품고, 욕망을 품고 그녀를 회유한다면 바로 낚여버릴 것이다.
탈선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찰나에 품고 있었다.
찰나에 누군가 그녀를 붙잡았다.
우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필연이었다.
그는 우산을 씌워주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우연은 팔을 뿌리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안 됐다.
대체 왜?
그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이냐고.
필연의 얼굴엔 의구심이 묻었다.
그 표정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질러버렸다.
"오빠 진짜 눈치 없다. 진짜 쓸모도 없고, 맨날 내 마음도 몰라주고."
"미안해..."
상황을 어떻게든 넘기려고 한다.
늘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닌 걸.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아도.
어떤 사연이 있을 지 궁금해해도.
남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기려고 한다.
늘 그랬다.
그렇게
필연도 그 상황을 넘기려 했다.
필연은 우연을 끌어 안았다.
의도가 어떻든, 시도가 어떻든.
"오빠가 미안해. 알아주지 못 해서."
말 한 마디에 모든 응어리가 녹아붙었다.
당신이기에.
이런 당신이기에 빠져든다.
지금이라면 어떤 말을 해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알아주지 않을까.
유혹이 든다. 내리는 비는 급류가 되어 우연을 휩쓸었다.
그저 이성을 놓아버리면. 앞으로의 미래가 무엇이던.
상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빠."
우연은 다정히 필연을 불렀다.
비에 맞아서 그런가. 온 몸에 열이 난다.
"응. 우연아."
우연은 천천히 그를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지 않게.
우연은 눈을 감았고
그대로 입을 맞춘다.
당신의 포근한 입가에 나를 밀어넣는다.
뭐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주 많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옷은 축축했고, 온 몸은 젖었지만
맞닿은 입술만큼은 따뜻했다.
우연은 입술을 뗐다.
우연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왜? 놀랐어요? 누가 보면 어쩌지? 응?"
"어... 대체 왜..."
우연은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우연은 평온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우연은 다시 덧붙였다.
"오빠."
"어... 어?"
"고마워."
"어... 아냐. 괜찮아..."
"사랑하고."
이 다음에 무슨 미래가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는 김우연, 세상 남자들이 우러러 보는 가장 꽃 다운 나이, 낭랑 18살의 소녀지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점만 가득한 여자 아이지요. 결점이라곤 딱 하나.
바보같은 오빠는
이렇게 여동생이 하나같이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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