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 사박, 눈 위에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한 결같이 반복된다.
가끔씩 쏴아아, 하고 어딘가에서 나무의 가지에 위에 걸려있던 눈 더미가 떨어져 내리고, 시계 바늘 소리를 들리더니, 졸음에 빠져있던 사람을 흔들어 깨워, 마치 종소리처럼 나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도왔다.
달력은, 이미 12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얌전했던 눈보라가 점차 거세져갔다.
설해(雪害)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이 이리도 많이 내린다면, 지붕의 보수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설해(雪害) : 눈으로 입는 재해
물론 이곳이 원체 특이한 지형이기에, 마을에 비하자면 훨씬 형편이 낫긴 하다.
인간들은 매년 겨울이 되면, 자기키만큼이나 쌓이는 눈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집이다.
내버려두면 문제가 될것이다.
아무리 새벽에 온통 은빛 세계가 된 집 앞 마당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해도, 찰나의 정취에 계속 젖어 있을 수 있을 만큼 자연은 자비롭지 않으며, 인간은 강하지 못하다.
어찌됐든 그 자연의 위협에 의해서, 겨울동안 인간은 식량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오로지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까.
『............』
조금씩 눈이 쌓여가는 소리.
하지만, 나도 식량 문제에 대해서라면 그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조그만 텃밭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내에서 재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돈으로 인간에게서 구입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겨울을 대비해서 다소 보존 식량을 준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겨울 시기에 맞춰서 비교적 값이 오른 식료품들을 무심결에 3일전에 사버리고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식료구매로 드는 식비를 고민하곤 했다.
덜컥. 덜컥
이제 봄의 요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정확히는 요정이 나타난 곳에서 야채가 자랄 때까지 ――거의 우리 집의 식생활은 근검절약모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연회가 있다면, 그리고 흥미가 있을만한 사건이 있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자주적으로 밖으로 나설 일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이 소란스러운 환상향의 주민들은 나를 집에서 끌어내니까.
마리사들이 그 전형적인 예시다.
그녀의 집에는 정상적이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난방기구 같은 게 존재하지 않기에, 내 집의 벽난로를 목적으로 삼아, 이 추운 날 갑자기 내 집으로 날아들곤 한다.
그 밖에 희생되는 곳이라면, 역시나 하쿠레이 신사나, 홍마관정도다.
다만 마리사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이곳이기때문인지, 필연적으로 방문 횟수는 늘어나고....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떨 지 잘 모르겠다.
만약 흥미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통계라도 내주면 좋겠다.
하는 김에, 귀가하는 마리사의 늘어난 짐을 체크해준다면,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골치 아픈 물건을 들고 가버려서 내가 나서기전에 대신 나서준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테니까
「텅~ 텅~」
덜컥.
그리고, 거기에는.
「저기, 아직 다 못했어?자꾸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니까 심란해지잖아. 빨리 치우란 말야.」
나의, 아니. 나와 아주 닮지만 나와 모든 것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는 지붕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앨리스의 것이었다.
「아, 나 지금부터 외출할거니까, 저녁은 생선 요리가 좋겠는데.」
「.......」
「뭐야? 뭔가 말하고 싶으면 하라고.」
「딱히.......」
나는 앨리스에게서 눈을 돌렸다.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 문제없지, 라고 말하며 그녀는 일단 안으로 들어섰다가, 홍마관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고는,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뭐하고 있는 거지.....
일단 단기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자면, 지금 나는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인형을 쓰지 않은 채.
장기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자면, 현재 진행형으로 나는 앨리스의 인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날, 인형극 이후부터,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비뚤어지고 말았다.
결국, 앨리스의 계획은 성공하여, 앨리스 자신이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라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 일을 생각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 날은 계속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내 안의 프라이드가 격렬하게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이후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날을 보내왔다.
앨리스는 기력을 잃은 나대신, 적극적으로 마을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나갔다 하면, 돌아오자마자 조금씩 부푼 지갑이나, 쇼핑에서 구한 듯 한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나에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눈이 거세졌으므로, 당연히 이제 인형극을 하지 못할 테지만, 그 때식료의 비축분을 구해온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던 것이다.
초기에 앨리스를 절대 마을로 보내지 말자, 고 마음먹었던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지인들과 제발 접촉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천박한 희망조차도, 이미 홍마관에도 몇 번이나 걸음 옮긴 앨리스를 보고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오른손이야, 일단 낫긴 했다.
상처도 더 이상 안 보인다.
마력역시도 정상적으로 순환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본다면, 파츄리라도 진정한 나라고 인식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그렇지 못하였다.
자기 자신의 창조물에게 좋을 대로 놀아났다는 사실이, 상상이상으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인형을 바라볼 때마다, 나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볼 때마다, 그날의 광경이 교차하고, 감정이 흔들리고 만다.
결국에는, 전신 거울에 내 자기 자신의 비친 모습을 바라보기만하더라도 그렇게 되게 변해버렸다.
그런 정신 상태로 섬세한 작업인 마법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만무하며, 또한 인형술의 상태역시도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인형을 다수 조종하는 나의 인형술은, 인형의 수만큼 사고를 병렬시켜서 명령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고의 중심에, 털썩하고 커다란 농(膿) 이 들어앉아 있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병렬 사고를 해낼 수 있겠는가.
앨리스가 외출하는 것을 제지하지 못하는 것도, 하고 싶어도 못하기 때문이다.
힘으로 말을 들어먹게 할 수 있었다면 이미 했을 테지만, 이런 꼴로 마을에 가봤자 오명을 씻으려고 해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육체적인 특징으로 나와 그녀의 차이점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커다란 문제가 되리라고 꿈에도 몰랐다.
이 세상의 온갖 쌍둥이들중, 몇 사람이나 이런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인형술로 증명 같은 걸 할 수도 없으니, 앨리스의 방탕한 행동을 굳이 지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기다리고 있었다.
「욱......」
갑작스럽게, 불쾌감이 치밀었다.
―――방금까지는 괜찮았는데......
방금전, 앨리스에게 지시를 당하고 난 뒤부터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게 만든 원인인 앨리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두통이나, 심하면 구역질까지 치밀어 오르게 되었다.
그일에 생각하는 것을 내 스스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신 과 의사도 아니고, 지저에 있는 사토리 요괴에게 내 정신이 읽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모습만 봐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모든 것은 그날의 일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란 것은 간단하게 추정해낼수 있다.
물론 한심한 짓에도 정도가 있으므로, 앨리스와 대면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든 참아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내 증상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일부러 얼굴을 보이곤 한다.
그것도 내가 무방비한 시기만을 노리고.
지금 이렇게 앨리스의 인형이라는 입장을 강요당한 것도, 그녀의 계략이다.
앨리스가 있는 한, 그리고 앨리스가 계속 내 마음을 가지고 노는 한, 내게 인형술이 돌아올 리가 없다.
그녀는 나의 멘탈이 의외의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을, 자기일 마냥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더 이상 내 멘탈이 회복되지 않도록, 끝없이 계속 상처에 소금을 뿌려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앨리스에겐, 나를 사회적으로나, 실질적으로도, 죽일 수 있을 입지와 힘이 있다.
만약에, 앨리스가 마을 한복판에서 인간을 죽여 버린다면.
만약에, 앨리스가 나를 칼을 찬 인형들이 둘러싼 가운데 던져버린다면.
이미 내 목숨은 앨리스에게 장악당한 셈인 것이다.
이제 그저 기회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달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영원히 해결해주지 않는다.
지금의 이 처지를 견디며,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노린다는 ――그런 이야기의 등장인물같은 고상한 마음을, 진심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길고 긴 이 어두운 터널의 출구를 기다린다고 한들, 저 밖의 빛을 받을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 현상을 타파할 만한 다른 방안을 짜낼 사고력마저 바닥을 긁고 있었다.
마치 느긋한 고문과도 같이, 내 마음은 그 날의 상처에서부터 점점 벌어져 풍화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적어도 단 한사람만이라도, 나와 앨리스에게 의문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만약의 경우를 망상해내자마자, 곧바로 뿌리치고는, 앨리스의 인형으로서의 업무를 다한 나는 몹시 지치고 지친 심신은 달래기 위해 실내로 들어왔다.
――――그래봤자 어쩌겠는가.
――――앨리스는 그저 너무나도 완벽한 인형이었을 뿐이고, 그저 내 감정이 지나치게 비틀린 감정이었던 것뿐인데.
박혀져버린 정신적 트라우마만 아니면 얼마든지 다시 제 힘 되찾아서 대항 가능한데
그걸 인형 앨리스도 아니까 꾸준히 신경을 긁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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