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를 하나 꼽자면, 나는 ‘섹스’라고 할 것이다. 아마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이런 정서적인 ‘섹스’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일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응. 그 미묘한 감정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가지는 의미. 그게 바로 하루키의 ‘섹스’다.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와의 섹스는 환상이다. 이는 그가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미도리와의 경험을 통해서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할 때에는 수 차례를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했던 반면,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에는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에게 나오코와의 경험은 환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와타나베와의 관계는 와타나베와의 교감이었다. 기즈키가 죽고,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기즈키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공유하게 된다. 둘 모두 그의 죽음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고, 둘 모두 그와 깊은 교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그의 죽음을 공유함으로써 첫 섹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교감을 통해 그를 소모한다. 다시는 교감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그를 투영시킨다. 기즈키와 마찬가지로, 나오코는 더 이상 와타나베와 섹스할 수 없게 된다. 그저 기즈키와의 방식대로, 핸드잡이나 펠라치오를 통해 교감을 '흉내'낼 뿐이다. 결국 나오코는 기즈키를 향해 떠나고,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향해 떠난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교감은 결국에는 깨어질 뿐이다.
레이코와의 섹스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와타나베와 레이코는 '나오코의 죽음'을 공유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공유하는 것. 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감한다. 와타나베는 레이코의 과거와 슬픔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레이코가 동시에 슬픔의 기억을 공유할 때, 비로소 서로가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코의 마지막 교감이 된다. 레이코는 알고 있다. 더 이상 그녀와 교감할 사람이 없음을. 와타나베와 그녀 사이를 이어줄, 세상과 그녀 사이를 이어줄 유일한 연결 고리였던 나오코가 사라졌음을. 아니, 방금 전, 나오코를 소비했음을.
그러나 미도리와의 관계는 와타나베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녀와 와타나베 사이에는 어떤 경험의 공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와타나베와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통해 새로운 교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건 어떤 연결고리를 매개체로 하는 인간관계가 아니었다. 그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교감이었다. 와타나베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 계속해서 타인을 소모해왔다. 특공대를, 나가사와 선배를, 기즈키를, 나오코를. 그러나 미도리와의 관계에서, 그는 더 이상 타인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작품속의 어떤 관계보다도 불확실하고 깨지기 쉬웠다.
레이코도, 나오코도, 나가사와도 사라지고 나서야 와타나베는 자신의 인간관계는 타인을 소모한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미도리에게 외친다. 너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너와 나만의 관계를 맺고싶다고. 그리고 그녀는 묻는다. “너, 지금 어디야?”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그는 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
제출용으로 급하게 쓴거라 좀 두서없네
노르웨이의 숲 보다는 상실의 시대에 어울리는 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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