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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PG 게임이 좋았다.

 RPG는 그야말로 공평하지 않은가.

 모두 공평하게 1레벨부터 시작해, 재능 차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서 시간을 들이부은 만큼 정직하게 레벨이 오르고 강해진다.

 최근의 게임들은 대부분 현실의 재화가 영향을 끼치니 그것도 다 옛말이 되었지만, 적어도 내가 처음 그런 게임들을 마음에 들어한 이유는 그것이었을 터다.

 현실에서 느끼는 재능의 격차, 수저의 격차, 그런 것들이 없는 공평한 세상이 좋았다.

 노력이 배반당하지 않는 세상이 좋았다.

 모두가 평등하게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그런 세상이 좋다고 마음 깊이 생각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 쯤은 안다.

 게임 속 나의 스펙이 올라갈 수록, 반비례해 현실의 스펙이 떨어져 간다는 걸 잘 안다.

 시간이란 재화는 유한해, 가상 속에 그 재화를 밀어넣을 수록 현실에 투자할 시간은 없어지고, 내 미래는 어두워지고, 점점 더 답이 없어지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바깥으로 빠져나올 의지도 용기도 근성도 아무 것도 없어서.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은 없다.

 어딘가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미래의 꿈도 없다.

 지켜야 할 긍지도 신념도 없고.

 애초에, 살아가야 하는 이유조차 잘 모르겠다.

 몸속을 넘어 영혼까지 들러붙은 무력감과 우울감.

 산 채로 썩어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나는 오늘도 키보드에 손을 올릴 뿐이다.

 시간을 들이면 곧바로 눈에 보이는 성장.

 말초적 자극.

 현실에서는 눈곱만치도 향상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점점 썩어문드러져가 망가져갈 뿐이면서.

 오늘도 가상세계로 도피를 떠난다.

 그곳은, 안락하다. 평온하다. 만족스럽다.

 노력하는 만큼 곧바로 보상을 얻게 되는, 그 편리한 세상을 나는 사랑했다.

 다른 누구보다 더 깊이 가라앉았다.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이.

이러고 TS됨