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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이런 느낌으로 쓰는 글 괜찮을 거 같음?

몰?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4.02 18:42:05
조회 133 추천 0 댓글 16

출혈소녀 1화


  이선 시에 비가 내렸다.


  오염지구의 비는 짙은 독성으로 흩뿌렸다. 시들어버릴 잡초조차 나지 않는 돌길 위로, 나는 보급품 바구니를 품어 안고 묵묵히 걸었다.


  위를 바라보면 하늘은 색조화장 빛깔로 어두웠다. 그러나 빛이 들지 않는 거리에서도 내 시야는 또렷했다.


  서예린.


  각성 전부터 선천적 초능력을 타고난 괴물이자, 번역소설 '라스트 맨 폴른' 속 최악의 빌런.


  지금 나는 그녀의 몸을 쓰고 있으니까.


  '라스트 맨 폴른'은 딱히 진지하게 읽은 소설은 아니었다. 단지 초반부를 조금 읽다 말았을 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비교적 단순했다. 영미권에서 나온 히어로물인데 현대 대한민국이 배경이라서.


  진짜 대한민국은 아니고 대충 그런 척하는 모호한 배경이라지만, 이역만리에서 쓴 한국 배경의 히어로물은 자연스레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번역소설답게 문장은 엉망이었고 가끔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오역도 있었다. 읽다가 그걸 못 견뎌서 집어 던졌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꾹 참고 끝까지 볼 걸 그랬다.


  전생의 내 이름은 박성현.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화재가 난 걸 기억하니까 아마 가스 폭발에 직격당한 거겠지.


  아프고,


  갑갑하고,


  피가 아주 많이 흐르는 죽음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하필 예린의 몸으로 눈을 떴는지도 모른다.


  원작의 서예린은 측정불가 수준의 출력을 휘두르는 혈액 능력자였으니까.


  상념에 빠진 사이 나는 셸터에 도착했다. 침식 이전에는 대형 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지만, 이제는 의료 장비도 약품도 써먹지 못했다.


  셸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오염지구에 적응한 돌연변이들. 평범한 사람에게 쓰는 약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몰랐다.


  그들에게서는 늘 피와 고름의 냄새가 났다. 예린은 초능력 덕에 아프지 않았지만 대신 그들을 홀로 돌봤다.


  정부는 오염지역 시민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살극을 벌이기에는 국제사회의 눈치가 보였고, 인도적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무인기로 식량을 공급했다.


  예린이 주로 하는 일이 보급 포인트를 순회하는 것이었다. 비록 양이 점점 더 줄어들고는 있으나 셸터 하나를 먹여 살릴 만큼의 물자는 왔다.


  아지트로 쓰는 응급실에 도착하면 경계 이후에 안도와 환영이 잔잔히 퍼져나갔다. 이곳 셸터에서 실질적으로 수색을 맡을 수 있는 인원은 예린 하나뿐. 남녀노소가 제각각인 마흔한 명의 생명이 예린에게 달려 있었다.


  예린.


  뒤섞인 기억 속의 그녀는 이타적이고 친절한 아이였다.


  오염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병사, 아버지는 괴수의 습격으로 열살 때 사망했다. 그랬음에도 그녀는 불행에 빠져 있지 않았다.


  명랑하고 누구에게나 잘 하고 싹싹한 그런 여자애. 대형병원 셸터의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인 소녀. 그게 지금의 예린이었다.


  홀로 천만이 넘는 인구를 학살했다고 하는 원작의 서예린은 여기 없었다. 어떻게 예린 같은 아이가 그렇게 비인간적인 길을 걷게 된 걸까.


  보따리를 끌러 통조림을 내려놓으면 가장 먼저 아이들이 달려왔다. 나는 예린의 기억속에 남은 그애들의 이름을 불렀다.


  "서준아, 영웅아. 혀... 누나가 뭐라고 했어요?"


  "...차례를 잘 지켜야 한다구요."


  "응. 조금만 기다리렴. 금방 나눠줄게."


  나는 암묵적인 보급 순서대로 식료품을 나누어준 뒤 병을 심하게 앓는 남자의 배설물을 처리했다. 이상하게도 예린이 된 뒤로는 이런 일에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매일매일 보아온 일상적인 풍경, 정도라는 느낌.



--------


장르는 다크판타지 + 다크히어로로 구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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